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테일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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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하나가 무슨 힘이 될까 싶지만 그래도 한 줌의 위로라도 되었으면 한다. / p.233

올해 봄에 읽었던 고전 재해석 소설이 나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주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고전 동화를 뭔가를 바꿔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현대로 재해석이 된다면 어떻게 변할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상상력의 한계와 지극히 단편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확대가 되지는 않았다.

이 책은 다섯 명의 작가님들께서 함께하신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개인적으로 박서련 작가님과 심너울 작가님의 팬이면서 민지형 작가님의 전작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주변 지인들과 토론의 장을 펼쳤던 사람으로서 안 고를 수가 없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다섯 작품 모두 고전 동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서미애 작가님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민지형 작가님 '신데렐라', 전혜진 작가님 '숙영낭자전', 박서련 작가님 '당나귀 가죽', 심너울 작가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했다. 숙영낭자전과 당나귀 가죽의 경우에는 안 읽은 동화였기 때문에 새로움을, 다른 동화들은 내용을 알고 있어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상민과 양희 오누이의 이야기이자 가정폭력에 단면을 다룬 작품이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오누이는 귀가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배고픔에 지쳐 양희가 보채기 시작하자 상민은 김밥을 만든다. 그러던 중 집으로 아버지가 찾아왔다.

호랑이가 엄마를 잡아먹고 오누이를 노렸지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던 이야기. 어렸을 때에는 호랑이의 무서움만 생각했던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가정폭력을 한 아버지와 그 안의 남매로 생각하다니 첫 번째로 놀랐고, 두 번째로 소름이 돋았다. 소설이기 때문에 약간의 허구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가정폭력의 잔혹함을 기사나 현장에서 보고 들었기에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던 작품이다.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대기업의 인사팀 팀장을 맡고 있는 성훈과 인턴들에 관한 작품이다. 기업의 지침으로 면접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습 전형을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면접 합격자들 중에서 기업 간부의 딸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팀의 팀장들은 금수저의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성훈은 그것에 관심이 없지만 인사팀에 배정된 리라라는 인턴에게 관심이 가면서 호감을 표시한다.

신데렐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 금수저 남편에게 시집을 가서 팔자를 펴는 여자 주인공이자 드라마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이 소설을 그것을 비틀어 남자가 금수저 와이프를 맞이하고자 인턴들에게 호감을 사는 늑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드라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는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통쾌한 느낌을 받았다. 겨우 성별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말이다.

<수경-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은 출산하기 위해 한국의 시댁을 찾은 수경과 그를 보필하는 여자 희원, 시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수경은 미국에서 한국 남자 현중을 만났고, 결혼을 약속하며,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현중의 정체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 글로벌 기업의 자제였다. 출산할 때까지는 한국에 있자는 현중의 제안에 따라 왔지만, 그는 논문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미국에 있기로 한다. 한국에서 희원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한, 알 수 없는 꿈을 꾸게 된다. 시댁이 불편함을 떠나서 뭔가 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숙영낭자전이라는 이야기를 모른다. 재벌이 나오는 막장 드라마의 향기를 느끼면서 읽게 되었는데 가장 새로움을 느꼈던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가장 고전의 분위기가 잘 보이기도 했었다. 현중이 살고 있는 집부터 수경이 꾸는 조선시대의 꿈까지 읽는 내내 고전과 현대가 연결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숙영낭자전을 읽고 다시 재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대기업의 이사인 채나연을 둘러싼 죽음을 찾는 작품이다. 어느 날부터 배우, 정치인 등 유명인 남성들이 심근경색이라는 질환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저 남자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이 채나연 이사를 찾아오는데 주인공은 채나연 이사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사람으로서, 그녀를 아는 사람으로서 절대 살인할 사람이 아니라고 장담한다.

추리 소설의 특성을 띄고 있기도 해서 나름 재미있었던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왜 남성들이 죽는 것인지, 채나연 이사가 진짜 죽인 것인지, 경찰은 왜 찾아오는지 등 사망 사건을 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누가 봐도 채나연이라는 사람은 원한을 살 법한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인데 말이다. 결말을 보고 나니 납득이 되면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중수 이상의 독자라면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을 것 같다.

<나의 퍼리 대통령님>은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린 한 SNS 유저와 전직 과거를 지닌 국회의원 비서의 이야기이다. SNS에 대통령이 신체를 개조하는 퍼리라는 글이 올라온다. 글을 올린 유저는 대통령과 같은 대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며, 당나귀 귀로 개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증거 사진을 올렸다. 민심은 대통령의 지지율로 증명이 되었으며, 상대 정당에서는 대통령을 공격한다. 그러던 중 대통령의 정무수석이 국회의원 비서를 찾아와 SNS 유저의 정체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현대와 가장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첫 번째 작품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아픈 이야기라고 하면 이 작품은 지금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위험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대통령 우상화나 신격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한다. 정치에 대한 가치관이나 신념, 정치인들의 공약이나 사실 관계를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일. 대단히 위험한 일인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다른 의미의 대쪽같은 신뢰를 보이는 비서를 보고 있자니 답답하면서도 가장 큰 공감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역시 고전을 재해석하는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느꼈다. 전에 읽었던 소설이 SF 상상력으로 나에게 재미를 주었다면 이번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다. 더불어 가정폭력이나 무조건적인 정치 지지, 신데렐라 스토리 등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점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역시 고전과 현대를 막론하고 소설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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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생의 밤
이서현 지음 / 카멜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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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못해도 추락을 하더라고요. / p.77

유행어 중에 '이생망'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 라는 문장의 줄임말. 처음에는 몰랐는데 주변 친구들이 자꾸 이생망이라고 해서 의미를 물어 알게 되었다. 나도 한때는 이생망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고 다니다 이대로 두면 말이 씨가 된다고 진심으로 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지금은 아예 입밖에도 꺼내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이서현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이생망처럼 줄임말로 쓰는 용어인 줄 알았는데 검색을 해도 명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아 더욱 관심이 생겼다. 나에게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다가왔는데 지금 내 또래 사람들의 현실에 공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사실 제목을 생각했던 것은 '망한 인생의 밤'의 줄임말이어서 망생의 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보니 '지망생의 밤'의 줄임말이었다. 처음에는 주인공들이 사회적으로 망한 인생인 것 같기는 한데, 우울하거나 절망적인 상황인 것 같기는 한데, 묘하게 그런 분위기는 없었던 게 아마도 지망생들의 이야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오히려 희망적이거나 위로를 받는 느낌까지 들었다.

초단편 소설집으로 총 열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나이가 들어 프로게이머를 도전하는 사람부터 춤만 추던 사람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귤 따러 제주도로 간 사람, 웹툰 작가가 꿈이지만 이모티콘을 그리는 사람, 장기 공무원 준비생 등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적으로 보면 망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사람들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인물들이어서 공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리얼리티 쇼>와 <이모티콘의 여왕>, <뽑기의 달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리얼리티 쇼>는 전 남자 친구를 프로그램에서 보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전 남자 친구는 작가로 책을 잘 팔았는지 TV 프로그램에 나온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주인공 여자는 그를 마치 죽여버릴 것 같은 느낌으로 시청한다. 책은 주인공 여자와 연관된 내용의 소설이었으며, 주인공은 라이브 문자를 보낸다.

실제로 전 남자 친구를 TV 프로그램에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거기에서 나와의 과거사를 털고 있는 전 남자 친구를 보는 심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불가능할 것 같다. 아마 말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지 않을까. 이런 내용은 <망생의 밤>의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하는데 나의 상황이라고 감정이입을 해서 보았던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내내 어이가 없었다.

<이모티콘의 여왕>은 웹툰 작가를 지망하지만 이모티콘으로 꽤 수익을 내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애인은 웹툰 작가를 권하면서 이모티콘을 만드는 주인공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주인공은 나름의 항변을 하고 있지만 이런 말이 통할 일이 없다. 그렇게 주인공은 애인에게 조금은 평범하면서 특이한 방법으로 이별을 고한다.

요즈음 이별 방법을 잘 표현한 소설이다. 예전에는 진짜 카카오톡이나 DM으로 이별 날리는 인간들이 그렇게 책임감 없어 보였다. 연애의 시작은 몰라도 끝은 꼭 보면서 전해야 하는 게 흔히 말하는 국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남보다는 전화가, 전화보다는 메시지가 익숙한 세대에서는 이것 또한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나가서 이별을 고하면 커피를 맞을 텐데 서로 깔끔하게 비대면 이별 방식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뽑기의 달인>은 장비 비용을 지원해 달라는 주인공은 서른다섯의 가구 디자이너 지망생이다. 5만원으로 교육을 받고 가구 디자인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백팔십을 빌려 달라고 했지만 부모님께서는 거절한다. 교육한 것을 날릴 수는 없으니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다 이성 친구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빌려 달라는 말을 선뜻 말할 수 없다. 말을 빙빙 돌리다 500 원짜리를 탑처럼 쌓아 뽑기를 하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도 뽑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뽑기와 취업의 공통점을 말하는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처음부터 원하는 인형을 노리는 사람이 있고, 될 것 같은 인형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 개인적으로 뽑기의 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질이 있는 편인데 보통 후자를 선택해 뽑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보면서 때 아닌 자아성찰과 깊은 고뇌의 시간을 가졌다. 왜 취업과 인생은 전자를 하려고 아등바등 대고 있을까. 될 것 같으면서도 잘하는 것을 고르면 되는데 왜 원하는 것만 노리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조금 어지러웠던 소설이었다.

전반적으로 크게 공감이 되면서 희노애락을 경험했다. 나의 기대처럼 딱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중반까지의 사람이라면, 취업 준비를 했던 사람이라면, 지망생이라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집을 덮으면서 인간은 누구나 어떤 지망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위로와 공감이 되었던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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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의 마법
이준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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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고유의 향과 색이 있다. / p.189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타의적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물론, 회사나 가정의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사적으로 만남이 제한되다 보니 집과 직장 또는 집과 학교만 왔다갔다 하는 기간이 길어지게 됐다. 오죽하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사람을 만나지 못해 우울감이 곧 많은 국민의 흔한 증상이 되었다.

은둔형 외톨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발적인 집순이로서 처음에는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대학교 시절에는 그냥 집에 있는 게 좋아서 방학 내내 집밖을 안 나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것 또한 피로도가 쌓이면서 나 역시도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은 혼자 중고서점을 둘러보는 것이 취미가 될 정도로 바깥 구경을 실컷 하는 중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준호 작가님의 소설이다. 나에게는 동질감이 느껴져서 관심이 갔다. 낯선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부담이면서 싫기도 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어서 은둔형 외톨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크게 공감하고 있다. 그들이 사람을 만나면서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유미와 주원이다. 주원이는 하나뿐인 친구의 죽음 이후 충격을 받아 자퇴까지 했다. 이후 가족을 설득해 혼자 나가서 살게 되었지만 본가에도 가지 않는다. 또 다른 주인공인 유미는 공간 마법 능력이 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공간을 선물로 선사해 주었지만, 마법으로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할머니가 계시는 외딴 시골에 와서 살고 있다. 둘은 밖에 나가더라도 사람이 없는 어두운 시간을 선택해 공원을 도는 등 극도로 사람을 꺼려하는 은둔형 외톨이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주원이는 계획을 세워 하나씩 실천해 나가기로 결심한다. 밝은 시간에 공원에 나가기도 하고,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주문해 마시기도 하는 등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연습을 하게 된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유미는 할머니의 유언 편지를 보고 용기를 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모텔에서 숙식한다. 둘은 그렇게 은둔형 외톨이의 모임을 알게 되어 참석한다.

공감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먼저 들었다. 부모를 죽인 패륜아 낙인 찍힌 유미와 하나뿐인 친구를 잃어 사회로부터 격리가 된 주원이 은둔형 외톨이가 된 이유가 스스로의 문제가 아닌 세상과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나오지 못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스스로 노력한다고 세상 밖에 쉽게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둘의 상황 자체가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소설에서는 주원이와 유미뿐 아니라 은둔형 외톨이의 모임의 회원들도 등장하는데 그들 역시도 다 상처를 받고 세상 밖을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모임에서 서로 말 한 마디 없이 오랜 시간을 가만히 있었다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 숨이 막혔다. 심지어 커피 하나 시키자는 말조차도 없었다는 것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나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망설이는 둘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읽었던 것 같다. 모자를 꾹 눌러 쓰고 밖에 나왔던 주원이나 서울 가는 버스 티켓 하나 예매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행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에게 말을 걸기 위해 속으로 용기를 되뇌이고 있는 둘의 마음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사실 아무리 집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라는 극단적인 사례에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이기는 하다.

소설의 중반부에 들어가면서 이들이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나마 연습을 했었던 주원이와 유미의 경우에는 사회에 있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관계를 맺을 정도로 큰 발전을 보여주었고, 다른 모임의 회원들도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더욱 그들을 응원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들에게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법을 가진 유미의 사례만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의 원인은 주변에 있을 법한 일이자 사람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요즈음은 전화 공포증부터 시작해서 사회에서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용어까지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이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와닿을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독자들에게는 공감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한번쯤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시선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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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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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행복보다 불행을 위해 쓴다. / p.124

인터넷에서 기욤 뮈소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인들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한국 작가 위주의 소설을 읽었던 나에게는 그들이 인기가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글을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기욤 뮈소의 한국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다. 이 책이 발간된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또 고양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아직 읽은 작품이 없어서 그 댓글을 보고 관심이 갔다. 표지에 자유의 묘신상이 있을 뿐인데 그렇게 질려하는지 궁금했다. 읽으면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양이, 문명에 이은 세 번째 연작 소설인 이 소설은 고양이 여왕이라고 지칭하는 바스테트가 주인공이다. 바스테트는 고양이 형태의 이집트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머리에는 말을 통역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옆에는 아들인 안젤로와 라이벌 에스메랄다, 남자 친구인 피타고라스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앵무새, 보더콜리 개, 인간인 집사 등 다양한 생물들이 있다. 그들은 전염병과 쥐가 우글거리는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뉴욕으로 가고자 배에 몸을 싣는다. 항해 도중 많은 사람들과 고양이들은 목숨을 잃었으며, 바스테트는 동료를 잃은 슬픔을 간직하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뉴욕의 현실도 참담했다. 쥐가 우글거리는 것은 물론, 쥐를 피해 인간들과 개, 고양이들은 높은 빌딩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빌딩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바스테트를 비롯한 배에 있던 생물들도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쥐들의 공격으로 빌딩이 무너지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빌딩에 있던 무리들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의한다. 과연 바스테트와 생존자, 생존견, 생존묘들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그리고 바스테트는 원하던 것처럼 고양이 세상의 여왕이 될 수 있을까.

시리즈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걱정을 많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제쳐놓고 고양이와 문명을 읽어야 하나 생각했었다. 인물 이름과 대략적인 사건들을 알아야 소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전편의 내용들이 등장할 때면 바스테트가 다시 대략적인 흐름을 서술해 주어서 전작을 굳이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좋았다. 특유의 주인공 캐릭터를 잃지 않으면서도 센스 있게 알려 주는 방식에 감탄했다. 마치 독자가 이것도 모르냐는 식의 빈정 아닌 빈정이라고 할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개인적으로 고양이 시점에서 본 인간들의 모습들을 인상 깊게 봤다. 인간을 멍청하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 남자 친구를 의심하는 집사에게 조언하면서 속으로는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감정이 격앙되는 부분 역시도 깔보듯이 이야기한다. 바스테트의 생각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인간인 내가 한 수 아래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흥미로웠고, 이 부분이 참 재미있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지식 능력을 높게 사서 수시로 공부해 습득하고자 한다. 심지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것을 활용해 쥐들을 공격할 수 있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인간의 지식 USB인 ESARE를 원하는 티무르가 인간을 욕할 때에도 바스테트는 인간의 편에서 옹호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인간을 무시만 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현실적이면서도 이성적인 고양이라고 봐야 될 것 같았다.

바스테트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사건 에피소드 다음에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이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마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게 진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바스테트의 이집트 여신 이야기와 사람들의 마약을 보면서 고양이의 마약 정보를 알려 주는 등 나름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상절지백이라고 줄여도 되지 않을까.

처음 접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왜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는지 이유를 실감했다. 행성이라는 작품만 읽었기 때문에 또 고양이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된다면 고양이와 문명을 읽을 때면 아마 댓글을 적었던 많은 독자들처럼 반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소 자신감이 과한 듯하지만 그만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바스테트의 이야기를 보면서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네가 인간보다 낫구나." 이 말을 새삼스럽게 바스테트에게 건네며 리뷰를 마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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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의 손길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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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을 잇는 의사가 되어라. / p.281

대학교 졸업 전까지만 해도 가장 최근에 보는 드라마가 뭐냐고 물으면 "야인시대(2003)"였고,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뭐냐고 물으면 "보고 또 보고(1999)"라고 대답했었다. 그만큼 호흡이 길면서 맨날 출생의 비밀이나 밝히는 드라마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좋았고 모처럼 괜찮은 드라마가 있다고 해도 감질나게 매주 중요한 파트에서 끝나서 일주일 기다리는 것도 딱 질색이었다.

그러던 내가 대학교 졸업 이후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드라마로 드라마 덕후가 되었다. 예전에는 다운로드를 받아서 수시로 돌려서 봤고, 현재는 OTT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지금 웬만한 곳은 다 정액제로 끊어서 보는 중이다. 대부분 인생 드라마를 돌려서 보는 것을 선호한다. 나에게 인생 드라마가 뭐냐고 묻는다면 태양의 후예, 응답하라 시리즈, 뷰티인사이드 등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지만 지금은 단 하나만 꼽는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직도 식사할 때 습관적으로 돌려서 보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펼쳐지는 휴먼 스토리가 좋다.

이 책은 치넨 미키토의 의학 소설이다. 보자마자 눈에 꽂혔던 책이다. 실제로 의사인 작가의 이야기를 보니 더욱 신뢰가 갔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병원에서 펼쳐지는 휴먼 스토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인생 드라마로 뽑는 드라마 덕후로서 글로서 이러한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이라 유스케로 환자에게 진심이면서 누구보다 의사에 열정적인 의사이지만 인력이 부족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이다. 집에 가는 날보다 병원에서 새벽을 보내는 날이 더 많은, 사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아카시 과장으로부터 세 명의 인턴을 흉부외과에 입국시키면 누가 봐도 좋은 병원으로 파견을 보내준다는 제안을 받는다. 흉부외과의 현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유스케는 그들을 흉부외과에 입국시키고자 참혹함을 알려 주기도, 숨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환자와의 관계, 인턴과의 병원 생활을 그리고 있다.

뭔가 보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드라마를 많이 떠올리게 했다. 환자의 가족을 생각해 흉부외과보다 다른 과의 수술을 말할 때, 흉부외과에 오라고 말할 때 등 중간마다 나오는 내용들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다루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특히, 우사미 레이코라는 인턴이 자신의 가정사로 환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이해 의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에는 더욱 크게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스케의 마인드와 열정이 마음에 와닿았다. 쉬는 시간을 활용해 연습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환자를 생각해 공감해 주고,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한 순간에는 의료적 지식으로 정확하게 치료했다. 인턴을 더 좋은 의사로 만들기 위해 알려 주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런 의사가 있다면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들었다. 상사였다면 누구보다 믿고 따를 수 있는 동료일 것 같다.

흉부외과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유스케의 야망도 결국은 좋은 의술로 환자를 구하기 위함이라는 마음이 무엇보다 잘 느껴졌다. 오죽하면 순환기내과의 후배가 그에게 너무 성실하다고 충고를 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유스케는 사내 정치에 관심도, 농땡이 하나 부릴 줄 모르는 그런 굳은 의사였다. 그런 점을 보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99즈 5인방과 이미지가 겹쳐서 보이기도 했었다.

옮긴 이의 말을 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언급이 나온다. 누가 봐도 자상하면서 완벽한 의술을 가지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들은 비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 드라마이지만 이 소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숙한 의사의 성장 스토리이기에 드라마와 다르다는 점. 솔직히 일부는 공감한다. 병원을 다녔어도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그런 의사들은 못 봤다. 환자에게 자상하면서도 섬세한 의사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휴먼 스토리보다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휴먼 스토리"에 중점을 두고 본다면 같은 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의술에 관련한 부분은 그렇다고 쳐도 인간의 희노애락은 똑같다. 아픈 사람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환자, 가족과 안타까운 이별의 길을 걷는 환자가 있다. 거기에서 냉철하고도 따뜻한 판단으로 의술을 행하는 의사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유스케와 99즈는 인간적인 의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잇는 의사가 되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다. 그리고 과장의 말씀을 받들어 직업인으로서 의술에 진심인 유스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다. 비록 소설에 있는 인물이지만 유스케를, 힘든 흉부외과에서 의사로서의 삶을 헤쳐나갈 세 명의 인턴을 응원할 수 있는 이야기. 의사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세밀하면서도 현실적인 병원 이야기와 그 안에 펼쳐진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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