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게 시끄러운 오르골 가게
다키와 아사코 지음, 김지연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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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가 아이에게 닿고 있었어. / p.41

몇 년 전 친한 대학교 선배와 함께 일본 홋카이도를 갔었다. 그동안 홋카이도 하면 영화 러브 스토리의 배경인 오타루 운하와 삿포로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여행하면서 느낌과 풍경들이 인상 깊었다. 고즈넉하면서도 여유로운 동네. 또한,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외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어머니께 분명 가면 고향이 떠오를 것이니 하늘길이 열리면 꼭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아직까지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후에 예능 촬영지로 후라노와 비에이가 나왔고, 홋카이도가 배경인 한국 영화를 보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 책은 타키와 아사코의 소설이다. 나에게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르골에 대해 잘 몰랐고 지금도 문외한이지만 오타루 오르골당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안에서 들려왔던 오르골 소리와 바글바글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들이 그렇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오르골을 봤던 것은 처음이었는데 제목을 보자마자 그곳이 딱 떠올랐다. 내 기억은 그곳은 시끄러운 곳이 아니었기에 궁금해 읽게 되었다.

총 일곱 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다. 사연을 가진 어떤 사람이 우연히든 아니면 의도적이든 오르골 가게를 보고 들어와 오르골을 제작하는 이야기. 현실에 누군가 있을 법한 손님들이었다. 단지 오르골 가게의 주인만 비범한 능력을 가졌을 뿐. 손님이 마음에 가지고 있는 노래를 읽고 그에 맞는 오르골을 제작해 준다. 반신반의한 손님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는 손님도, 아마 나라면 반신반의가 아니라 어디에서 약을 파냐면서 하나부터 끝까지 믿지 않았을 듯하다.

모든 손님의 사연들이 흥미로웠지만 돌아가는 길이라는 사연과 모이다라는 사연이 마음에 와닿았다. <돌아가는 길>은 어머니와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토라는 이름의 아이에 대한 사연이다. 유치원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큰 자책감을 느낀다. 그러다 산책길에 보게 된 오르골 가게를 들어간다. 유토는 관심을 보였고, 주인은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를 듣고 어울리는 곡을 추천해 준다고 했다. 유토는 귀가 안 들리는데 가능할지 반신반의하면서 맡겼고, 며칠이 지나 다시 찾은 오르골 가게에서 감동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년에게 오르골을 선물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진동은 느낄 수 있어서 클럽이나 노래방 스피커 바로 앞에서 노래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스피커의 진동으로 노래를 듣고 춤을 춘다고 했다. 그러나 오르골은 진동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텐데 유토가 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것 또한 편견일 수 있기에 다시 생각을 고쳤지만 말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내 탓이라는 어머니의 죄책감도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었다.

<모이다>는 학교 다닐 때 밴드 활동을 했던 네 명의 사람에 대한 사연이다. 개성도 뚜렷한 친구들은 밴드 활동을 했었다. 다들 서로의 음악 스타일을 이해하면서 해왔었지만 루카와 갈등은 조금 심했던 것 같다. 특히, 음악인으로서 꿈을 계속 유지하느냐, 포기하고 취업을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세 명의 친구는 후자를, 루카만은 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쿄로 가자고 했다. 겉으로는 봉합이 된 듯하지만 네 명이 가기로 했던 여행에서 루카는 가지 않겠다고 했고 세 명의 친구들만 오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오르골 가게를 발견해 들어가 오르골을 맡겼고, 오르골을 찾으러 가는 날이자 고향으로 돌아가던 날에 쇼핑백을 보고 의문을 가진다.

결말을 보고 이 네 명의 사람들은 어떻게 선택했을지 궁금했다. 오르골 소리를 듣고 꿈을 다시 찾기로 했을까, 아니면 그냥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을까. 오르골 소리 하나로 포기했던 꿈을 다시 찾기에는 현실적인 장벽들이 많기 때문에 너무 드라마틱하기는 하겠지만 나의 결말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기억에 잊혀진 노래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노래가 오르골에서 흘러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색다른 방법의 노래여서 더욱 인상 깊었다.

여기에서 비범한 능력을 지닌 주인을 짝사랑하는 사람의 러브 스토리도 설레게 했다. 대놓고 나온 로맨스는 아니었지만 주인을 쳐다보는 사람과 작은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실망하는, 자신만 빼고 모든 사람이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마지막 결말 역시도 내 기준에서는 완벽했다.

굳이 홋카이도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북쪽 지방의 작은 동네와 운하 이야기 등을 볼 때 누가 봐도 내가 갔던 오타루였다. 어떻게 보면 이미 오타루를 다녀온 사람이기에 그 분위기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오면서 오르골당에서 들려온 노래가 재생될 정도로 나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킨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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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남자를 찾아드립니다 - 그웬과 아이리스의 런던 미스터리 결혼상담소
앨리슨 몽클레어 저자, 장성주 역자 / 시월이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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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에선 희망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 p.17

이 책은 앨리슨 몽클레어의 추리 소설이다. 멀쩡한 남자를 찾아드린다고 하는데 살인 사건이 나왔다는 게 관심이 갔다. 이게 무조건 없을 일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소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혼을 매칭하는 두 사람이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우연히 결혼식에서 만난 그웬과 아이리스는 속전속결로 바른 만남 결혼상담소를 열었다. 짝을 찾기 위해 온 고객으로부터 그럭저럭 운영하고 있던 어느 날, 어제 찾아온 고객이 오늘 피살되었다고 했다. 용의자는 그웬과 아이리스가 매칭해 준 남자라는 것이다. 증거까지 있다고 해 구치소에 수감이 되었으나 둘은 절대로 그런 사람을 소개해 준 적이 없다고 자신한다. 심지어 그웬과 아이리스마저도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된다. 이러한 누명을 벗고자 하나하나 샅샅이 조사하기로 한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동업을 한다는 게 의아했다. 아예 양끝에 있는 두 사람이라고 봐야 될 정도로 모든 것이 다르다. 아이리스는 군인 출신으로 말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행동파의 사람이다. 반대로 조금은 차분한 스타일의 사람이자 배려심이 넘치는 스타일이다. 심지어 남자를 만나는 것 역시도 아이리스는 남자를 좋아하는 반면, 그웬은 현실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아이와 사망한 남편을 생각해 정조를 지킨다. 이러한 둘이 만나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 있더라도 금방 문을 닫을 일이어서 흥미로웠다.

반대가 끌린다고 했을까. 조합 자체는 정반대의 성향이지만 서로에게 잘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죽이 너무 잘 맞는다. 몸이 먼저 나가는 아이리스를 누르는 것은 그웬의 역할이다. 자신을 막는 것에 대해 반발할 법도 한데 아이리스는 그것을 또 잘 따른다. 그런 부분을 보면서 둘의 조합이 납득이 가기도 했다.

나에게는 그웬과 아이리스, 둘과 경찰 등 두 명 이상이 모이는 순간에서 나오는 티키타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추리 소설을 잊을 정도였다. 옛날 흑백이나 무성 영화 등에 등장하는 코미디를 그대로 글로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者)는 남자를 의미하는 것인데 왜 사업자로 적었냐는 경찰의 물음에 그렇다고 사업녀나 여주인으로 쓰기에는 이상하지 않냐고 되묻는 둘의 대답을 보고 있으니 큭큭 웃게 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알고 있는 영미권 사람들이었다면 더욱 빵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전쟁 직후의 암울한 당시 상황들에 대한 표현들이 많았다. 특히, 그웬 자체가 남편을 잃은 과부로서 시어머니에게 간섭과 무시를 받는 사람이다. 희망을 가지기 위해 결혼상담소를 열었던 두 사람의 심정이 무엇보다 잘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 살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겪지 못한 사람이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참혹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었다.

읽는 내내 추리 소설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용의자를 찾아가는 상황 자체가 긴장감 넘치기 보다는 물 흐르듯이 보니 용의자를 찾고 있었다. 그만큼 유머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뭔가 어떻게 용의자와 결투를 벌일까, 라는 생각보다는 용의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사고를 안 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먼저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찾아가는 상황에서 사고를 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어려움은 유머나 웃음으로 승화시킨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아마 그웬과 아이리스가 딱 그런 이미지를 가진 주인공이었던 것 같다. 사실 분명 둘의 상황만 놓고 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읽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것은 아마도 유머로 상황을 승화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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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법칙 - 세상의 작동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가장 정확한 언어
시라토리 케이 지음, 김정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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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양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남겨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p.126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면서 본의 아니게 알량한 나의 지식에 숙연해질 때가 많다. 특히, SF를 읽을 때 유독 심하게 느끼는 편이다. 아무래도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보니 인물의 감정선 위주에 의지하게 된다. 그나마 감성 한 스푼 얹은 소설의 경우에는 감동이 그대로 다가오지만 부족한 지식으로 책에서 온전히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반감되기 때문에 항상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이 책은 시라토리 케이의 기본 교양서이다.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SF 소설을 읽으면서 더 큰 재미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SF 작가의 인터뷰집에서는 굳이 모든 과학 지식을 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책 좀 읽는 사람으로서 온전히 받고 싶은 게 욕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지식을 넓히고자 선택하게 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세상의 모든 법칙을 모아두었다. 물리, 화학 등의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심리와 사회 용어들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105 가지의 법칙을 최소 두 페이지 이상에 설명되어 있다. 첫 페이지는 이해하기 쉽게 그림과 이론의 이름, 정의, 이론을 만든 사람 등 표로 정리가 되었고, 다음 장부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서술한다. 그림을 보면서 읽으니 확실히 보기가 편했다.

책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고 그전에 법칙과 정리, 공리, 역설, 원리 등의 정의를 설명해 준다. 법칙은 대상의 보편적인 관계성을, 정의는 수학적으로 참이라고 증명된 명제를, 역설은 추론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말한다. 이렇게 정의를 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정작 누군가에게 차이를 설명하라고 하면 조금 헷갈릴 수 있는 기본 용어를 정리해 주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용어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파킨슨의 법칙과 피터의 법칙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파킨슨의 법칙>은 영국의 사회학자 시릴 파킨슨이 발견한 법칙으로 업무의 양과 상관없이 공무원의 수는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약간 엉뚱한 상상이지만 매년마다 선발 인원을 볼 때마다 일이 매번 이렇게 많이 늘어나나,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피터의 법칙>은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렌스 J. 피터가 발견한 이론으로 사람은 출세할수록 무능해진다는 사회학 이론이다. 기업 등의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점점 승급을 하지만 무능해진다는 뜻인데 이는 출세라는 게 운이 좋을 가능성이 높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신입 직원 역시도 업무에 미숙하기에 결론적으로 회사에는 무능한 직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웃기면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배웠던 옴의 법칙, 보일의 법칙, 주기율표 등의 법칙들은 반가웠다. 또한, 조금 심화되어서 몰랐던 무어의 법칙이나 피터의 법칙, 허블의 법칙 등은 생소하면서도 새로웠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과 다르게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지식을 끄집어내거나 시험 공부하듯이 암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과학적 지식들은 그림과 설명을 보면서도 어렵게 느껴졌다. 유치원생과 고등학생의 지식 차이가 있듯이 아무리 쉽게 풀어낸다고 해도 종이 한 장보다도 얇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 버겁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책을 한 번 읽고 끝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본 교양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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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레인보 로웰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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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의 모든 것. / p.210

어렸을 때에는 로맨스 소설을 멀리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로맨스 소설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다. 학창시절에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소설로 통해 다신 느끼는 것이다. 양아치들이 난무하는 인터넷 소설이 아닌 그래도 평범한 아이들의 소소한 사랑 이야기가 더욱 끌린다. 그런 순수함이 좋다.

이 책은 레인보 로웰의 청소년 소설이자 로맨스 장르의 장편소설이다. 남자 주인공이 한국계 학생이어서 관심이 갔다. 문화 차이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미국 청소년들의 연애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소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보통 문학이라는 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보니 기대하고 읽게 되었다.

여자 주인공은 엘레노어라는 열여섯 살 학생이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는데 빨간 머리와 다소 큰 체격으로 학교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 거기에 가정에서도 문제가 많다. 기분파인 것도 모자라 폭력을 휘두르면서 엘리노어를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난폭한 아버지 눈치만 보고 엘리노어에게 맞출 것을 강요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고함에 늘 불안감을 달고 사는 동생들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참혹한 현실이다.

엘리노어는 스쿨버스에서 파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아이의 옆에 앉는다. 처음에는 서로를 너무 싫어했다. 파크는 매일 타이를 매고 마치 남자처럼 입는 엘레노어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엘레노어 역시도 파크를 무시하듯 그냥 옆자리에만 앉는다. 그러다 파크가 만화책과 노래를 알려 주는 것을 계기로 엘레노어와 파크는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자신의 참혹한 환경을 알려 주고 싶지 않은 엘레노어와 아이들로부터 외양을 이유로 괴롭힘을 받는 모습을 본 파크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청소년들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 몰래 통화하는 내용이나 손 하나 잡는 것도 몇 번 고민하는 둘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 설렐 정도로 달달하게 보였다. 아마도 이는 청소년 시기의 첫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순수하면서도 서로가 전부였던 모습들이 흐뭇했다.

설렘과 별개로 조금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인종, 외양, 성별 등으로 차별하고 무시하는 내용들이 내 기준에서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이 되었던 것 같다. 체격이 큰 엘레노어를 '빅 레드'라는 별명으로 조롱을 한다거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을 비하하거나 하는 표현들이 그랬다. 이것 또한 어떻게 보면 미국의 현실이기는 하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너무 답답했다.

더불어 엘레노어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보면 분노가 생겼다. 딸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분에 따라 폭행을 저지르고 총을 난사하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소리 없이 우는 법을 배웠다는 내용이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는데 그런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엘레노어가 어쩌면 여성스러움을 거부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강하게 보여야 하기에 이해가 됐다. 어떻게 보면 성차별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아픔을 간직한 엘레노어를 품었던 것은 여러 이웃들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파크와 파크의 가족들이다. 조금은 독특하게 보였을 엘레노어를 다르고 특별한 사람으로 봤던 파크, 집에 가는 것이 불편하다면 언제든지 오라고 말하는 파크의 아버지, 엘레노어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파크의 어머니까지.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않았을까. 행복한 가족을 보고도 열등감보다는 파크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엘레노어 역시도 성장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1986년도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마음에 와닿을 정도로 현실감 있는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엘레노어와 파크는 누구보다 열렬히 10대의 첫사랑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나 역시도 과거로 돌아가 그들을 바라보는 10대 청소년이 된 것 같았다. 현실에 치여서 답답한 이 순간에 설탕 한 스푼 섞인 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도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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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는 죄가 없다 - 우리가 오해한 신화 속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탈리 헤인즈 지음, 이현숙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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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밤을 가르고 새벽이 태어나게 하라. / p.190

사람이라는 게 늘 비슷한 부류와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보통 성향이 안 맞는 경우에 거리를 두는 편이다. 그 중 하나가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 말라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무엇보다 믿는 편이기 때문에 법과 규칙을 포함해 금지된 일을 굳이 하는 사람들과는 조금 답답하다.

판도라가 나에게는 딱 그 부류다. 상자를 열지 말라고 하는데 왜 굳이 열어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내가 판도라의 입장이었다면, 혹은 판도라 당사자라면 절대 안 열었을 것이다. 마치 엄마가 오면 마시멜로우를 두 개 줄 테니 절대 먹지 말라고 했을 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아이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물론, 마시멜로우를 두 개 받고 싶어서가 아닌 먹지 말라고 하니 그것을 지켰을 테지만 말이다.

얼마 전 읽은 신화 주제로 한 소설이 재미있었다. 덕분에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 등의 신들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런 면에서 고르게 된 책이다. 특히,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신화들을 비틀어서 설명해 준다는 게 좋았다. 신화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모든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지만 메두사와 아마존 전사들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 메두사는 나에게 혐오감을 주는 이름이었다. 개인적으로 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병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머리가 뱀으로 가득하다니 나에게는 그저 보기도 힘든 그림이자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메두사 머리가 뱀처럼 변한 이유가 성폭력으로 보호해 주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과 대중 매체에서 비춰지는 메두사의 성적인 매력을 가진 신으로서 표현한다는 게 새로웠다. 그저 겉모습만 가지고 편견을 가졌던 스스로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마존 전사들에 대한 내용은 처음 보는 새로운 내용이었다. 신화에서 등장하는 전쟁 이야기는 능력을 가진 남성의 신들이 주인공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제우스부터 시작해 얼마 전 소설로 읽었던 아킬레우스 등이 그랬다. 아마존 전사들은 연대를 이루어 전장에 참여한다. 특히, 전쟁에서 죽은 자의 시신이 존중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인들이 아마존 전사인 펜테실레이아의 시신을 트로이아에 돌려주는 방식으로 표했다는 내용이 뭉클하면서도 잔잔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 판도라, 메두사, 헬레네처럼 익히 들었던 이름부터 아예 초면인 이름들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왜 신화 또는 신화를 활용한 고전 문학들에서 왜 그들을 나쁘게 묘사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익숙한 전자의 이름들에서는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초면인 후자의 이름들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에서 부정적인 편견을 바로 잡거나 비중이 적거나 없는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신화 속 여성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읽으면서 문학이나 뮤지컬, 연극 등에서 표현되는 여성들이 부정적으로 또는 미미하게 그려졌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점은 저자가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프로이트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한다는 점이다. 특히,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언급하면서 프로이트는 이러한 이야기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내용들이 나온다. 아무래도 성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진 프로이트 이론이 신화에서 비롯된 내용들이 많기 때문인데, 이것 또한 저자의 유머 코드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읽으면서 개인적인 거리감을 두었던 판도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나름의 정당한 이유 또는 이유가 있던 일이었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았을까. 아마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면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텐데 거의 백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감사함이 들기도 했다. 조금은 소외되었던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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