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질주 안전가옥 쇼-트 17
강민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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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 p.32

신이 주신 것과 주지 않은 것들은 참 많겠지만 주지 않은 것들 중 하나는 달리기 능력인 듯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매년 하는 달리기에서 3 등 이하로는 들어온 적이 없으며, 체력장에서도 뒤에 있는 친구들과 나란히 들어올 정도로 소질이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군 단위 체전에 대표로 뽑히실 정도로 중거리 선수로 활약하셨는데 항상 뒤에 들어오는 나를 볼 때마다 달리기 유전자는 부계에서 왔다고 말씀하셨다.

이 책은 강민영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신간 나오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것을 체감한다. 누구보다 쇼트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는 독자로서 즐거운 일이지만 그만큼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느끼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에 리뷰를 적은 것 같은데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일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작품 역시도 바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바다 수영을 잘하는 진이라는 인물과 달리기를 잘하는 설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서로 철인 3종 경기에서 나란히 각 분야에서 신기록을 세웠던 두 사람이기도 하다. 반면, 진은 학창 시절 때 이름순으로 했던 달리기에서 가장 마지막에 했기에 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설은 바다에서 강아지를 잃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서로 잘하는 운동을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진과 설은 자신들의 취미를 할 수 없게 되자 인천의 송도 트라이 센터를 방문한다. 진은 센터에서 검은색 물을 보았고, 설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알고 보니 센터가 무너지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들이 탈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이 각각 수영과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달리기와 수영을 싫어하는 이유가 더욱 와닿았다. 특히, 설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 설에게 바다는 늘 외로움을 느끼게 하면서 가장 소중했던 강아지를 앗아간 존재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어떻게 보면 바다 자체만 싫어할 수도 있을 텐데 이는 바다에서 겪었던 트라우마가 꽤 크게 작용한 듯했다. 물이 센터로 밀고 들어오는 와중에도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던 설의 심정과 행동이 무엇보다 이해가 되었다. 반면, 진이 달리기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주변 사람의 의식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비교적 덜 와닿았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진이 설에게 가지고 있는 질투가 와닿았다. 물론, 살면서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신이 하지 못한 것,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을 해내는 설을 완벽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SNS만 보더라도 누구보다 진심으로 달리기를 좋아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설이라는 인물에게 느꼈던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이 센터를 탈출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수영을 못한다는 설을 보고 질투의 대상이 아닌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 지점은 흥미로웠다.

쇼트 시리즈의 큰 장점 중 하나가 한 호흡에 후루룩 읽을 수 있다는 점인데 이 소설은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고, 나도 모르게 설과 진이 되어 주어진 위기를 헤쳐가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강아지 초코를 구하는 과정에서 들려 주었던 설의 이야기는 과거에 키웠던 강아지를 소환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늘 실망시키지 않았던 쇼트 시리즈였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었지만 항상 그 기대를 부합했던, 그리고 인상적인 이야기를 전했던 소설이어서 읽는 시간이 참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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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세계와 먼 우리 안전가옥 FIC-PICK 4
이경희.전삼혜.임태운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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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레이어였다. / p. 39

학교 다닐 때에는 사이버 세상에 참 관심이 많았다. 현실의 방은 돼지우리일지 몰라도 사이버 세상에 있는 나의 방은 빔 프로젝터와 쇼파가 있는 안락한 공간으로, 현실의 나는 교복을 걸치고 있지만 가상의 나는 비싼 명품을 두르고 있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심지어 당시에 나왔던 노래 가사는 사이버 세상에서 만난 사랑을 다룬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공감이 되어서 자주 듣기도 했었다. 어쩌면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만난 이들에게 더욱 잘 보이고 싶었던 모양인 듯하다. 

그렇게 학창 시절은 사이버로 물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그만큼 자주 들리는 단어가 메타버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조금만 어렸더라면 학교에서 메타버스와 관련된 과목을 배우지 않았을까. 지금은 머리도 굳고, 호기심도 없는 지극히 현실에 찌든 성인이 되어 메타버스가 그저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사이버를 처음 들었던 그 시절의 어른들이 딱 이런 느낌이었을까. 

이 책은 안전가옥 출판사의 앤솔로지 단편 소설집이다. 입이 아프게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안전가옥 출판사의 책에 대한 신뢰이다. 쇼트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오리지널 시리즈도 시간이 될 때마다 조금씩 읽고 있다. 또한, 비교적 최근에 접한 시리즈가 바로 이 FIC-PICK이다. 작년에 도시와 청년을 주제로 했던 공포 장르와 고전 문학을 현대로 재해석한 책이 참 인상적이었기에 이번 신작도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이번 주제는 메타버스이다. 이경희 작가님, 전삼혜 작가님, 임태운 작가님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기대와 함께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메타버스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하지만 정보 측면으로 보았을 때에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SF 소설에서 과학 지식이 튀어나올 때의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상상력이 큰 약점이었던 나에게는 이 소설집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첫 번째 작품은 <멀티 레이어>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민은 메타버스 세컨드 서울의 사전 테스터로 참여했으며, 그곳의 고인물이다. 세컨드 서울의 개발자는 100 년 뒤에 현실로 보내 준다는 조건을 걸고 이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서울이 안정이 되고 100 년이 지난 이후에도 다시 돌려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10 년을 더 기다려 달라는 요구까지 하게 된다. 로그아웃해서 현실로 가려는 자와 그저 지켜보는 자, 이들이 나가지 못하게 막는 자 등 각각의 의견이 뒤얽혀 그야말로 세컨드 서울은 쑥대밭이다. 그러던 중 정민에게 의뢰를 부탁하는 인물과 더불어 로그아웃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정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레이어를 마치 포토샵의 화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던 것 같다. 레이어 1에 정민이 있고, 레이어 2에 건물 배경이 있고, 레이어 3에 베르테르가 고민하는 장면이 있는 등 나름의 방법으로 이해했다. 그 중에서도 메타버스에 익숙한 세계에 있는 이들이 현실 서울로 돌아간다면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묘하게 공감이 되었다. 현실 서울만큼이나 세컨드 서울도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싸우기 바빴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이익을 쫓아 테스터들을 이용했다. 정민과 이들이 살고 있는 세컨드 서울과 인구의 25%가 살고 있는 현실 서울이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배경 자체는 새로웠지만 인물들의 이야기는 익숙했다. 읽으면서 혁명단들과 개발자가 싸우는 액션이 돋보였는데 이는 활자로 읽는 것보다는 영상으로 구현이 되었을 때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작품은 <구여친 연대>이다. 대학교 같은 동아리 후배 유리로부터 손 사진이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알고 보니 구 남자 친구인 현준이 돈에 눈이 멀어 회사에 동의도 없이 손 사진들을 팔아 치웠던 것이다. 그렇게 유리, 경윤과 모이게 된 주인공 미현, 소리의 손 사진이 전시가 되었다는데 이 네 사람의 공통점은 현준이 작업을 걸었던 또는 현준과 만났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구 여친 연대는 현준의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복수와 함께 소리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개인적으로 세 작품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회사가 사진들을 조합해 새로운 사진이나 그림을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소설집의 주제인 메타버스와 연관이 있겠지만 구 여자 친구들이 모여 구 남자 친구에게 복수한다는 게 너무 현실 그 자체로 느껴졌다. 아마 연애의 참견이나 썰 관련 사연을 자주 보는 사람으로서 느꼈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등장할 법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결말이 다소 의외이기는 했지만 인물들의 실행력과 결과에 나름 통쾌하기도 했다. 특히, 인물인 유리와 경윤의 말투가 독특했는데 이 지점이 나름의 웃음 포인트이다. 이 지점 또한 사이버와 연관이 된 느낌이 들었다. 메타버스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상상력이 형편없어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었다. 

세 번째 작품은 <바람과 함께 로그아웃>이다. 주인공인 도깨비는 메타 월드에서 요굴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렇게 요원으로서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상반된 감정을 가진다. 현실에서의 돈과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사실 사이에서 고민을 하지만 결국은 현실에 타협하려고 노력하는 도깨비의 심리와 요굴에서 받는 또 다른 제안과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읽는 내내 좋아하는 게임들이 뒤섞여 떠올랐던 작품이었다. 도깨비가 새로운 무기로 꺼낼 때마다 자연스럽게 메이플 스토리의 장비창에서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또한, 서든어택의 요원이 되어 저격 포인트를 삼고 있었다. 요굴에서 보스의 존재를 찾고, 뭔가 퀘스트를 깨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는 점에서 실제로 도깨비를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러나 메타버스 세계관 자체가 뚜렷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세계 또한 존재했다. 첫 번째 작품이 영화로 표현이 된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작품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실제 게임처럼 표현이 된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감이 와닿았던 두 번째 작품을 제외하면 부족한 상상력의 한계를 너무나 명확하게 느껴졌던 소설집이었다. 아무래도 메타버스라는 단어 자체의 무게감이 꽤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들이 구현한 세계관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자 2D 수준의 만화책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지점은 두고두고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자리 잡게 될 듯하다. 그러나 마치 게임의 유저가 되어 스토리를 읽는 것에 새로운 매력을 느꼈다. 제목과 다르게 먼 세계처럼 느껴졌지만 인물들의 이야기만큼은 가까웠던 이야기들이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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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굿 칠드런 시공 청소년 문학
캐서린 오스틴 지음, 이시내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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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상이 아니다. / p.18

스스로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선한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정기적인 부모 상담을 제외하고는 선생님과 만날 일을 만들지 않았다. 말하면 알아서 했었다고 한다. 규칙을 어기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담을 넘는 땡땡이와 사고는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슴 졸이거나 혼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대한 하라는 것만 하고 살았을 뿐이다.

부모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재미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냐고 묻기도 한다. 그렇다고 누가 봐도 착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꾀병을 부려서 조퇴증을 끊는 합법적인 땡땡이를 치기도 했었고, 야간자율학습 중에 좋아하는 가수의 라디오를 듣기도 했다. 들키지 않았을 뿐 나름 그 안에서 반항적인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재미있었다고 대답하는 편이다.

이 책은 캐서린 오스틴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의 의미가 참 궁금했다. 한국어로 해석한다면 모두 좋은 아이들로 될까. 순종적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줄거리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지점이 나름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내 학창 시절을 볼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소설은 맥스라는 아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맥스는 초반부터 학생과 마찰이 있어 교장 선생님께 찍히는 등 문제아로 보일 정도로 뉴 미들타운에서의 학교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맥스가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를 일으킬 아이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보통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친구와의 싸움이었을 뿐인데 어른들은 맥스를 그냥 두지 않았다. 맥스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 역시도 평범하게 생활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우성 인자를 가진 아이들에게 주사 치료를 하면서부터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씩 변한다. 맥스는 어머니의 반대로 주사 치료를 받지 않았으며, 치료를 받은 아이들 사이에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누가 봐도 어른에게 순종적인 아이들 사이에서 맥스와 친구의 모습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학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와 트러블을 일으키는 모습은 조금 불편했다. 치료를 받으면서 착한 아이들로 변해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좋은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아이들이 활발하게 뛰어 놀고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학교 생활에 폐를 끼치는 건 조금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는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중반에 이러한 생각과 감정에 변화되었다. 언젠가부터 아이에게 어른스러움을 강조하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명확하게 그려졌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감정과 행동을 강요하는 게 올바른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어쩌면 이 또한 어른들의 욕심이자 통제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과연 아이들에게 순종과 착함을 강요할 수 있을까. 내내 생각이 깊어졌다.

그동안 읽었던 청소년 소설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소설의 주인공과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를 추억하거나 미래의 원동력을 삼았다고 하면 이 소설은 어른으로서의 반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청소년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을 무겁게 닿았던 시간이었다. 과연 어른들의 바람을 채울 수 있는 제목처럼 올 굿 칠드런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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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란 무엇인가 - 행운과 불운에 관한 오류와 진실
스티븐 D. 헤일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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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고 한다. / p.15

신은 없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에는 외부의 힘을 빌릴 때가 많다. 보통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순간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가 내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 또한 운에게 맡기는 것이다. 특히, 복권을 구입할 때에 더욱 자주 찾는 편이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모순일 테지만 말이다.

이 책은 스티븐 D.헤일스의 운에 대한 책이다. 행운과 불운에 대한 진실을 언급한 책이어서 관심이 갔다. 신년이 되면서 운세나 사주를 기웃거리게 되는데 이러한 생각이 거짓이라는 것을 조금 인지하고 싶었다. 아마 이 책이 그런 부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운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사례, 심리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플라톤과 니체 등의 철학과 운의 연관성, 타로의 역사와 유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운에 대한 의문들이 생각보다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그밖에도 운이라고 믿는 일들에 대한 통계와 과학적인 주장 등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너무 다양한 분야의 이론이었기에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운에 대한 이야기 자체는 좋았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참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제비 뽑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흔하게 자리 뽑기, 순서 정하기 등에서 자주 이용되고 있어서 참 친근하다. 예전에는 제비뽑기가 명예와 이익의 분배 또는 처벌과 위험을 부과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아퀴나스는 왕이 제비뽑기로 선출이 되었다고 기록하였으며, 요나서에는 폭풍우를 만난 배의 원인을 가리고자 희생양의 수단으로서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군대 진격 또는 배우자 선택이라는 나라와 개인의 중요한 순간에 제비점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가볍게만 느껴졌던 제비뽑기가 무겁게 와닿았다.

두 번째는 운에 대한 시각이었다. 처음부터 저자는 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학, 심리, 역사에서 발견된 운에 대한 이론과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처럼 느껴졌다. 특히, 갈릴레오의 경우에는 세 개의 주사위를 던졌을 때 다른 숫자보다 10이 더 많이 나오는 경우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는데 저자의 시각을 가장 잘 보여 준 예시처럼 보였다. 자신이 어떤 마음에서 이를 해석하는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듯했다. 

이외에도 운을 생각하는 세 가지의 시각과 도덕적 운에 대한 예시 등의 내용도 재미있었다. 운을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불확실한 미래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기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운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미래에 무책임한 태도로 운에 맡겼던 것은 아닐까.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책이었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시각도 많이 발견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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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야가의 밤 - 각성하는 시스터후드 첩혈쌍녀
오타니 아키라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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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상이 아니다. / p.146

여성 주인공이 남자들 사이에서 총과 칼을 두고 싸우는 장면을 본다면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날 것 같다, 과거의 나는 아마 여성 주인공을 조마조마 마음 졸이면 보았을 것이다. 남자들에게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표현된 행동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여성 주인공을 멋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체격 조건부터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싸우는 게 보통 용기와 체력으로 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타니 아키라의 장편 소설이다. 액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보통 영화로 자주 보는 사람 중 하나이다. 기억속에는 조폭 마누라 정도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데 소설은 없었다. 가끔은 시원한 액션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소설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러한 마음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은 요리코라는 여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요리코는 처음부터 휘말릴 생각은 없었으나 우연한 상황에 시비를 건 야쿠자 무리들과 싸움하게 된다. 야쿠자들은 요리코의 모습을 보고 우습게 보았지만 비범한 싸움 실력에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에 이른다. 이를 눈여겨 본 나이키 조직의 행동대장에게 간택되어 납치당한다. 나이키 조직 수장의 딸을 경호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 요리코. 벗어나려고 한다면 앞에 있는 개와 요리코를 모두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결국 이러한 임무를 수락한다. 그렇게 알게 된 쇼코를 경호하게 되는데 누가 봐도 고상한 조직의 딸은 어디인가 모르게 부정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처음에는 평범한 조폭 세계를 다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면 비상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이었다. 죄가 없는 이들을 해하려고 했다면 거부감이 들었겠지만 누가 봐도 껄렁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요리코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적으로 만지려는 행동까지 보였다. 요리코가 조직원들과 상대할 때마다 뭔가 모르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했고, 나름 통쾌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쇼코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조금 더 흥미로웠다. 쇼코 역시도 요리코를 무시하기는 했지만 조직원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야쿠자 수장의 딸이기 때문에 권력 관계가 명확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쇼코는 요리코의 이야기를 궁금해했고, 요리코는 쇼코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에게 애증의 존재로서 다가갔던 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쇼코가 가진 사연들이 드러나면서부터 요리코의 시선처럼 나 역시 쇼코에게 연민을 느꼈다. 쇼코의 아버지와 약혼자에게 분노를 가지게 된 것은 덤이었다.

조직 세계를 다루었기 때문에 이들이 투합해 악의 무리를 파헤치는 결말을 예상했었는데 다르게 전개되었다. 쇼코가 요리코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벽을 깨기는 했지만 명확하게 제거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 당황스러웠으나 현실적이면서도 신선해서 좋았다. 아마 예상처럼 흘렀더라면 너무 뻔한 이야기이면서 소설처럼 느꼈을 것이다. 소설의 결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여성의 연대를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편집자 후기도 기억에 남는다.

전형적인 여성의 연대보다 서로를 성장하게 만드는 쇼코와 요리코의 관계, 다르게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들이 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가시적으로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쇼코와 요리코가 소설 너머의 세상에서 지금처럼 살아가기를 기도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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