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 알고 보면 자신보다 타인을 더 배려하는 너에게
조우관 지음 / 유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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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 있기에, 삶을 사랑하기에 불안하다. / p.87

둔한 편에 속한 나와는 조금 거리가 먼 단어이는 하지만 예민하다는 말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통용되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예민하다는 말보다는 세심하다는 표현을 주로 쓰는 편인데 꼭 뉘앙스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둔하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인 내가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세심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자주 나에게 고민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해 고통스럽다거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다거나,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배려를 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대략 사람들에 관한 내용들을 묻는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스스로가 힘들어지니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조언과 함께 진심이 느껴진다면 어떤 행동을 해도 통할 것이니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렇게 세심한 사람들은 공감과 배려를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예민하다는 말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쓰이는 게 조금 안타깝기는 하다.

이 책은 조우관 작가님의 감정에 대한 심리학 도서이다. 가장 선호하는 비소설 계열의 장르가 심리학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눈이 갔다. 심리학 내용이 나온다고 하면 뒤도 안 보고 바로 읽는 편이기에 나와 조금 거리가 먼 내용이기는 해도 궁금증이 생겼다. 예민함보다는 상처받았던 감정들을 회복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되었다.

총 일곱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향, 감정, 관점, 자존감, 인간관계, 성장, 회복으로 나누어졌고, 각각의 챕터마다 여섯 가지의 심리학 용어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심리학 용어 자체는 전공을 공부하면서부터 조금씩 배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심리학 실험이나 실생활에서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흥미를 주었다.

전부 흥미롭게 읽었지만 2 장의 <불안 작동 방식>과 4 장의 <자기 이해>, 6 장의 <친사회적 인간>이라는 파트가 가장 인상 깊었다. <불안의 작동 방식>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강박 장애와 출산 시 산모의 불안이 아기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을 건넨 간호사의 사례를 들어 불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메르스 이후에 강박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안을 막는 것보다 같이 이겨낼 수 있도록 친절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다. 청결에 대한 내용부터 재미있었는데 원래 손을 과하게 자주 씻는 편이기는 했지만 코로나 19 이후 더욱 심해졌다. 밖에 외출한 이후에는 알콜 스왑으로 전부 소독하고, 손을 씻기 위해 과정 조금 보태서 열 번 넘게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는 편이다. 또한, 불안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심한 편이어서 답답할 때가 많은데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이해>는 마음의 체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우울한 사람이 왜 밝아지기를 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의문이 등장하며, 책에 나온 것처럼 유도나 태권도 등 다양한 시합들은 체급에 맞게 경기를 치루면서 부모의 애정의 크기에 따라 자라온 마음의 체급은 왜 존중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각자에 맞는 안정감과 크기에 따라 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친사회적 인간>은 공감보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던 파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돕는 선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평범한 영웅들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의 관심이 쏠린 부분은 흔히 방관자 효과라고 불리는 제노비스 신드롬의 일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노비스 신드롬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강간과 살인을 당한 29 세 여성을 38 명이 보고도 신고하지 않아 미국에서 일어난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통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욕망에 불타오른 기자의 허위 사실이었으며, 실제로는 이웃들이 신고를 하거나 사망한 키티 제노비스의 옆에서 도왔다는 이야기. 결국 허구라는 이야기인데 이미 인터넷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방관자 효과 자체가 흔들리는 내용을 책으로부터 보게 되어서 충격이었다.

심리학 도서에 너무 자주 등장했던 전기 실험이라든지, 나-전달법에 대한 내용들과 용어들이 나와서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내용 자체는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까지 읽었던 심리학 도서와는 약간 다른 느낌도 받았다.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요구되어지는 역할, 편견과 고정관념들에 대해 의문을 던져 있는 그대로 살아도 좋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으로 이 책이 나에게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왜 정형화된 이미지대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경계하는 이유도 그 중 하나인데 여기에서 우울한 사람을 밝게 연기하는 것, 아이들에게 어른스럽다고 칭찬하는 것, 상처가 깊은 사람에게 무조건 이겨내라고 하는 것 등 사회로부터 요구되어진 인식들에 대한 반문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속이 시원했다. 내가 혼자서 가지고 있었던 세상의 반대된 생각들을 짚어 주면서 묘하게 위로와 동질감을 주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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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길을 잃다
엘리자베스 톰슨 지음, 김영옥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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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제인 오스틴을 꿈꾸는 삶은 확실히 아니었다. / p.194

이 책은 엘리자베스 톰슨의 소설로,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1920년대의 파리의 풍경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 시기에 대한 관심을 크게 두고 있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흥미가 생겼다. 알코올 중독자 엄마로 인해 꼬인 딸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 약간 두꺼운 책이어서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해나는 런던에서 제인 오스틴 투어를 맡고 있는 투어가이드이자 여행사의 직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뭘 해도 못 미더운 엄마 말라가 있다. 그녀는 엄마와 떨어져 살기 위해 런던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엄마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이는 엄마가 런던을 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외증조모의 문서와 함께 말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같이 파리로 떠나자는 제안. 그렇게 엄마와 함께 파리로 떠나게 되었고 거기에서 엄마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당탕탕 힘을 합치게 된다. 또한, 그곳에서 해나는 외증조모인 아이비의 일기를 발견하는데, 전체적으로 해나와 말라의 시점과 외증조모 아이비의 시점이 교차해 진행된다.

읽으면서 내가 해나였다면 말라의 제안에 흔쾌히 수락을 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업이 있는 나에게 갑자기 다른 나라에 가야 된다는 이야기 자체가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수락할 수 없는 제안이지 않을까. 아무리 급한 일이었다고 해도 어떻게 보면 직업이 걸린 문제이기에 섣불리 파리로 떠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옆에 항상 붙어 있는 어머니께서 제안해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할 것 같은데, 아예 남처럼 지내는 엄마의 제안이라고 한다면 굳이 나는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의 결과론을 놓고 만약 거절했다면 배가 많이 아팠을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해나의 감정이 무엇보다 깊이 공감이 되었던 이야기이다. 전적으로 해나의 시선으로만 읽게 되었는데 나름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엄마인 말라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 기준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보다 더 앞가림을 못하는, 어떻게 보면 책임감 하나 없이 자유분방 그 자체인 말라는 그저 나에게 철없는 어린 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능구렁이처럼 이리저리 피해가는 말라의 모습들을 상상하자니 명치 끝 단전에서부터 오르는 답답함을 가지고 읽느라 중간마다 멈추고 해소시킬 시간이 필요해 완독하는 게 오래 걸렸던 것도 있다. 그나마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것도 아니었다면 아마 독자의 입장에서 말라는 저주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해나의 과거 서사들이 신빙성 있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자신을 외할머니와 증조 외할머니께 맡기고 밖을 돌아다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더욱 강했다. 더군다나 외조모와 외증조모께서는 해나를 예뻐해 주셨고, 항상 믿고 지지해 주시기도 했다. 물론, 소설 내용 중에서는 엄마인 말라가 이 세 사람에게 받았던 감정들을 잘 풀어서 설명해 주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해나의 감정선에 따라 읽었던 나로서는 말라가 관계 개선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구조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버리고 갈 것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야 되지 않았을까. 말라에게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

아이비의 시점은 다이어리 형식으로 나오는데, 허밍웨이나 피츠제럴드, 피카소 등의 반가운 작가나 화가의 이름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사실 고전 문학와 미술 작품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선호하지 않는 편이어서 대표작들조차도 읽지 못했지만 워낙에 유명해서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1920년 중후반부터 1940년까지의 시대상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마 등장하는 이름들의 작품을 읽었다면 재미가 배로 더 컸을 것 같다.

외증조모의 문서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해나에게 큰 깨달음이자 든든한 버팀목을 주었다. 아마 항상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해나를 지켰던 아이비의 선물이지 않았을까. 엄마 말라에게는 큰 애정이 없었지만 해나를 응원했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결말이 만족스러웠다. 모정은 느낄 수 없었지만 딸이 가진 엄마를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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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궈징밍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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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외로움 혹은 황량한 적막. / p.142

이 책은 중국 작가 궈징밍의 청춘 소설로, 주인공인 이야오의 이야기이다. 이야오는 안타까운 환경에 처한 인물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학교 생활도 순탄치 않은데, 이야오 옆에 있는 치밍이라는 친구를 짝사랑하는 인물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아 괴롭힘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 친구와의 실수로 아이까지 임신하면서 절망스럽게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나온다.

치밍이라는 인물은 이야오와 정반대의 환경을 가졌다. 부잣집 아들이면서 부모님의 총애를 받는 아이. 외모도 준수해 학교에서 인기가 많기도 하며, 공부까지 잘한다. 요즈음 말로 표현하자면 엄마 친구 아들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오래 지낸 이야오를 좋아하고 있으며, 그녀에게 처한 여러 사건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봐왔던 청춘과 성장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이다. 청춘 소설의 절망편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다. 청춘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풋풋한 분위기는 느껴지지만 어른들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고독과 쓸쓸함이 묘하게 겹쳐졌다. 보통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들이 새싹에서나 볼 수 있는 초록이라는 색깔을 가졌다면 이 소설은 조금은 탁한 갈색과 초록의 어느 중간의 색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오가 성인이었다면 그래도 이겨낼 수 있는, 혹은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테지만 소설에서 이야오는 한참 성장하는 고등학생이다. 부모님의 이혼 하나로도 충분히 충격을 받을 시기에 어머니에게 물리적으로 학대를 받고, 남자 친구와의 실수로 임신까지. 어린 주인공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상황이다. 참으로 이렇게 불행한 서사를 때려 박은 드라마라면 애초에 포기했을 것 같다. 이야오에게는 너무 가혹한 상황과 기구한 운명에 감정적으로 몰입이 되어 읽어나가는 게 조금 어렵기도 했다.

치밍과 이야오의 사랑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청춘과는 조금 다르다. 소설에서 짝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인물들의 가슴앓이를 봤지만 묘하게 다른 결이라고 느껴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치밍의 사랑은 연민, 이야오의 사랑은 동경이라는 생각이라는 느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이성과 가까운 모습에 분명히 질투의 감정을, 서로에게 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거리를 두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과연 이 둘의 사랑은 순수하게 서로에게 이끌린 사랑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의 생각과 별개로 둘의 관계가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으면서 이야오의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한 문체에 감탄했다. 역시 제목 값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했던 문구는 352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에 나온 '삶 속에는 이렇게 슬픈 은유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였다. 소설의 모든 사건을 함축적으로 담은 이 문장. 누구에게는 별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문장이겠지만 나에게는 이야오의 운명을 설명해 주는듯했다. 그 외에도 평범한 일들을 나열하고서 이러한 모습을 프레파라트의 표본으로 비유한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이 표본을 청춘에 대해 명료한 주석과 설명을 붙여 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설을 읽는 것인가, 시를 해석하고 있는 중인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씹어서 소화시키거나 감정적으로 몰입이 되어서 조금 어렵게 읽기는 했으나, 4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몇 시간 내에 읽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쉬웠다. 어떻게 보면 예상하기 쉬운 전개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청춘이라는 시각을 비틀었다는 점과 시적인 문체에 있다고 본다. 청춘의 시각을 달리 해석하는 점은 뒤에 실린 서평과 작가의 말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이야오의 삶을 가까이에서 이렇게 보니 진짜 비극적이었다. 그러나 멀리에서 보면 그냥 청춘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마도 개개인의 인생을 들여다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 치밍과 이야오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 모습 등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청춘의 절망의 단편을 보았던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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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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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그녀를 구할 수 있을까. / p.72

이 책은 세이카 료겐의 로맨스 소설이다. 제목과 대충 줄거리만 보고 서인국 배우와 박보영 배우의 모 드라마 제목이 떠올랐다. 제목도 비슷하고, 내용도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그 드라마를 챙겨서 보지는 않았으나 지나가는 장면으로 박보영 배우의 죽음을 서인국 배우가 방해했던 내용을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죽을 때마다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름 흥미롭게 다가왔다. 거기에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니 봄에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이바 준은 스스로 실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던 중 사신을 만나 계약을 한다. 수명과 은세계를 교환해 3년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는데, 우연히 자살한 이치노세 쓰키미라는 사람의 기사를 보게 되고, 은시계를 돌려 죄책감으로 자살의 문턱에서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 이치노세 쓰키미가 자살을 포기하도록 설득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이치노세는 자살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아이바 준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은시계를 돌리고, 3년 시한부의 인생이 조금씩 다가온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서 가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기에 로맨스 장르의 소설로 읽혀지기는 하나, 개인적으로 서로의 인생을 붙잡는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읽게 되었다. 로맨스의 감정보다는 절망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인간애가 더욱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아픔을 가진 두 남녀가 서로의 편이 되어 의지하면서 삶의 이유를 찾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읽혔다. 물론, 그 의지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기반된 사랑이겠지만 말이다.

아마 내가 아이바 준의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사신과 은시계를 교환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절망의 순간에서 3년을 더 살아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나의 끝을 알고 있기에 의욕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다고 해도 큰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판타지이기 때문에 상상이 가능한 상황이었겠지만 사신과 거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바 준에게는 삶에 대한 미련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신이 아이바 준과 거래를 한 이유를 읽으면서 생각했었는데 아이바 준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려는 목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신이기 때문에 이치노세 쓰키미의 자살 보도를 보면서 그녀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시계를 돌릴 정도로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을까. 아이바 준의 생각과 성향을 대충 파악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다른 누군가의 자살을 막고, 삶의 이유를 찾아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온전히 그 사람을 책임질 수 없기에 선뜻 대답을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아이바 준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이치노세 쓰키미의 자살을 막았고,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물론, 그 역시도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아이바 준이 대단하다.

시작은 판타지였으나, 결말은 역시 로맨스였다. 원하는 결말이어서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로맨스 작품이기는 하나, 그전에 나에게 어렵거나 앞이 안 보이는 현실에서도 한결같이, 또는 온전히 자신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래도 삶은 살아갈만하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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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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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제발 가식과 위선이라도 떨어줬으면 좋겠다. / p.62



이 책은 김혼비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다정이라는 어감 자체를 좋아할 뿐더러 주로 잔잔하면서도 다정함이 묻어나오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선호하는 편인데 제목부터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주변에서도 에세이로 추천하기도 했었고, 예전에 읽었던 음식에 관련된 에세이에서도 김혼비 작가님의 글을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구매한 시점은 올해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동안 읽을 기회가 나지 않아 최근에서야 읽을 수 있었다.

전체 2부로 나누어져 있지만 목차와 별개로 저자가 느끼는 일상생활에서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산문집이다. 생활 밀착형 산문집이라고 느껴졌는데, 현실감이 그대로 와닿아서 너무 좋았다. 나 역시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또는 겪을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공감이 되었다. 나처럼 둔한 사람이 그냥 생각하지도 못하고 넘겼을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는 다소 깊게 서술이 되었던 내용들도 있어서 가벼우면서도 그렇게 썩 가볍지만은 않았던 글이다.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던 이야기들이었지만, <가식에 관하여>와 <조상 혐오를 멈춰 주세요>, <D가 웃으면 나도 좋아>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가식에 관하여>는 위선과 가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선과 가식은 늘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그런 편에 속하기에 이 이야기가 새로운 전환을 주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가식 또한 배려와 존중에서 나오는 다정함이라는 사실을 저자의 직장 상사를 통해 인식시켜 주었고, 세월호에 대해 질리니까 그만 이야기하자는 사람들에게 제발 가식을 떨었으면 한다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위선과 가식을 무조건 나쁘다고 지칭하는 게 하나의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상 혐오를 멈춰 주세요>는 여성의 전유물인 제사나 차례 음식 장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즈음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 문화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 그러한 와중에 상을 차리지 않으면 조상님께서 큰 벌을 주신다는 말들을 들어봤을 것이다. 저자는 생일 때 다른 사람들이 생일상을 차려주지 않거나 잊고 살아가면 그 사람들의 인생을 망칠 정도로 큰 분노에 휩싸이는지 되물으며, 이러한 괴담에 대해 한마디를 던진다. 조상님들께서는 후손들이 잘 살기를 바랄 테니 이런 가부장적인 제도의 괴담으로 조상 혐오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대체 무슨 내용인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글을 보고 나니 웃음이 나오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D가 웃으면 나도 좋아>는 현대 사회에서 차별적인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어렸을 때 같은 반이었던 D라는 인물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국어 시간에 '엄마 품처럼 따스한'이라는 직유법을 배울 때 D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이것 또한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로 구성되어 있는 정상 가족이라는 게 과연 맞는 말일까. 정상 가족이라고 칭하고 있는 경우보다 그외의 다른 가족의 형태를 생각보다 많이 보고 듣는다.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족, 혼자 사는 가족, 이혼이나 사별로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분과 함께 사는 가족, 요즈음은 동성 배우자와 사는 가족 등 너무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것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던 이 내용을 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섬세하면서도 다정한 저자의 이야기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저자는 마트에서 본 김솔통을 보고, 같이 여행을 다녔던 캐리어를 지키고, 수제 사리곰탕면을 먹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에게서 다정함을 느꼈지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가는 환경들 속에서 큰 다정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 산문집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다정함을 간과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다정함의 가장 기본은 체력이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있지만 거기에 섬세함이라는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해야 될 것 같다. 나에게는 평범한 일이었지만 그곳에서도 나 또는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따뜻하게 만드는 일. 그것은 체력보다는 섬세함에서 나오는 다정이 아닐까. 제목처럼 다정 소감들을 읽고 나니 나까지 다정 게이지가 차오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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