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귤이 없었단다
김인정 지음 / 아작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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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습게도 그것이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p.10

외로움과 쓸쓸함, 혼자 남겨진 고독, 다른 이와 같은 길을 걷고 싶은 마음. 학창시절에는 친구와 공통 분모를 경험하고 싶어 종종 했던 생각과 행동이었다. 성인이 되고 스스로의 기준이 생기면서 이런 마음과는 조금 많이 멀어진 듯하다. 아니, 그렇게 경험할 일이 없다. 친한 선배와 이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는데 외로움과 쓸쓸함, 고독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나의 이야기에 선배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책은 김인정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나에게 이 출판사의 작품들은 늘 도전이었다. 김보영 작가님의 <다섯 번째 감각>, 코니 윌리스의 <부디 크리스마스>, 천선란 작가님의 <어떤 물질의 사랑> 등 SF 장르 소설을 읽고 싶을 때면 저절로 손이 가는데 그만큼 상상력과 싸우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번에 새로운 작가님의 작품 소식을 접했고,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그 도전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페이지를 넘겼다.

이 소설집에는 총 열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짧은 몇 페이지 수준의 작품부터 분량을 차지하는 작품까지 꽤 다양했다.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 있어서 이북과 종이책을 동시에 번갈아 읽었다. 완독까지 대략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극강의 S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역시 도전의 키워드 값을 했던 작품집이었다. 이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비슷한 성향의 독자들에게는 조금 난해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 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집의 표제작이면서 초반에 실린 스토리로 한 가족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미래에 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사라졌다. 그것도 흔적도 없이 말이다. 화자의 기억에는 다정하게 귤을 까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머니와 아이들만 남은 상황에서 화자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밝힌다. 바로 아버지가 도사였다는 것.

읽으면서 아버지가 간 미래는 무엇일지 상상하면서 읽었다. 물론, 도사라고 비교적 명확하게 등장하지만 지극히 현실에 있을 법한 스토리로 상상해 본다면 아버지께서 간 곳은 미래라는 이름의 사후세계이지 않을까. 아버지의 부재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화자와 이를 전해 주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꽤 깊게 다가왔다. 사람이라는 것은 경험했던 일에 몰입하는 법이니 아마도 내 기준에서는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감정을 표현하자면 사랑이 아닐까. 언급했던 작품에서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화자가, 다른 작품에서는 마법사인 친구를 따라가기 위해 취업 경위서를 올리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각자 다른 의미의 사랑을 경험한다는 것. 사랑은 모양이 다르듯 색깔도 다르다. 흔이 아는 핑크빛도 있지만, 무채색도 있다. 조금은 어둡지만 깊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사랑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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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네오픽션 ON시리즈 38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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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내의 머릿속에선 실적과 목숨, 종교적 신념과 윤리관이 충돌하고 있었다. / p.161

코로나 바이러스가 벌써 옛날 일이 되었나 싶다. 그런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습관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이제는 없이 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최근에 변이 바이러스가 재유행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또 다시 모든 일들이 멈추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섬뜩한 느낌이 든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기는 너무나 지옥과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는 없어야 하는 일이다.

이 책은 강지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이라는 작품에서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최근에 읽었던 <기린 위의 가마괴>라는 작품에서는 법과 윤리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살인자의 쇼핑몰> 시리즈는 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작가님의 작품들에 좋은 인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기대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초과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초과에게는 어머니 숙영, 오빠 근대, 언니 초희가 있다. 현재 초과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사망률이 제로이지만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페인플루 바이러스가 유행이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페인플루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좀비로 변하는 부작용이 발생했고, 초과는 미국에서 돌아온 딸을 지키기 위해 병원으로 나선다. 가족들은 과연 좀비로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지금까지 작가님의 작품을 두루 접했던 적이 있어서 크게 걱정이나 부담감도 없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동안 아포칼립스 소재의 스토리를 접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이 약점이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움직임과 대화들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상상이 될 정도로 흥미로웠다. 완독까지 대략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쉽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역동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읽는 내내 들었던 느낌은 B급 코미디 영화 같다는 점이었다. 물어 뜯는 이웃 노인들을 보면서 민망한 모습으로 착각하는 숙영, 말도 안 되는 말로 경찰을 속이는 근대와 친구들, 갑자기 말이 안 되는 설정으로 분위기를 변환시키는 초과의 썸남 등 전반적인 게 다이나믹하지만 그만큼 허무맹랑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이들의 활극을 읽고 있으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분명 허구의 소설인데 현실의 이야기처럼 그려져서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은 분명히 웃기고 재미있지만 섬뜩했다. 좀비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부에 와닿았던 것은 또 새로운 바이러스로 멈춰질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을까. 정말로 웃긴데 웃기지 않다. 아니, 결코 웃을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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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면 좋은 걸 누가 모르냐고요 - 내 뜻대로 안 되는 몸과 마음을 위한 정신과 의사의 실전 운동 가이드
하주원 지음 / 반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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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운동, 꼭 해야 할까? / p.11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아직 젊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며칠 내내 음주를 해도 끄떡없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하루만 마셔도 출근길에 속이 쓰려서 미칠 지경이다. 영양제를 밥처럼 배부르게 삼기고 나서도 힘들다. 한 달 전에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 공원에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자주 쏟아지는 비로 딱 사흘만 하고 지금 멈춤 상태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삼일천하는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비웃으신다.

이 책은 하주원 작가님의 인문학 도서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오 년 전에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청소년기를 불안으로 살아온 터라 조금이나마 진정시키고자 선택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정을 찾았다. 책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사실을 그 책을 접하고 처음 깨닫게 되었는데 작가님의 신작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페이지를 펼쳤다. 마침 최근에 관심 있는 주제 운동에 대한 내용이었다.

작가님께서는 많은 운동을 해오신 분이고, 실제로 현장에서 운동이 필요한 분들을 많이 만나신 듯하다. 제목처럼 운동하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누구나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질환이나 성격 유형에 따라 할 수 있는 방법과 운동을 소개해 주는 책이다. 예를 들어, 불안, 조울증, 중독 증세 등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서부터 내향형과 외향형, 계획형과 판단형 등 MBTI별 추천 운동까지 알차게 수록되었다.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우선, 운동에 대한 책들을 최근에 종종 접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었다. 그냥 운동만 하라는 책이었으면 이미 뻔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직접 행동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정신과 전문의 의사이신 작가님이어서 신뢰도가 팍팍 올랐다. 언급한 것처럼 성격이 많이 변화된 사람으로서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완독까지 두 시간 이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운동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달리기, 발레, 구기 운동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특성에 따라 분류가 되었다. 긴장도가 높아 과한 액션을 보이는 환자에게는 자유로운 운동보다는 어느 정도 규율이 있는 운동을, 중독 증세가 있는 환자에게는 비교적 정적인 발레 같은 운동보다는 도파민을 분출시킬 수 있는 액티비티 위주의 운동이 언급되었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운동을 시작하려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류의 내용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스파르타식의 운동을 하라고 압력을 주는 책도 아니다. 상황과 성격, 환경에 맡게 필요한 운동을 조금씩 시작하자고 현실적으로 조언한다. 그 지점이 오히려 더욱 크게 와닿았다. 물론, 이 책에서는 인대와 관절이 다칠 때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돈이 없든, 시간이 없든, 충분히 운동할 수 있으니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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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를 쓰는 시간 -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40일의 수업
정지우 지음 / 푸른숲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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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의심스러울지라도 글쓰기는 내가 나로서 하는 최후의 행위입니다. / p.8

상상력이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인 사람으로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만 남았던 것 같다. 굳이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의무적으로 독후감을 제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허구의 소설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에세이는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꿈이 생기고 있다.

이 책은 정지우 작가님의 글쓰기 도서다. 예전부터 정지우 작가님의 에세이를 꽤 인상 깊게 읽었다. 가장 크게 와닿았던 에세이는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책이었다. 그때부터 아마 조금씩 언급한 글쓰기의 꿈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로도 <그럼에도 육아>,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등 작가님의 책들을 너무나 좋아하는 독자로서 이번 신작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글쓰기를 이제 막 시작하는 독자들을 위한 실전 작법서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 중에서도 '에세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쓸 것인지 알 수 있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 에세이를 쓰는 방법 등 기본적인 정보가 1 장에, 각 주제와 단어에 맞는 예시 에세이와 실전으로 직접 적을 수 있는 2 장, 직접 작성한 글을 외부의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 3 장에 실렸다.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관련 용어가 조금 어렵게 다가올 것 같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나 쉽게 이해가 되었고, 실전 예시 에세이에서도 표현 방법이 하단에 서술되어 있다. 아예 모르는 독자들도 충분히 만족할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 장에서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처음이지만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좋았다. 완독까지는 솔직히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면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 2 장에 글쓰기 모임 구성원의 에세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방법이나 정보도 좋았지만, 비전문가의 글들이 실렸다는 게 의외의 면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반신반의로 페이지를 넘겼는데 가리고 보면 작가님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좋았다. 그 중에서도 '엄마'를 주제로 에세이를 적으신 분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나의 어머니가 아닌 임신 중인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어서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이 비법을 모두 습득했다고 해도 여전히 어렵게 닿을 글쓰기다. 언제 이루어질지도 장담할 수 없다. 생각에 그쳤을 뿐 이를 실행에 옮기기에는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예비 꿈나무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준 책이었다. 거기에 아낌없이 풀어낸 작가님의 글쓰기 비법을 접하고 나니 머지 않은 미래에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나를 쓰는 시간이 조금은 소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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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리얼리티
고하나 지음 / 열림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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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세계가 리얼이지만 동시에 누가 죽는 일도, 돌아갈 세계가 영영 사라지는 일도 없지. / p.47

지구의 최후를 보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우선, 그런 상황 자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매일 사는 게 힘들지만 아직은 죽고 싶은 생각이 없다. 최후를 본다는 것은 곧 거기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된다는 뜻일 텐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극적으로 다른 행성에서 성공하게 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이면서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고하나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제목과 줄거리를 접하자마자 든 생각은 영화 <트루먼 쇼>다. 방송이라는 점이 그나마 공통점인 듯한데 이상하게 그게 딱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그게 선택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실 그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줄거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과연 주인공이 어떤 류의 최후 리얼리티를 찍는다는 것일까. 흘러갈 스토리가 너무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랑이라는 인물이다. 지구 1 호에서 살아왔고, 어머니께서 방송국 최고 권력자이시다. 소랑의 별장에 있는 수영장에 빠지면 다른 지구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지구의 각 행성들은 크게 차이가 없지만 17 호에는 특이한 현상이 있다. 지구 17 호의 멸망을 카메라에 담고자 소랑은 그곳으로 떠났고, 카이라는 이름의 피디를 만난다. 급격하게 가까워진 둘은 지구 17 호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인다.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방송 시스템을 모르는 독자로서 배경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텔레비전으로 완성된 영상만 보았기에 그 너머의 세상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이를 몰라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건 크게 문제가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상황에서 읽었더라면 재미를 배로 느끼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완독까지는 세 시간 반 정도 소요가 된 듯하다.

개인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인상적이었다. 소랑과 카이는 물론이고, 소랑의 친구인 츠키, 소랑의 부모님의 성함마저도 흥미로웠다. 전혀 성별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 이름이어서 카이는 남성으로 생각했고, 소랑의 부모님도 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누가 아버지이고, 누가 어머니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성별을 단정 짓는 편견에 갇혔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살아가는 세상 또한 하나의 리얼리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소설에 등장한 배경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전에는 인생이 트루먼 쇼와 같다는 감상을 남기게 되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딱 그 느낌이었다. 온통 나를 두고 작전 모의를 하는 듯한 착각.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억하심정으로 독자를 난감하게 만들지는 않겠지만 지구 17 호의 멸망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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