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돈이 들어 - 사랑을 해킹당한 시대의 잔혹동화 미스터리 ㅣ 나비클럽 소설선
박하익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난 몇 년의 삶이 몽땅 증발한 것 같은 충격 속에서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 p.157

​

가난하다면 연애하지 마라. 용돈을 받았던 어린 시절부터 주구장창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상대방과 씀씀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던 시기에는 그 말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 영화 보고, 식사하고, 노래방 가고, 산책하고. 가진 돈이 없더라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 생각은 철저하게 부서졌다. 좋아하는 마음으로도 할 수 없다는 게 생겼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

돈과 사랑의 연관관계를 찾다가 선택한 이 책은 박하익 작가님, 서윤빈 작가님, 김아직 작가님, 정명섭 작가님, 전현진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은 크지만 그만큼의 애정이 자본으로 증명되는 사회에서 무엇보다 많은 공감을 줄 것 같았다. 박하익 작가님과 전현진 작가님을 제외한 다른 세 분의 작가님 작품은 이미 접한 적이 있던 터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

소설집의 주요 카테고리는 로맨스 스캠으로 심심치 않게 뉴스 보도로도 많이 등장하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는 범죄이기도 하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은 사라진 전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날아간 한 남자, 어머니와 연애하는 동창생을 의심하는 아들, 조직원이 한 명씩 실종되는 로맨스 스캠 조직, 로맨스 스캠 일당을 타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할머니 수사단, 기자의 로맨스 스캠 르포르타주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전반적으로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판타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내 이웃의 이야기이거나 더 나아가 가족 중 구성원이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기시감을 느꼈다. 현재와 맞닿아 있는 사회적 논제와 피부에 와닿는 생생함을 전달해 주는 작품이어서 흥미로웠다.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개인적으로 두 명의 등장인물이 인상적이었다. 동창생 남자 친구를 만나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어머니, 일흔이 넘은 나이에 외국인과 연애 중인 <할머니 수사단>의 주인공이다. 두 사람 모두 남편이 없는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로맨스 스캠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자녀들에게 반발한다. 그러다 믿고 만났던 이가 사기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이 두 사람의 반응이 너무 적나라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돈을 잃은 것보다 더 큰 허무함이 밀려왔다.

​

사랑에 돈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작품이 아니다. 사랑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이들의 답답한 이야기다. 과연 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사람을 향한 마음을 돈으로 어떻게 환산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없어서는 안 되는 돈의 존재에 대한 깊은 허무감이 들었다. 사랑에 돈이 든다는 제목이 이들의 모습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돈에는 사랑이 들었을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험하는 사랑과 돈의 관계는 참으로 아이러니 그 자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