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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줄리엣 - 희곡집 에세이
한송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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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네 것을 써. / p.196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 관람은 고등학교 3 학년 때이다. 수능이 끝난 이후 단체 관람으로 어느 극장에서 보았던 연극이었다. 제목과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름 친구들과 웃으면서 보았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무래도 지방에 살고 있다 보니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그게 막상 쉽지는 않다.
이 책은 한송희 작가님의 희곡집 에세이이다. 그동안 드라마 대본집은 접했는데 희곡집은 처음 접했다. 거기다 희곡집과 에세이의 조합은 또 색다르다고 느껴졌다. 지금까지 드라마 DVD나 블루레이 특전으로 대본집을 봤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희곡집도 대사가 있고, 괄호를 통해 상황을 설명해 준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연극과 친해지자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제목이었다. 고전으로 너무 익숙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었다. 이렇게 책까지 나올 정도이니 제목에서 실수를 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생소한 장르이지만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제목이었는데 후면에 실린 내용도 뭔가 수긍이 갔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너무나 헤테로 시각에서 쓰여진 문학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희곡에는 몬테규 가문의 줄리엣과 캐플렛 가문의 줄리엣이라는 두명의 줄리엣이 등장한다. 익숙한 이름의 로미오는 줄리엣의 남동생이다. 시간적 배경이 되는 베로나 시대에서는 동성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까지도 금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동성을 짝사랑하는 줄리엣 몬테규는 어느 백작의 고백을 받았던 줄리엣 캐플렛에게 첫눈에 반한다. 줄리엣 캐플렛은 그동안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다 백작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잔치에서 줄리엣 몬테규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가족과 시대의 반대에도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사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색다른 설정이어서 흥미로웠다. 사실 알고 있는 줄리엣은 하나인데 또 다른 줄리엣을 만들어 낼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터라 이를 어떻게 구현할까 궁금했었다.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로 접했던 퀴어 소재의 이야기를 희곡집으로 보고 있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 읽는 내내 몰입해서 보았던 것 같다. 줄리엣 두 사람의 감정을 나름의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었다.
초반에는 줄리엣들의 이야기가 번갯불에 콩을 구워서 먹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라는 게 첫눈에 반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사랑하는 게 조금은 철이 없다고 보여졌다. 만나자마자 사랑한다고 하더니 같이 살 집을 구해 결혼하겠다는 게 몇 페이지에서 바로 점프를 하다 보니 갑작스러웠다. 물론, 희곡으로 본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시간의 제약이 있기에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사랑의 감정보다는 현실적인 조건을 먼저 따지는 성향의 사람이기에 더욱 두 사람의 사랑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스님의 등장이었다. 서양의 무대를 배경으로 갑자기 나타난 스님의 모습에 뭔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희곡의 내용에서 스님은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고, 캐플렛 가문에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하는데 큰 공감이 되었다. 예전에 불교에서 동성애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역시나 로맨틱하다고 느껴졌다. 에세이로 스님 역할의 비하인드를 볼 수 있어서 이 점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배우이자 극작가로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예를 들면 과거 연극 후기를 읽으면서 차별적인 요소에 대해 수용해 다음 집필 때 수정을 한다거나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하는 모습이 그렇다. 특히, 연극에서의 대사가 무성애자들에게는 조금 상처가 될 수 있다는 후기에 깊은 공감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나 역시도 이성애 문학에서 동성애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내용들만 생각했었던 터라 머리로 맞은 듯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정체성이 존재했을 텐데 말이다.
책을 덮고 나니 줄리엣과 줄리엣이라는 연극이 궁금해졌다. 지금은 막을 내린 공연이기에 이를 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후기를 검색하기도 했었다. 이 책 하나로 희곡집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의 열정뿐만 아니라 배우로서의 삶, 극작가로서의 삶,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삶 등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하고 있어 묘하게 여운이 남았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