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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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위에 선 인간뿐이다. / p.336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한국 작가님들 중에서는 도장 깨기를 목표로 삼을 정도로 애정하는 작품이 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도 부족할 정도여서 예전 작품부터 현재 신작까지 하나하나 읽기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분들의 세계관을 읽으면서 나름 위안이 되거나 스트레스 해소가 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이것 또한 하나의 덕질일까 싶다.

그동안 한국 문학을 위주로 읽는 편이었는데 올해부터 일본, 영미, 더 나아가 중국과 낯선 나라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부터 선호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서양 문학은 아무래도 문화의 차이가 큰 편이기에 작품 자체가 와닿을 수는 있겠지만 작가의 작품을 섭렵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낀 경우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읽은 외국 작품은 첫 작품들이어서 다른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해외 작품들 중에서 작가까지 눈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케이스가 있기는 하다. 서양 작가 중에서는 앤디 위어가 유일하고, 일본 작가 중에서는 두 명이 있다. 사실 한 명의 작가는 하나씩 섭렵하는 중이어서 조만간 한국에 나온 작품을 거의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한 명의 작가는 읽었던 한 권의 장편 소설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그 자체로도 최애 작가가 된 케이스이다. 바로 다른 작품을 구입했었고, 내년에는 시리즈로 나온 소설을 구매해 읽을 계획까지 세울 정도이다.

이 책은 몇 안 되는 최애 작가 중 한 명인 이케이도 준의 장편 소설이다. 후자에 속하는 작가인데 서평단으로 읽었던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너무나 좋았다. 곧 구매한 다른 작품을 읽을 예정이었는데 우연히 출판사 이벤트로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선물로 받았다. 한자와 나오키, 변두리 로켓 등은 어느 정도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선물로 받은 작품은 처음 듣는 제목이어서 더욱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세상에 읽을 책들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에 밀렸다. 이제 더 미루면 내년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시간을 쪼개 이렇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이다. 총 10 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지점장 후루카와부터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가정사, 속내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연작 소설이라고 보여질 정도로 한 편에 한 명 이상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와 처지를 말해 준다. 또한, 도쿄제일은행에서 벌어진 고액의 도난 사건과 직원 실종 사건이라는 큰 틀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읽으면서 애정하는 작품인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중소 기업의 고군분투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배경 자체부터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직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는 게 비슷하게 와닿았다. 에피소드 중에서 기업이 도쿄제일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거나 은행 직원이 응대하는 모습들을 읽으면서 그때의 인상 깊은 감정들이 떠올랐다. 은행 직원들의 실적에 치이는 모습은 여전히 안쓰러웠고, 기업 간부와 은행원 간의 기싸움 역시도 뭔가 답답하게 만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부지점장 후루카와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해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다. 지점장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직원들을 아주 쥐어잡는 것도 모자라 현대 사회에서 흔히 꼰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을 부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상사의 말은 곧 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직원에게 폭력을 가해서 경고 조치까지 받았다. 대졸 직원들과 자신보다 먼저 승진한 후배인 지점장을 보면서 열정을 가지는 모습은 좋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자격지심이자 열등감으로 보였다. 그런 면에서 좋은 감정으로 기억에 남았다기보다는 전형적인 회사에 제거되어야 하는 인물로 각인이 되었다. 아무래도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이기에 더욱 부정적으로 노출이 되어서 안 좋게 보이는 듯하다. 심지어 큰 사건이었던 도난과 실종 사건에는 다른 인물에 비해 크게 관련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밖에도 야구 유망주로 살다가 특채로 은행에 들어온 인물은 뭔가 짠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었으며,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직원을 보면서 읽는 입장인 내가 더 억울하다 느껴지기까지 했다. 다사다난하면서 우당탕탕 흘러가는 은행 직원의 분투기가 마치 대한민국에서는 보통의 직장 생활처럼 보였다. 물론, 돈을 다루는 직종이기에 크게 보면 조금은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아마도 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했었던 저자의 독특한 이력으로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들의 개인사들도 공감이 되었는데 가장 크게 인상 깊었던 점은 큰 사건에 대한 전개 방식이었다. 다른 추리 소설이라면 초반부터 큰 사건이 등장했을 텐데 이 소설은 은행원들의 좌충우돌 소소한 이야기들 위주로 전개된다. 공감하다 정신을 놓고 나면 그제서야 100만 엔 도난 사건이 등장한다. 심지어 등장한 이후에도 개인의 이야기들이 우선적으로 나타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잊을 만하면 관련 사건으로 실종된 직원과 100만 엔의 출처 등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 면에서 직장 소설이라고 봐야 맞겠지만 묘하게 긴장감이 흘러서 추리 소설의 묘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읽으면서 범인을 찾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은행 직원은 이렇게 일한다는 점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소설이었다. 가끔은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와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현실감이 느껴졌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 주류에 속해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덕분에 내년에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도장 깨기 하겠다는 다짐은 더욱 견고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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