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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블루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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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의외로 나쁘지 않아. / p. 322
대한민국 땅덩어리가 참 좁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 중 하나가 연으로 맞닿아 있는 경우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같은 학교를 나온 동문이었거나 동향 출신이었던 적이 꽤 많았다. 특히, 지방에서 태어나 타지로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유독 이렇게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알고 보니 초등학교 후배인 경험도 있었다. 직접 얼굴을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참 나도 모르는 반가움이 앞선다.
이렇게 인연으로 묶인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움이 들지만 부정함의 원인이 된다면 그것은 또 달라진다. 그럴 때는 인연인이라는 게 원망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동향이니, 동문이니, 친척이니 여러 인연의 끈을 빌미로 제안을 해 오는 경우가 그렇다. 원래 스스로의 힘을 뭔가 해내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손길을 이유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그만큼 자존심이 상한다. 특히, 취업과 승진에서 능력이 아닌 라인을 잘 타서 올라간다면 잘해서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연이 닿아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허탈감이 지배할 것 같다. 그래서 누구보다 연으로 묶이는 일들에 조금 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오승호의 장편 소설이다. 줄거리를 보자마자 마을에서 부정한 일이 있었지만 경찰서와 관공서 등 공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집단들이 똘똘 뭉쳐 이를 숨겼다는 내용의 뉴스 기사가 몇 개 떠올랐다. 이러한 일들이 한두 건이 아닌 생각보다 종종 벌어지는 일로 느껴지는데 그런 면에서 현실감을 느꼈던 것 같다. 뉴스 기사를 볼 때에도 많이 어이가 없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소설로 표현되는 게 궁금했다. 특히, 뉴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추리나 스릴러의 긴장감도 기대가 되었다.
소설은 요지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요지는 서른 살의 인물로 야구를 하다가 이를 포기하고 경찰이 되었다. 야구 선수로서 반짝 두각을 드러내다 트라우마가 생길 실수로 고향을 떠났는데 이후 십 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이후 고향에 있는 파출소로 배치를 받았다. 그가 그곳에 자원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사라진 동기 니가하라를 찾기 위함이었다. 인상 좋은 파출소장과 비열한 웃음을 지닌 아키미스, 농땡이가 취미인 고스게, 그밖에도 파출소를 집처럼 드나들면서 남편과의 불화를 호소하는 세쓰코 할머니, 술에 만취해 폭력을 저지르는 모리 할아버지 등 조금은 의심스러우나 살인 사건조차 발생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동기의 실종과 이후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초반에는 대한민국의 한 동네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든 있을 법한 인물들이었다. 사람 좋게 잘 챙겨 주시는 파출소장님, 조금은 의심이 드는 동료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마을이 그렇다. 파출소 직원들과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듯했다. 뭐든지 나서게 되는 게 또 시골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풍경일 테니 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군 단위의 작은 동네에서 일을 했었기에 그런 기억도 새록새록 나기도 했었다.
점점 사건들이 벌어지면서부터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살인 사건은 두 번 등장하는데 범인은 도저히 누군지 읽혀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지의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도 가장 먼저 관심이 갔던 요주의 인물은 아키미스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서 형사에게 옮겨가기도 했었다. 도저히 머리로는 동네에서 꽤 유명 인사였던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을 찾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그만큼 손에 땀을 쥐게 되었다.
범인을 찾는 것과 별개로 동네의 이야기도 참 흥미로웠다. 동네에 있을 수 있는 이해 관계와 세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요지는 재개발과 관련해 양쪽으로부터 압박과 청탁이 들어온다. 차라리 정답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부분이었다면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닐 텐데 그것 또한 아니다 보니 고뇌하는 모습이 참 공감이 갔다. 그밖에도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마을 주민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와중에 답답함을 느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요지의 심리 상태였다. 사실 요지는 자신에게 흑역사 그 이상의 실수를 했던 과거 때문에 고향을 등한시했다. 심지어 그러한 이유로 형과 관계가 안 좋기도 했다. 가족들이 아픈 상황에서도 고향을 방문하지 않을 정도라면 얼마나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런 요지가 다시 동네로 오게 되었던 이유가 단순하게 자신의 동기를 찾기 위한 것이었을까. 내내 의문이 남았다. 물론, 결말에 이르러 답을 찾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동네가 아닌 스스로를 미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추리 소설이기는 하지만 요지 스스로 자신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마을의 폐쇄성이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주는 소설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느낌을 주는 소설이라고 보여졌다. 소설의 현실성과 흥미가 크게 와닿았고,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추리의 재미와 동시에 묵직한 건더기가 남았던 이야기를 보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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