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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리얼리티
고하나 지음 / 열림원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세계가 리얼이지만 동시에 누가 죽는 일도, 돌아갈 세계가 영영 사라지는 일도 없지. / p.47
지구의 최후를 보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우선, 그런 상황 자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매일 사는 게 힘들지만 아직은 죽고 싶은 생각이 없다. 최후를 본다는 것은 곧 거기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된다는 뜻일 텐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극적으로 다른 행성에서 성공하게 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이면서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고하나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제목과 줄거리를 접하자마자 든 생각은 영화 <트루먼 쇼>다. 방송이라는 점이 그나마 공통점인 듯한데 이상하게 그게 딱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그게 선택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실 그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줄거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과연 주인공이 어떤 류의 최후 리얼리티를 찍는다는 것일까. 흘러갈 스토리가 너무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랑이라는 인물이다. 지구 1 호에서 살아왔고, 어머니께서 방송국 최고 권력자이시다. 소랑의 별장에 있는 수영장에 빠지면 다른 지구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지구의 각 행성들은 크게 차이가 없지만 17 호에는 특이한 현상이 있다. 지구 17 호의 멸망을 카메라에 담고자 소랑은 그곳으로 떠났고, 카이라는 이름의 피디를 만난다. 급격하게 가까워진 둘은 지구 17 호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인다.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방송 시스템을 모르는 독자로서 배경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텔레비전으로 완성된 영상만 보았기에 그 너머의 세상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이를 몰라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건 크게 문제가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상황에서 읽었더라면 재미를 배로 느끼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완독까지는 세 시간 반 정도 소요가 된 듯하다.
개인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인상적이었다. 소랑과 카이는 물론이고, 소랑의 친구인 츠키, 소랑의 부모님의 성함마저도 흥미로웠다. 전혀 성별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 이름이어서 카이는 남성으로 생각했고, 소랑의 부모님도 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누가 아버지이고, 누가 어머니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성별을 단정 짓는 편견에 갇혔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살아가는 세상 또한 하나의 리얼리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소설에 등장한 배경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전에는 인생이 트루먼 쇼와 같다는 감상을 남기게 되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딱 그 느낌이었다. 온통 나를 두고 작전 모의를 하는 듯한 착각.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억하심정으로 독자를 난감하게 만들지는 않겠지만 지구 17 호의 멸망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와닿았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