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데스의 유산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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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세상의 시선보다 당신의 사람이 소중한 분은 연락 주십시오. / p.62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분들의 보도를 보면서 주변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저마다의 힘든 개인사가 있기에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거나 폄하하기보다는 남은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이 먼저 눈에 보였다. 당사자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힘든 일이었을 것이며,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도 없이 망설였을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각자의 개인사 역시도 부정할 생각 또한 없다.

그러다 이러한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개인의 권리로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연히 본 안락사 기사가 계기가 되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스위스 조력 자살에 대한 기사였는데 큰 충격을 주었다. 보통 안락사는 대한민국에서 강아지를 비롯한 애완 동물에게 많이 사용되고, 해외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다. 댓글에서도 스위스에 가서 이러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내용이 달라기도 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꽤 강하게 남아 있다. 그때부터 살 권리처럼 죽을 권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장편 소설이다. 개인적인 것에 속하는 가족과 공적인 것에 속하는 법 중 하나를 양자택일하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개인과 법의 싸움이라는 생각에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몇 개월 전에 해당 출판사의 추리 단편 소설을 읽었는데 그때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가는 결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좋은 느낌을 받았기에 이번 소설 역시도 관심이 갔다.

소설은 한 아이의 신고로부터 시작된다. 이틀 연속 경찰서로 아빠를 죽인 의사가 있다는 말이었는데 형사들은 그저 어린이의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는 것에 어쩔 수 없이 조사를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독특한 사건임을 인식한다. 고인을 찾았던 의사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는 점과 아이가 말하는 범인은 첫 번째로 아빠를 만난 의사라는 것이었다. 경찰들은 닥터 데스의 존재를 뒤쫓으며, 비슷한 류의 사건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두 명의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형사인 이누카야라는 인물이다. 소설 내용 중에서도 존엄사나 조력 자살, 안락사 등을 극도로 경멸하는 듯한 뉘앙스를 주는 말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단순하게 안락사가 불법이어서 직업 정신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이누카야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가족 구성원을 통해 이러한 신념이 조금 흔들리는데 그 부분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누카야의 가치관에 공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기도 했다.

두 번째는 닥터 데스라는 인물이다. 본인과 가족의 동의 하에 조력 자살을 해 주는데 스토리에 집중해 읽다가 갑자기 툭 던지는 물음에 정신을 차리게 했다. 특히, 소설에서 닥터 데스는 '죽을 권리'를 언급하면서 자신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아니라고 표현한다. 초반에는 이누카야의 가치관에 더욱 마음이 와닿았는데 닥터 데스의 질문에는 섣불리 반박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살 권리처럼 죽을 권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그동안 의사는 살리는 직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닥터 데스의 존재는 당황스러웠고, 그의 물음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고통을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애완 동물의 안락사 역시도 그와 비슷한 이유로 진행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사람으로 주제를 바꾼다면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물음표가 드는 것은 사실이다. 섣불리 안락사를 행하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울 것이다. 당사자가 되었든, 가족의 일부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그랬기에 소설에 등장한 조력 자살을 요청하는 가족과 당사자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했었다.

인간의 존엄사를 생각하던 중 맞이한 결말은 그것 또한 나름의 충격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뭔가 소름이 돋기도 했다. 아마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어느 정도 인지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까지 닿지 않았던 나에게는 재미 요소로 느껴졌다. 거기다 닥터 데스의 존재뿐만 아니라 가치관과 생각을 뒤집을 수 있는 이야기까지 등장했기에 그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마냥 악인으로 낙인을 찍지 않아서 그 지점도 만족스러웠다.

단순한 재미를 위한 추리 소설이었다면 가볍게 흘렸겠지만 그 이상의 여운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현대 이슈 중 하나인 존엄사라는 소재를 가지고 풀어냈기에 머리와 마음에도 남아서 좋았다. 아마 한동안 추리 소설 중에서는 개인적인 순위 상위권에 속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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