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지음, 김래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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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똑같은 이야기지만 천 가지 다른 방식으로 벌어진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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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흘러가는 일들이 어느 순간 특별한 사건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딱히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인지하지 못한 채로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이다. 이게 미래에 예감한 그대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흐를, 아니, 기억조차도 하지 못하는 사소한 일이 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현듯 왜 그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지나가고 보면 별일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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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의 답을 내려 줄 것만 같은 이 책은 대니얼 나예리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평소 청소년 문학을 찾아 읽는 편은 아닌데, 뜻밖에도 어른에게 더 와닿는 지점이 있었다. 사실 모든 소설이 특별한 사건 위주로 진행되는데 이상하게 이 작품은 내가 가끔 들었던 그 생각의 해답이 될 것만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마도 뉴베리상 수상 작가의 추천사를 받았고, 청소년 문학상까지 수상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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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열두 살의 소년 호스로다. 이란에서 다른 나라의 난민 수용소를 전전하다 미국 오클라호마에 정착했다. 호스로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선생님마저도 의심하는 듯하다. 어머니의 개종, 목숨을 건 탈출, 새로운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폭력 등 어린아이가 겪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소년의 시선으로 재치 있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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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초반에 느꼈던 가장 큰 장벽은 열두 살 화자치고는 지나치게 조숙한 문체다. 웃게 만드는 유머가 나름의 매력이었지만, 화자의 나이를 고려할 때 엇박자처럼 보였다. 마치 시골 사투리를 사용하는 할아버지의 말투를 따라하는 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이란의 문화나 배경이 녹아 있는 작품이어서 정보가 없는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럼에도 삶을 고찰할 수 있다는 면에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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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호스로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증명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특별한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닌 전체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점점 전개될수록 호스로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독자 앞에 마치 항변하듯 펼쳐놓는다. 이 지점에서 억울함을 소명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허구와 진실 여부를 떠나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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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특별한 능력이라는 것이 없다. 물론, 조금 월등한 능력도 하늘을 다스렸던 제우스나 여러 불사의 신들이 보기에는 코웃음을 칠 정도로 사소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마다의 삶에서만큼은 자신이 곧 주인공이다. 이 문장을 호스로의 이야기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각자의 신화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작은 신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느꼈던 애매한 특별함이 왜 그렇게 다가왔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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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돈이 들어 - 사랑을 해킹당한 시대의 잔혹동화 미스터리 ㅣ 나비클럽 소설선
박하익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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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난 몇 년의 삶이 몽땅 증발한 것 같은 충격 속에서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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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면 연애하지 마라. 용돈을 받았던 어린 시절부터 주구장창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상대방과 씀씀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던 시기에는 그 말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 영화 보고, 식사하고, 노래방 가고, 산책하고. 가진 돈이 없더라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 생각은 철저하게 부서졌다. 좋아하는 마음으로도 할 수 없다는 게 생겼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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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사랑의 연관관계를 찾다가 선택한 이 책은 박하익 작가님, 서윤빈 작가님, 김아직 작가님, 정명섭 작가님, 전현진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은 크지만 그만큼의 애정이 자본으로 증명되는 사회에서 무엇보다 많은 공감을 줄 것 같았다. 박하익 작가님과 전현진 작가님을 제외한 다른 세 분의 작가님 작품은 이미 접한 적이 있던 터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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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의 주요 카테고리는 로맨스 스캠으로 심심치 않게 뉴스 보도로도 많이 등장하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는 범죄이기도 하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은 사라진 전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날아간 한 남자, 어머니와 연애하는 동창생을 의심하는 아들, 조직원이 한 명씩 실종되는 로맨스 스캠 조직, 로맨스 스캠 일당을 타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할머니 수사단, 기자의 로맨스 스캠 르포르타주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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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판타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내 이웃의 이야기이거나 더 나아가 가족 중 구성원이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기시감을 느꼈다. 현재와 맞닿아 있는 사회적 논제와 피부에 와닿는 생생함을 전달해 주는 작품이어서 흥미로웠다.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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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두 명의 등장인물이 인상적이었다. 동창생 남자 친구를 만나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어머니, 일흔이 넘은 나이에 외국인과 연애 중인 <할머니 수사단>의 주인공이다. 두 사람 모두 남편이 없는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로맨스 스캠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자녀들에게 반발한다. 그러다 믿고 만났던 이가 사기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이 두 사람의 반응이 너무 적나라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돈을 잃은 것보다 더 큰 허무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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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돈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작품이 아니다. 사랑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이들의 답답한 이야기다. 과연 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사람을 향한 마음을 돈으로 어떻게 환산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없어서는 안 되는 돈의 존재에 대한 깊은 허무감이 들었다. 사랑에 돈이 든다는 제목이 이들의 모습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돈에는 사랑이 들었을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험하는 사랑과 돈의 관계는 참으로 아이러니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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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페페페
짐리원 지음 / 아작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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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잠깐이면 가능할지 몰라도 희망은 장기적 동력이 아니야.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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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무더위 에피소드가 있다. 사람이 냉장고에 들어가 포도를 먹고, 집 앞에 나와 돗자리를 펴고 눕는다. 시청했을 당시에는 너무 과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덥다고 느끼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행동하는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994년으로부터 32년이 지나고, 그 드라마가 종영한 지 13년이 지난 지금은 그게 더 이상 가상의 세계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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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더위를 갱신하는 지구를 생각하다가 읽은 이 작품은 짐리원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다른 리뷰에서도 많이 언급했지만, 소설 장르 중에서 유독 약한 분야 중 하나가 SF다. 그래서 보통은 망설이게 되는데 기후와 생태의 이야기를 다룬 장르여서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선택했다. 환경에 관심이 부쩍 높아진 최근 몇 년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시사점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대감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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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에는 총 열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오리, 8만 년 후의 현대 시대로 돌아오게 된 매머드와 코끼리처럼 기후와 생태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기후 우울증이 곧 자살로 이어지는 사회, 기후대격변 시대를 지나가면서 과거로 돌아오는 사람들 또는 무기한 수면에 돌입하는 사람들까지 인간과 지구의 공존을 이야기하거나 인간 자체를 주제로 두는 작품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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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어렵게 느껴졌다. 시작은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인간들이 등장하지만,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세계관을 생각해야만 이해가 되는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상상력이 가장 부족한 독자로서 활자를 읽으면서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리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주어진 메시지를 곱씹다 보니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독창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어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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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기억과 사회>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화자는 기후 우울증이 하나의 위험한 질환이 된 사회에 살고 있다. 기후의 영향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2030 세대의 사람들이 많아진 것인데, 이는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연구하는 정원 교수는 딥클렌징이라는 기술을 백신으로 제공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화자는 이 실험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마냥 허구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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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40도가 넘는 더운 여름을 버티면서 못살게 굴었던 지구에게 다시금 미안한 마음으로 넘겼던 페이지가 다른 해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과 인간들은 단순하게 무조건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지 않는다. 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동물과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우리는 이들이 내미는 손길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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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안녕
도수영 지음 / 빈페이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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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때를 아침이라 부르기로 하자.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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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님의 <초급 한국어>라는 소설에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화자가 수강생들에게 그 인사를 설명하는 과정이 담긴 내용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Are you in peace?'. 수강생들은 듣자마자 웃음을 터트린다. 처음 만나자마자 평화를 묻는다는 게 그들에게는 어이없게 들릴 법도 하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말을 그렇게 들으니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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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모두에게 안녕을 묻는 듯한 이 책은 도수영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님의 작품이어서 호기심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것은 큰 매력이자 또 다른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접하는 작가님들의 신작도 설레지만, 새로 만나는 작가님의 작품들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기대감과 걱정 사이에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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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에는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방역 체계로 단절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 기억을 잃었지만 어느 사건으로 시간의 개념을 찾게 된 한 여자, 바다를 메꾼 땅에 살아가는 한 가족, KT27이라는 메신저와 동거하게 된 한 생물학자, 루틴이 깨져버린 한 청년. 대부분의 작품들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에피소드로부터 시작해 SF나 스릴러 등 다른 장르의 색이 섞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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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이다. 단편이 비교적 사십 페이지 전후로 짧은 편이어서 틈틈이 읽기 좋은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SF 세계관이 다른 장르 소설에 비해 생략된 듯하다.스토리를 이해하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지만 머릿속으로 그리기가 힘들었다. 초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에서 소설 안의 허구의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 끊기는 흐름이 아쉬웠다. 짧게 진행되는 단편집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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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루틴을 지키기는 어려워>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석준이다. 새벽마다 배송받은 닭가슴살이 곧 아침의 양식이 집앞에 없는 사건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과를 수행하는 내내 도착하지 않은 스티로폼 박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도 박스는 보이지 않았고, 택배를 실은 트럭이 이수역에서 전복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실린 소설 중 가장 피부에 와닿는 현실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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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단조롭게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한순간의 어떤 사건으로 평화가 깨지기도 한다. 평화가 깨지고 나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실감한다는 것, 그것이 여기에서 말하는 아이러니다. 그래서 소설 속 세계가 마냥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그 안에 사는 이들이 당신에게 묻는다. ​안녕하신가요. 매일 평화롭게 하루를 보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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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름을 쓰기로 했다 ㅣ 여름, 책
에밀리 헨리 지음, 이미정 옮김 / 윌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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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봐도 알겠는데. 또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겠지.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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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는 늘 우리 자매에게 상대방에게 약점이 될만한 결핍이나 흠을 최대한 숨기라고 하셨다. 상대방과 좋은 관계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척을 지게 된다면 그게 곧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은 가정에서 경험했던 상처이자 트라우마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부모님께 누를 끼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순간부터 치부가 될 법한 이야기를 거의 터놓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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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트라우마를 생각하게 되는 이 작품은 에밀리 헨리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여름에 어울리는 청량한 표지였다. 열대야로 큰 고생을 했던 시기에 시원함이 느껴지는 시각적 자극에 이끌렸다. 한동안 로맨스 장르의 소설과 거리가 두었지만, 이래봬도 인생 소설 중 하나가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작품이고, 오랜 이상형은 소설에 나오는 은섭이라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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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로맨스 작가 재뉴어리다. 늘 행복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왔는데 최근 소설 집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이끌리듯 한 마을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한때 짝사랑했던 인물이자 현재 다른 장르의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대학 동기 거스를 만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스에게 애정의 마음을 품게 되고,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이들은 과연 소설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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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지만, 로맨스 소설은 힐링 소설만큼이나 쉽게 완독이 가능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문화권이 다른 서양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문화가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소설가 설정이어서 마음에 와닿는 문체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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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재뉴어리와 거스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인상적이었다. 재뉴어리는 남들에게 터놓지 못한 가정사를 안고 있고,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무언가 갈등 상황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자책하거나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이를 표출하는 편이었다. 거스 또한 후반부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픔이 있었다. 이게 재뉴어리와의 감정 교류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두 사람이 이를 터놓는 순간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 지점이 참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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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를 범하는 사람에게 이끌린다. 민음사 해외문학팀 박혜진 편집자님께서 하신 이 문장을 나의 방식대로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 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깨트리고 다가간다면 타인과 더 큰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벗겨진 생각의 전환으로 단순하게만 보였던 재뉴어리와 거스의 이야기가 조금 색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한여름의 뜨거운 로맨스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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