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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레인보 로웰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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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의 모든 것. / p.210
어렸을 때에는 로맨스 소설을 멀리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로맨스 소설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다. 학창시절에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소설로 통해 다신 느끼는 것이다. 양아치들이 난무하는 인터넷 소설이 아닌 그래도 평범한 아이들의 소소한 사랑 이야기가 더욱 끌린다. 그런 순수함이 좋다.
이 책은 레인보 로웰의 청소년 소설이자 로맨스 장르의 장편소설이다. 남자 주인공이 한국계 학생이어서 관심이 갔다. 문화 차이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미국 청소년들의 연애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소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보통 문학이라는 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보니 기대하고 읽게 되었다.
여자 주인공은 엘레노어라는 열여섯 살 학생이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는데 빨간 머리와 다소 큰 체격으로 학교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 거기에 가정에서도 문제가 많다. 기분파인 것도 모자라 폭력을 휘두르면서 엘리노어를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난폭한 아버지 눈치만 보고 엘리노어에게 맞출 것을 강요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고함에 늘 불안감을 달고 사는 동생들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참혹한 현실이다.
엘리노어는 스쿨버스에서 파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아이의 옆에 앉는다. 처음에는 서로를 너무 싫어했다. 파크는 매일 타이를 매고 마치 남자처럼 입는 엘레노어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엘레노어 역시도 파크를 무시하듯 그냥 옆자리에만 앉는다. 그러다 파크가 만화책과 노래를 알려 주는 것을 계기로 엘레노어와 파크는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자신의 참혹한 환경을 알려 주고 싶지 않은 엘레노어와 아이들로부터 외양을 이유로 괴롭힘을 받는 모습을 본 파크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청소년들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 몰래 통화하는 내용이나 손 하나 잡는 것도 몇 번 고민하는 둘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 설렐 정도로 달달하게 보였다. 아마도 이는 청소년 시기의 첫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순수하면서도 서로가 전부였던 모습들이 흐뭇했다.
설렘과 별개로 조금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인종, 외양, 성별 등으로 차별하고 무시하는 내용들이 내 기준에서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이 되었던 것 같다. 체격이 큰 엘레노어를 '빅 레드'라는 별명으로 조롱을 한다거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을 비하하거나 하는 표현들이 그랬다. 이것 또한 어떻게 보면 미국의 현실이기는 하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너무 답답했다.
더불어 엘레노어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보면 분노가 생겼다. 딸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분에 따라 폭행을 저지르고 총을 난사하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소리 없이 우는 법을 배웠다는 내용이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는데 그런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엘레노어가 어쩌면 여성스러움을 거부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강하게 보여야 하기에 이해가 됐다. 어떻게 보면 성차별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아픔을 간직한 엘레노어를 품었던 것은 여러 이웃들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파크와 파크의 가족들이다. 조금은 독특하게 보였을 엘레노어를 다르고 특별한 사람으로 봤던 파크, 집에 가는 것이 불편하다면 언제든지 오라고 말하는 파크의 아버지, 엘레노어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파크의 어머니까지.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않았을까. 행복한 가족을 보고도 열등감보다는 파크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엘레노어 역시도 성장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1986년도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마음에 와닿을 정도로 현실감 있는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엘레노어와 파크는 누구보다 열렬히 10대의 첫사랑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나 역시도 과거로 돌아가 그들을 바라보는 10대 청소년이 된 것 같았다. 현실에 치여서 답답한 이 순간에 설탕 한 스푼 섞인 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도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