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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네후네 하야세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6년 5월
평점 :




그냥 좋아 라고 하면 돼. 그게 다야. / p.199
귀신이나 유령이 나오는 소재의 매체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온다고 해도 체감상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다. 단지 순간 놀라게 만드는 감정이 싫을 뿐 귀신이 무서워서 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보고 나면 며칠 정도는 꿈에서 괴롭힐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자주 잊혀진다. 나에게 공포를 주는 대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이다. 그게 피부에 닿는 순간부터 꽤 오랫동안 앓게 된다.
이 책은 네후네 하야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최근에 SNS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에게 하나같이 소개하는 작품이 아사이 료 작가의 <생식기>다. 유쾌함과 진지함을 모두 갖춘 수작이어서 재미있게 읽고, 또 많이 영업하는 중이다. 그 소설을 발간한 출판사의 신작이어서 당연히 기대를 가지고 접하게 되었는데 제목에서 호기심을 느꼈다. 입주 조건이라는 단어 자체는 익숙하지만 뒤에 붙은 부제가 독특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카히로다. 다카히로에게는 애증을 넘어선 공포의 존재가 있다. '그 사람'이라고 칭하는 어머니이다. 월급을 받자마자 어머니께 바로 드려야만 하는 그 지긋지긋한 상황 안에서 결국 다카히로는 죽음을 다짐한다. 그 순간 그에게 보인 하나의 전단지가 있다. 십오만 엔만 주면 입주할 수 있다는 멘션 광고였다.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던 다카히로는 이상한 조건을 가진 멘션에 살기로 계약한다.
조금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다카히로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중심이 되는 인물이 갑자기 바뀐다는 점에서 혼란스러웠다. 예를 들면, 다카히로의 가정사를 이야기하고 있다가 다음 챕터에서 이웃이 하는 괴담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스토리의 긴장감을 주기에는 충분했지만 뚝뚝 끊기는 듯한 전개가 낯설었다. 최근 유행하는 방식의 추리 장르 소설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다카히로의 태도가 흥미로웠다. 제목에서 언급이 되는 것처럼 옆집에 사는 이웃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입주 조건이 붙는다. 초반 시작부터 다카히로에게 괴담을 전하는 이도 바로 옆집 이웃이자 유령이었다. 유령에게 듣는 무서운 괴담, 그리고 스물세 명이나 도망친 멘션에서 혼자 고요하고 차분하다. 이웃 유령을 마치 사람 다루듯 대하는 다카히로의 말과 행동은 새로운 인상을 주었다.
스산한 분위기가 가득한 멘션에서 홀로 정적인 스탠스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다카히로에게는 유령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큰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저 너머의 죽음마저도 생각할 정도로 '그 사람'이 악몽처럼 느껴졌던 다카히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령에게 살아갈 힘과 위안을 얻는다. 피보다 물이 진할 때가 있다. 그런데 여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물보다 더 진하게 다가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