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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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인간이 참 가끔은 끔찍한 종족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끔찍하게 훌륭한 존재이기도 하죠.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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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늘상 언급하지만 성악설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인간에게 많이 데인 탓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누군가에게 행하는 선의는 학습으로 배웠을 것이며, 무언가 자신을 향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부터도 살아오면서 누적된 경험의 결과로 타인을 위한 희생을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악한 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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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앨런 레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일상에 치이는 일은 딱히 없는데 이상하게 자극적인 이야기보다는 건강한 맛을 주는 이야기가 끌리는 시기다.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휴머니즘 소설이라는 소개에 관심이 갔다. 특히, <스토너>, <나의 친구들> 등의 작품을 읽고 많은 여운을 느꼈던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참새가 아니었다. 마음이 동하기를 바라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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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한 칠십 대의 노인 테오다. 업무차 조지아의 골든이라는 동네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골든에 있는 한 카페에 걸린 초상화를 보고 한 가지 큰 계획을 세운다. 그림 안의 주인에게 그 초상화를 선물하는 것. 테오의 기가 막힌 프로젝트에 응한 이들은 반신반의하지만 곧 그의 친구가 된다. 테오가 쏘아 올린 작은 선물이 마을을 바꾸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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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도파민이 없는 그 자리에 잔잔함이 꽉 채워 주어서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테오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사람에게 지쳐 힘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아마 비슷한 맥락으로 다 읽고 나면 바닥난 인류애가 다시 차오르는 힐링 소설이라는 확신이 들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스토너> 다음 책으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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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테오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공손하게 초상화를 선물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반응을 제각각이었다. 이미 화가를 알고 있는 첫 번째 사람이었던 미넷은 의심하지만 호기심으로 분수대로 나갔고, 까칠한 반응을 보였던 켄드릭, 주절주절 말이 많았던 엘렌, 다짜고짜 폭력을 휘두른 클리브에 이르기까지 낯선 부탁에 대응하는 이들의 태도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라면 아마 켄드릭의 반응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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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도 악의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세상을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먼저 보기 때문에 그만큼 크고 많은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테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골든을 선으로 가득찬 곳으로 만들었다. 여전히 악을 더 믿는다. 그럼에도 테오가 그린 하나의 스케치로 사랑의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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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엄금 ㅣ 엄금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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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지켜보는 것 같은 기척이요.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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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 없다는 사람들도 공포의 대상은 있기 마련이다. 작고 사소한 벌레가 될 수도,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귀신이 될 수도, 도시에서 마주치기 힘든 산짐승이 될 수도 있다. 평소 겁이 많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무서운 게 생각보다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뱀이다. 어렸을 때 꿈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깊게 남은 탓인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뱀 특유 눈빛을 보면 큰 공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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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치넨 미키토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사적인 취향이지만 의료 분야의 미스터리 소설 작가 중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신한다. 예전에 읽었던 <구원자의 손길>에서는 차가운 의료 미스터리가, <이웃집 너스에이드>에서는 인간미가 가미된 따뜻한 의료 미스터리가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새로운 형식의 미스터리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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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한낮 도쿄의 한 축제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공중전화 박스에 도와 달라고 외치던 한 청년이 도끼를 빼앗아 스물여덟 명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 중 열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용의자는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했고, 이를 조사하는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자는 각종 증거와 용의자를 정신 감정한 우에하라 가스미의 인터뷰를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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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한때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관하여>나 소소하게 언급되었던 <가족 살인>처럼, 인터뷰나 기사, 사진 등으로 파편적으로 정보를 주는 형식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독자 입장에서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인물이 용의자를 관찰하는 인터뷰가 스토리를 연결하는 효과가 있어서 꽤 괜찮았다. 최근에 읽은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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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결말에 드러나는 진실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단순하게 용의자를 정신 감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직접 발로 뛰면서 살인 동기를 찾으려고 했고, 용의자의 알 수 없는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를 취재하는 화자도 그 진실에 마주하게 되는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읽으면서 이미 예상하고 있던 시나리오지만 알고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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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머리에는 독자에게 예기치 못한 정신적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에 대한 문구가 실렸다. 절대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읽더라도 언제든 중간에 그만둘 수 있다. 용의자가 직면한 공포는 어느 독자에게는 트라우마로 남고, 또 다른 독자에게는 뇌리에 깊이 박히지 않을까. 상상력과 거리가 멀지만 작품에 실린 시각적 효과에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되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시선이 곧 공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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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네후네 하야세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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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 라고 하면 돼. 그게 다야.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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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나 유령이 나오는 소재의 매체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온다고 해도 체감상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다. 단지 순간 놀라게 만드는 감정이 싫을 뿐 귀신이 무서워서 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보고 나면 며칠 정도는 꿈에서 괴롭힐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자주 잊혀진다. 나에게 공포를 주는 대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이다. 그게 피부에 닿는 순간부터 꽤 오랫동안 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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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네후네 하야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최근에 SNS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에게 하나같이 소개하는 작품이 아사이 료 작가의 <생식기>다. 유쾌함과 진지함을 모두 갖춘 수작이어서 재미있게 읽고, 또 많이 영업하는 중이다. 그 소설을 발간한 출판사의 신작이어서 당연히 기대를 가지고 접하게 되었는데 제목에서 호기심을 느꼈다. 입주 조건이라는 단어 자체는 익숙하지만 뒤에 붙은 부제가 독특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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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다카히로다. 다카히로에게는 애증을 넘어선 공포의 존재가 있다. '그 사람'이라고 칭하는 어머니이다. 월급을 받자마자 어머니께 바로 드려야만 하는 그 지긋지긋한 상황 안에서 결국 다카히로는 죽음을 다짐한다. 그 순간 그에게 보인 하나의 전단지가 있다. 십오만 엔만 주면 입주할 수 있다는 멘션 광고였다.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던 다카히로는 이상한 조건을 가진 멘션에 살기로 계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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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다카히로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중심이 되는 인물이 갑자기 바뀐다는 점에서 혼란스러웠다. 예를 들면, 다카히로의 가정사를 이야기하고 있다가 다음 챕터에서 이웃이 하는 괴담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스토리의 긴장감을 주기에는 충분했지만 뚝뚝 끊기는 듯한 전개가 낯설었다. 최근 유행하는 방식의 추리 장르 소설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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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다카히로의 태도가 흥미로웠다. 제목에서 언급이 되는 것처럼 옆집에 사는 이웃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입주 조건이 붙는다. 초반 시작부터 다카히로에게 괴담을 전하는 이도 바로 옆집 이웃이자 유령이었다. 유령에게 듣는 무서운 괴담, 그리고 스물세 명이나 도망친 멘션에서 혼자 고요하고 차분하다. 이웃 유령을 마치 사람 다루듯 대하는 다카히로의 말과 행동은 새로운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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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분위기가 가득한 멘션에서 홀로 정적인 스탠스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다카히로에게는 유령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큰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저 너머의 죽음마저도 생각할 정도로 '그 사람'이 악몽처럼 느껴졌던 다카히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령에게 살아갈 힘과 위안을 얻는다. 피보다 물이 진할 때가 있다. 그런데 여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물보다 더 진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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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거울 - 파국의 14세기, 흑사병, 백년전쟁, 그리고 움트는 혁명
바바라 터크먼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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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지만 모순은 단지 증거가 상충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일부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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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다. 한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은 개인이 변화하는 바탕이 되고,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겪는 일은 그 나라의 뿌리가 되고, 한 대륙에서 또 다른 대륙으로 향하는 항해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운명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시간 흐름이 아닌 큰 무언가를 바꾸고 기틀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자주 역사를 접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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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바라 터크먼 작가의 역사 서적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역사 분야의 책과 거리를 두는 편에 가깝다. 아니, 역사가 주제인 소설 작품 역시도 다른 장르에 비하면 덜 읽는 편이다. 역사가 중요하다면서 이렇게 멀리하는 것이 모순이지만, 지식이 부족하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한 작품이다. 특히, 서양의 역사를 모르니 독서의 갈증이 더욱 커졌고, 부디 이 책이 해소해 주기를 바라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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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사 서적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귀족 앙게랑 드 쿠시 7세다. 한국에서 세계사를 배웠더라도 낯선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14세기 유럽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이었다. 왕도 아닌 한낱 귀족인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책은 중세 14세기의 유럽을 무대로 그의 삶을 따라간다. 격동하던 당시 유럽의 시대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터크먼의 눈과 앙게랑의 발자취를 따라 그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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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려웠던 책이었다. 언급한 것처럼 역사와 거리가 먼 독자 중 한 명이다. 처음 접하는 인물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출판사에서 주신 정보와 AI를 활용해 하나하나 검색하면서 읽었다. 쉽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 옛날이야기를 듣던 것 같은 몰입감 덕분이었다.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이 책의 일부만 접했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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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흑사병은 1347 년 무역선의 선원들에게 생긴 검은 종기 같은 증상에서 이름이 붙여진 질병이다. 앙게랑의 관점에서 보면 어머니를 잃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세계사 관점에서는 유럽을 휩쓸었던 최악의 질병이기도 했다. 흑사병 원인의 무지와 전염병에 걸릴 것 같은 공포가 인류를 잔인하게 바꾸어 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 시대와 다르지 않아 묘한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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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역사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 거대한 이야기를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전쟁과 권력 다툼,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저항에 이르기까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과 내용만 다를 뿐 같은 줄기를 흐르고 있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역사를 피하는 이유가 이곳에 있지 않았을까. 이 도전이 어렵지만 의미가 있다. 이 리뷰를 읽는 당신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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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
이희영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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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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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드라마에서 나오는 '망한 사랑' 소재들은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주말 드라마나 일일 저녁 드라마는 인간의 심연을 보는 듯했다. 드라마를 시청하시는 어머니 옆에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될 때가 많았지만 그 장면을 보기 싫어서 저녁을 급하게 먹은 적도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설정과 클리셰로 범벅이 된 일일 저녁 드라마는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열렬한 애청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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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희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주변에서 청소년 소설 추천을 많이 받았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지만 <페인트>라는 작품이 좋으니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정작 청소년 소설을 잘 읽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망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면 보지도 않고 지나갔을 것이다. 호기심이 결국 이겼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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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게는 잎새와 찬희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 셋이 함께 술을 마시지만, 주인공은 유독 잎새에게 조금 더 의지하는 편이었고, 잎새에게 자신이 집필한 소설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소설에는 세 남매가 나온다. 이복 남매가 된 정과 현, 그리고 그들을 관찰하는 막내 진이다. 진은 첫째 정에게 강한 애착을 느끼지만 정과 현의 사이에 유독 신경이 쓰인다. 작품은 주인공, 잎새, 찬희의 이야기와 정, 현, 진의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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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등장하는 인물의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언급한 것처럼 인물만 총 여섯이다. 다른 인물들도 조금씩 등장하는데 초반에는 이를 파악하는 게 힘들었다. 또한,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가 되다 보니 수시로 배경이 바뀐다는 점도 낯설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스토리의 몰입도가 있는 작품이어서 완독이 가능했다. 요즈음 소설에서 유행하는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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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결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리딩 가이드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스토리를 예상했지만 결말을 읽는 순간 다시 물음표가 떠올랐다. 초반에는 잎새와 나의 사이에 집중했고, 중반부에서는 정과 현, 진 사이의 긴장감에 몰입했다. 그러면서 나름 예상 시나리오를 생각하면서 읽었지만 그게 의미가 없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께서 즐겨 보시던 일일 드라마의 엔딩이 자꾸 겹쳐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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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야기를 과연 망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극히 사적인 관점에서 이것은 금지된 사랑이다.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망했을 뿐이다. 아니, 이들은 망하지도 않았다. 사랑 그 자체로 끝난 것이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듯 이 사랑 앞에 붙는 '망하다'라는 말의 의미도 각각 느끼기 나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신 있게 '망하다'라는 동사보다는 '금지되다'라는 동사를 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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