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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름을 쓰기로 했다 ㅣ 여름, 책
에밀리 헨리 지음, 이미정 옮김 / 윌북 / 2026년 8월
평점 :


안 봐도 알겠는데. 또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겠지. / p.48
부모님께서는 늘 우리 자매에게 상대방에게 약점이 될만한 결핍이나 흠을 최대한 숨기라고 하셨다. 상대방과 좋은 관계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척을 지게 된다면 그게 곧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은 가정에서 경험했던 상처이자 트라우마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부모님께 누를 끼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순간부터 치부가 될 법한 이야기를 거의 터놓지 않게 되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생각하게 되는 이 작품은 에밀리 헨리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여름에 어울리는 청량한 표지였다. 열대야로 큰 고생을 했던 시기에 시원함이 느껴지는 시각적 자극에 이끌렸다. 한동안 로맨스 장르의 소설과 거리가 두었지만, 이래봬도 인생 소설 중 하나가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작품이고, 오랜 이상형은 소설에 나오는 은섭이라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로맨스 작가 재뉴어리다. 늘 행복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왔는데 최근 소설 집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이끌리듯 한 마을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한때 짝사랑했던 인물이자 현재 다른 장르의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대학 동기 거스를 만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스에게 애정의 마음을 품게 되고,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이들은 과연 소설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지만, 로맨스 소설은 힐링 소설만큼이나 쉽게 완독이 가능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문화권이 다른 서양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문화가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소설가 설정이어서 마음에 와닿는 문체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재뉴어리와 거스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인상적이었다. 재뉴어리는 남들에게 터놓지 못한 가정사를 안고 있고,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무언가 갈등 상황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자책하거나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이를 표출하는 편이었다. 거스 또한 후반부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픔이 있었다. 이게 재뉴어리와의 감정 교류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두 사람이 이를 터놓는 순간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 지점이 참 마음에 남았다.
무례를 범하는 사람에게 이끌린다. 민음사 해외문학팀 박혜진 편집자님께서 하신 이 문장을 나의 방식대로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 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깨트리고 다가간다면 타인과 더 큰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벗겨진 생각의 전환으로 단순하게만 보였던 재뉴어리와 거스의 이야기가 조금 색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한여름의 뜨거운 로맨스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