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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는 죄가 없다 - 우리가 오해한 신화 속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탈리 헤인즈 지음, 이현숙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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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밤을 가르고 새벽이 태어나게 하라. / p.190
사람이라는 게 늘 비슷한 부류와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보통 성향이 안 맞는 경우에 거리를 두는 편이다. 그 중 하나가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 말라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무엇보다 믿는 편이기 때문에 법과 규칙을 포함해 금지된 일을 굳이 하는 사람들과는 조금 답답하다.
판도라가 나에게는 딱 그 부류다. 상자를 열지 말라고 하는데 왜 굳이 열어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내가 판도라의 입장이었다면, 혹은 판도라 당사자라면 절대 안 열었을 것이다. 마치 엄마가 오면 마시멜로우를 두 개 줄 테니 절대 먹지 말라고 했을 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아이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물론, 마시멜로우를 두 개 받고 싶어서가 아닌 먹지 말라고 하니 그것을 지켰을 테지만 말이다.
얼마 전 읽은 신화 주제로 한 소설이 재미있었다. 덕분에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 등의 신들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런 면에서 고르게 된 책이다. 특히,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신화들을 비틀어서 설명해 준다는 게 좋았다. 신화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모든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지만 메두사와 아마존 전사들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 메두사는 나에게 혐오감을 주는 이름이었다. 개인적으로 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병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머리가 뱀으로 가득하다니 나에게는 그저 보기도 힘든 그림이자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메두사 머리가 뱀처럼 변한 이유가 성폭력으로 보호해 주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과 대중 매체에서 비춰지는 메두사의 성적인 매력을 가진 신으로서 표현한다는 게 새로웠다. 그저 겉모습만 가지고 편견을 가졌던 스스로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마존 전사들에 대한 내용은 처음 보는 새로운 내용이었다. 신화에서 등장하는 전쟁 이야기는 능력을 가진 남성의 신들이 주인공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제우스부터 시작해 얼마 전 소설로 읽었던 아킬레우스 등이 그랬다. 아마존 전사들은 연대를 이루어 전장에 참여한다. 특히, 전쟁에서 죽은 자의 시신이 존중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인들이 아마존 전사인 펜테실레이아의 시신을 트로이아에 돌려주는 방식으로 표했다는 내용이 뭉클하면서도 잔잔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 판도라, 메두사, 헬레네처럼 익히 들었던 이름부터 아예 초면인 이름들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왜 신화 또는 신화를 활용한 고전 문학들에서 왜 그들을 나쁘게 묘사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익숙한 전자의 이름들에서는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초면인 후자의 이름들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에서 부정적인 편견을 바로 잡거나 비중이 적거나 없는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신화 속 여성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읽으면서 문학이나 뮤지컬, 연극 등에서 표현되는 여성들이 부정적으로 또는 미미하게 그려졌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점은 저자가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프로이트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한다는 점이다. 특히,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언급하면서 프로이트는 이러한 이야기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내용들이 나온다. 아무래도 성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진 프로이트 이론이 신화에서 비롯된 내용들이 많기 때문인데, 이것 또한 저자의 유머 코드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읽으면서 개인적인 거리감을 두었던 판도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나름의 정당한 이유 또는 이유가 있던 일이었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았을까. 아마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면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텐데 거의 백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감사함이 들기도 했다. 조금은 소외되었던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