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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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연애의 적이야. / p.53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단편집이다. 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제목이 아리송하게 보여 관심이 갔던 책이다. 울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지 않을 뿐더러 어떤 순간에 울 준비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이 생겼다. 최근 일본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래도 나름 만족을 했기에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다.

총 열두 가지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와 소설에서 느껴지는 불안 또는 쓸쓸함의 감정, 주인공이 자신의 주변 환경 등을 설명하는 방식들이 약간 비슷하면서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소설 속에서 어떤 이는 성소수자로서 같은 동성과의 사랑을, 또 어떤 이는 불륜이라고 칭하는 사랑을, 또 어떤 이는 보통 사람들이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랑을 한다.

개인적으로 <뒤죽박죽 비스킷>과 <열대야>,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세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뒤죽박죽 비스킷>은 주인공 마유미의 사랑 이야기이다. 마유미는 가족들이 먹지 않는 뒤죽박죽 비스킷이라는 과자와 비슷한 신세라고 생각하는 열일곱 소녀이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히로토라는 남자에게 드라이브를 제의해 키우고 있는 강아지와 함께 해변으로 데이트를 나간다.

어떻게 보면 너무 흔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결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결말마저도 특별하게 다를 것은 없었지만 첫사랑과의 추억의 느낌이었다. 날씨부터 감정까지 전부 최악인 데이트였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기억에 남는 것은 데이트를 기대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설렘과 불완전한 나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첫사랑의 기억에서 나쁜 일들은 전부 날아가고 좋은 감정들만 미화가 된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그 말들이 떠올랐다.

<열대야>는 아키미와 치카의 이야기이다. 아키미와 치카는 동성 커플이다. 치카는 아키미와의 관계를 불안하고도 고독하게 느끼고 있으며, 아키미는 그런 치카를 안심시킨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역시나 치카는 간접적으로 아키미에게 불안감을 내비쳤고, 과거 오키나와의 추억부터 둘만 있었던 시간을 하나하나 꺼내 이야기하면서 치카에게 안심을 준다.

성소수자들의 불안한 현실을 느낄 수 있던 작품이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치카의 감정선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특히, 이들이 그렇게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현실적인 부분과 함께 맞물려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치카의 말에 아키미의 사랑한다는 대답이 유독 인상 깊게 다가왔다.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은 며느리 나츠메와 시어머니 시즈코의 이야기이다. 나츠메는 매년 시어머니인 시즈코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시즈코는 아들인 요이치와 함께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내내 꺼낸다. 시즈코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츠메는 싫다는 생각과 함께 과거에 불륜 관계였던 루이라는 인물을 떠올린다.

처음에 남편의 존재를 내 마음대로 읽었던 탓에 혼란스러움이 왔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시 읽고 보니 나츠메가 말하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와 왔던 여행지에서 과거의 애인이었던 루이를 떠올린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읽고 있는 나까지 금지된 생각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나츠메의 질문과 그에 대해 다소 싱겁게 대답하는 시즈코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맴돌고 있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허울뿐인 부부 관계를 이어가면서 다른 이성을 떠올리는 사람, 유부남과 내연 관계에 있는 사람, 이혼 직전의 부부, 전형적인 아내와 엄마 역할에 취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사실 누가 보면 막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관계들을 잔잔하면서도 쓸쓸하게 표현해서 나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겼다.

여기에 실린 단편에 나오는 대다수의 주인공들이 사랑 속에서 불안 또는 고독을 느끼고 있다. 직접적으로 고독하다는 말을 꺼내는 경우도 있고, 고독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을 읽는 내가 느끼기에는 자신이 고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 그 모습 역시도 다른 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담한 문체로 꺼내는 사랑 안에서의 고독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작품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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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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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중 누구도 본래의 우리가 아니다. / p.80

유독 경계하거나 검열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 하나가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인식이다. 혹시나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차별 또는 편견으로 읽힐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이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사람이면서 비주류의 차별과 편견을 정면으로 느끼는 현장에서 근무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열린 사고를 하려는 노력 중 하나로 성인이 되어서 독서를 취미로 삼게 되었다.

상대방이 하는 편견과 차별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기도 하다. 편견과 차별은 주류의 누군가가 비주류에게 가지고 있는 권력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평등하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이를 행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은연 중에 '이 사람이 나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일 거야.' 라는 인식을 미리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꼭 내가 받는 편견과 차별이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이 당하는 일이어도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때가 있다. 누군가는 피해의식이라면서 이 또한 조롱할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 차별과 편견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언론인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인 이저벨 윌커슨의 논픽션 사회학 책이다.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카스트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들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카스트는 인도의 계급이었다. 미국에서의 카스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또한, 내가 늘 경계하고 있는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여서 더욱 눈길이 갔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국의 카스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색 인종의 차별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인종차별의 문제가 카스트 제도 하에서 나온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한다. 백인우월주의와 종교적 신화와 맞물려 카스트라는 제도가 생겨났다. 결국 카스트라는 피라미드에서 지배 계층은 유럽계, 중간 계층의 아시아계와 라틴계, 피지배 계층에는 아프리카계로 서열이 나누어졌다. 이 책에서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 사이에서의 권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총 여섯 파트로 나누어졌으나,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 읽었다. 카스트 제도의 시작부터 문제, 백인들이 행한 비인륜적인 범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설움과 카스트 제도의 현재와 미래까지 카스트 제도라는 틀을 가진 하나의 역사를 보는듯했다. 아무래도 저자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여기에서 말하는 피지배 계층이기 때문에 백인들의 무자비하면서도 무지한 폭력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인상 깊게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히틀러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책을 통해 히틀러가 미국의 카스트 제도를 표방해 유대인들에 대한 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틀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백인들의 폭력을 부러워하면서 하나의 희생양으로서 유대인을 선택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처럼 누구보다 잔인하게 유대인을 학살했다. 이러한 내용은 2 장에서부터 시작해 수시로 등장하는 내용이다. 히틀러의 충격적인 이야기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백인들의 인종 차별 문제들은 피부로 실감할 일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이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또한, 백인들이 카스트라는 이름 하에 저질렀던 폭력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내용 또한 비교하는 내용으로 자주 언급이 되기도 한다. 두 카스트의 차이점은 제도의 분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의 카스트는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피부색으로 구분이 가능하며, 인도의 카스트는 직업과 이름의 성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신화로부터 비롯된 자연의 법칙이라는 점을 들어서 이를 정당화시킨다거나 피지배 계층의 사람들은 열등하다는 낙인, 그들을 인간보다 더 낮은 계급으로서 인간성 자체의 부정, 대대손손 계급의 대물림 등 인도와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카스트 제도는 놀라울 만큼 공통점이 많았다.

백인들의 폭력적인 이야기들과 더불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내용들도 기술이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4 장의 <세상의 죄를 짊어진 희생양>과 5 장의 <스톡홀름 생존법>이라는 파트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전자는 미국 사회 내의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들의 원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돌린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취업 일자리가 별로 없다거나 경제 상황이 나빠지는 등의 이유는 사회 내부의 문제임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집단의 원활한 기능과 견고함을 세우고자 했다는 것이다.

후자는 백인으로부터 사회적 폭력을 받고 있음에도 지배 카스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차별 역시도 너그럽게 용서하거나 이해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다. 불완전한 제도 안에서 체념과 수용이라는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맞아도 자비를 베풀라는 것.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되는 현상을 일컫는 스톨홀름 증후군의 이야기를 들어 카스트 제도 안에서의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 사이의 동조를 다루고 있는데 보면서 화가 났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불합리함을 깨닫고 권리를 쟁취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자리에 선출이 되었던 적도 있다. 분명히 겉으로 보기에는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쟁취한 정책들은 백인의 피지배 계층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과 피지배계층에게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차라리 치료를 못 받아 죽고 말겠다는 말을 보니 단전에서 답답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내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백인우월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전 미국 대통령을 뽑은 이유 역시도 지배 계층들의 권력에서 나온 선택이라는 사실도 씁쓸했다.

지금은 백인이 조금 더 우세하나 2042 년에는 미국의 인구 비율이 역전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피부색이 조금이라도 흑색에 가깝다면 피지배 계층의 낙인을 찍고 있지만 그 시점이 되면 조금 더 완화시켜서 동양과 라틴계의 피부색을 비교해 지배 계층으로 끌어들여 자신들의 제도를 견고하게 유지시킬 것이라는 내용이 뭔가 머리에 박혔다. 어떻게 해도 백인이 미국에 남아 있는 한 카스트 제도는 불멸할 것이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항상 편견과 차별, 갈등에 얽매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묘하게 대한민국의 모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두 가지 부분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하나는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문화 차별, 또 하나는 대한민국 사람들끼리 벌어지는 차별 문제였다. 둘 다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카스트 제도에 비하면 새발의 피로 느껴질 정도로 사소할 수도 있겠지만 바다 건너 동양의 이 나라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갈등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겹쳐서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는 현실에서 우리 역시도 동남아 국가의 사람들에게는 차별과 멸시를 하고 있으나,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하는 태도들과 누군가에게는 지배 계층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피지배 계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했었던, 또한 겪었던 많은 차별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우리 또한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부끄러운 단면이 나에게는 충격적이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희생과 상처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이나 내용 자체는 술술 읽혔지만 보는 내내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문외한이었던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조금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카스트가 없는 세상은 모두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내용이 곧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의 바람처럼 말도 안 되는 이념들로 정해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휴지조각이 되는 일이 쓸데없는 공상으로 느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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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밤 안 된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청미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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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 p.16


이 책은 미치오 슈스케 작가의 추리 소설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 소설들은 나름 취향에 맞았지만 그래도 아예 다른 부류의 소설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때 빠졌던 일본 추리 소설 작가와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하게 되었다.

총 네 가지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다른 사람들과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유미나게 절벽과 그 주변 장소 중심의 이야기이며, 하나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유미나게 절벽은 예로부터 자살과 사고로 유명해 쳐다보지 말라는 미신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야스미 구미오라는 인물은 유미나게 절벽을 지나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상대방 운전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은폐시키고자 야스미 구미오를 죽이기 위해 해를 가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유미나게 절벽에서의 자살이라고 불리는 사건들과 주변에서 살인 사건들이 일어나 경찰들은 야스미 구미오의 교통사고를 포함한 사건들을 조사한다.

보통 범죄자와 경찰의 심리 게임이거나 범인을 찾는 내용 위주의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지금까지 봤던 내용과 전혀 다른 트릭과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생소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각 챕터에 실린 사건의 이야기를 눈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추리 소설을 등한시했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별 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예상과 전혀 다른 책 선택이어서 아마 책을 덮고 나서도 별 내용 아닌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옮긴이의 말을 보는데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 소설로 내가 보고 알던 모든 이야기가 아무것도 아닌 느낌. 생소함은 새로움으로, 당황스러움은 전율로 바뀌었다. 나는 그냥 눈으로 보기만 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심지어 이 소설은 시각적인 트릭을 사용했고, 매 챕터마다 독자에게 큰 힌트를 주기도 했다. 여기에서 나는 추리 소설의 하수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추리 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누구보다 흥미롭게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소설은 한 번 보고 끝날 소설이 아니다. 표지의 마지막까지 덮은 다음 매 챕터의 트릭 부분을 다시 훑었다. 시간이 될 때 옮긴이의 말을 읽은 후 처음부터 읽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저자의 의도한 장치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을까. 알고 봐도 나에게는 소름이 돋을 것 같다. 그만큼 지금까지 읽던 추리 소설과는 또 다른 부류의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맞혔거나 내 예상과 비슷하게 흘러갈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범인도, 예상도 전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지만 다른 의미에서 만족감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옮긴이의 말이자 해설이 신의 한 수였던 그런 소설이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가 내 기억에 깊이 각인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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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사라질 말들의 이야기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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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는 승리한다는 사실을 존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 p.17

평소 신조어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독서 기록 목적의 SNS를 제외하고 다른 계정이 없기에 커뮤니티나 뉴스에서 사용되는 신조어가 아닌 이상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가끔 뜻을 몰라서 검색하면 생각하지도 못한 의미로 놀랄 때가 많다. 인터넷에서 보면 신조어 테스트가 있던데 반타작 정도면 많이 맞은 편이고 심지어 그것보다 더 모르는 일도 부지기수다. 신조어 중 하나로 표현한다면 별다줄인가,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신조어를 사용하거나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가 나오면 독서할 기분이 사라진다. 인터넷으로도 자주 노출된 신조어를 책에서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전자의 경우에는 눈에 바로 보이기 때문에 바로 덮을 수 있지만,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때는 진짜 공감이라는 생각으로 보다가 주변 지인들이 어디에 나오던 이야기라고 하면 내 자신이 수치스러울 때도 있다. 이상하게 그렇다.

이 책은 신조어에 관한 에세이이다. 신조어라는 게 아무래도 사회적인 상황을 같이하고 있기에 이런 부분이 궁금했다. 아마 여기에서는 이러한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요즈음 모르는 신조어도 알고 싶다는 조금 할 때가 있었는데 여러 이유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에세이는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은 자본주의 사회와 관련된 신조어, 두 번째는 변화되는 세대와 관련이 있는 신조어, 세 번째 장은 사람에 관한 신조어, 네 번째 장은 차별에 관한 신조어를 분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있는 신조어들도 있었지만, 모르는 신조어들도 있어서 신기했다. 또한, 신조어에 관련된 이야기나 유래 등을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취준생이라는 신조어가 가장 공감이 갔다. 아무래도 내 현재 신분을 잘 나타내는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취준생으로 노멀과 뉴노멀을 논하는 내용부터 취준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시나리오 3막을 인생의 흐름에 나눈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조선 시대의 평균수명 60 세, 20 세기의 평균 수명 80 세, 21 세기의 평균수명 100 세를 각각 3 막으로 나누어서 비유한다. 다른 시대와 다르게 21 세기는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으며, 큰돈을 벌기가 점점 불가능한 사회이니 만큼 1 막부터 3 막까지 모든 막장에서 당면하는 어려움은 취업이라는 말이 나온다. 21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취준생이거나 잠재적인 취준생이라는 문장이 특별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두 번째 장에서는 비혼과 스불재라는 신조어가 인상 깊었다. 비혼은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면서 단어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미혼모와 미혼부를 비혼모와 비혼부로 바꿔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미혼의 경우에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비혼은 그런 전제가 없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후자가 맞다는 말인데 아직까지 고쳐져 있지 않은 점은 조금 마음에 걸린다. 정상 가족을 남자와 여자, 자녀의 조합으로 생각하는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나 조금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도 수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불재라는 신조어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이다. 처음에 스불재를 들었을 때에는 엔진을 청소해 주는 모 브랜드의 제품 이름인 줄 알았다. 그 생각이 나서 웃겼다. 또한, 저자가 야구팀인 LG 트윈스의 팬이었는데 그들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이야기를 보면서 누구보다 크게 공감을 했다. LG 트윈스는 아니지만 같이 붙어서 다니는 비수도권 지역 모 구단의 오랜 팬으로서 그 심정이 누구보다 이해가 되었다.

세 번째 장에서는 손절이라는 신조어가 기억에 남는다. 마음에 안 들면 인간관계를 끝낸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던 단어였는데 손절매라는 경제 단어에서 처음 유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신기했다. 손절과 존버를 불확실한 선택에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점에 비유한 것도 좋았다. 저자처럼 나 역시도 손절파보다는 존버파에 가깝기는 하지만, 저자와 다르게 손절이라는 단어 자체에 나름 마음이 끌리는 편이기에 재미있게 읽었다.

네 번째 장에서는 전체적으로 마음이 아프면서도 답답했다. 맘충이라는 단어로 여성 혐오를, 노키즈존과 휴거 등의 단어로 아동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각종 혐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내가 생각했던 부분들과 비슷했다. 그 중에서도 틀딱의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 틀딱을 보았을 때에는 노인 혐오에 대한 내용을 다룰 줄 알았다. 그런데 세대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놀랐다. 영국에서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오케이 부머라는 신조어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기록에서 젊은 사람들이 버릇없다는 기록만 남은 이유는 기성세대의 권력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불만은 겉으로 내뱉지 않았거나 무시되었을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저자는 여기에서 공정성을 가지고 이러한 현상을 보자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나름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 에세이에 나온 것처럼 나왔다가 사라지는 사어가 되기도 한다. 아마 지금 쓰이고 있는 신조어들 중에서는 시간이 흘러 조카들이 대학생이 된다면 모르는 단어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때는 나와 조카들 사이에 묘한 세대 차이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미래에서 추억팔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조어는 늘 사회적인 현상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야기를 묻을 수가 없는데 신조어의 의미와 유래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와 신조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는 지금까지 신조어라고 하면 긍정적인 이유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도 있었는데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제이니 만큼 어쩔 수 없이 신조어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은 단어를 보았음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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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즈 어웨이 안전가옥 쇼-트 1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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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때문에 별로 안녕하지 못하다. / p.74

평소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보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다. 이러한 이유는 명확하다. 피가 흐르고, 사람을 해치고, 긴장하게 되는 등 내가 싫어하는 모든 일의 집합체가 거의 좀비 영화에서 등장한다. 흥행했던 영화들 중에서도 좀비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는 영화는 볼 수 있어도 좀비가 나오는 영화는 조금 힘들다. 좀비 영화의 줄거리를 읽을 때마다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 책은 배예람 작가님의 좀비 소설 단편집이다. 심너울 작가님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를 읽은 이후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에 관심이 생겼다. 아직 다른 소설집을 읽지는 못했으나, 개인적으로 관심 가는 작품들이 있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중에 신간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세 가지의 단편 소설집이 실렸다. 첫 번째 소설인 <피구왕 재인>은 주인공인 재인과 친구인 혜나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재인은 피구에 소질이 없는 그런 학생이었는데 혜나의 코치로 조금씩 피구하는 법을 터득한다. 3 반과 재인이 속한 반의 피구 경기 중 학교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고, 재인은 친구인 혜나를 구하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간다.

두 번째 소설인 <좀비즈 어웨이>는 연정이 성하를 만나 같이 길거리를 걷게 되는 이야기이다. 연정은 좀비 정육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 정육점 사장에게 모진 핍박을 받고 있으면서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좀비 머리를 찾으라는 사장의 명령에 따라 평소와 다름없이 수행하던 중 얼굴과 팔만 있는 성하라는 인물을 마주하게 되고, 부탁을 듣고 함께 길거리 여정을 떠난다.

세 번째 소설인 <참살이 404>는 소영이 jbu라는 에너지 드링크 회사에 취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소영은 취업에 실패해 자살을 계획하던 중 참살이 404 라는 에너지 드링크를 판매하는 광고를 발견해 입사하게 되었다. 참살이 404는 무력감과 우울감 등에 특효이자 쓸모없는 인간도 제 구실을 하게 만들어 준다는 음료로, 소영은 이 드링크를 마시자마자 처음 겪은 긍정적인 영향을 느껴본다. 회장의 언변과 당당한 태도를 보면서 열정적으로 일하였고,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보영을 신규 직원으로 스카웃한다.

세 가지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주류와 조금 떨어져 있는 인물들이다. 재인은 피구에 소질이 없는 학생으로 등장하지만 친구인 혜나에 비해 공부나 운동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하다. 연정은 말주변이 없으며, 손이 느린 아르바이트생이다. 소영은 패배자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가는 취업준비생이다.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현실에 맞닿아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특출나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고, 또 누군가는 손이 느리거나 말주변이 없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핍박을 받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취업에 실패해 세상으로부터 낙오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을 것이다. 지금 주변만 둘러봐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소설로 다시금 접하게 되니 씁쓸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이미지와 동떨어진 주인공들의 인간성이 두드러지는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씁쓸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또한 하나같이 인간적인 면모들을 보인다. 좀비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좀비의 부탁을 듣고 이를 행동에 옮긴다거나, 자신이 벌인 결과에 죄책감을 보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봐왔던 좀비 이야기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보통 나에게 좀비 이야기는 차갑고 냉혈한 느낌을 주는 배경에서 사람들을 살육하는 모습들 위주로 상상이 되었는데, 보는 내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개인적으로 분장의 기괴함이나 무서움보다 사람을 해치면서 세상을 파괴하는 스토리 자체에 반감이 있어 좀비 영화를 선호하지 않았던 터라 이 소설처럼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견디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좀비 장르의 소설이라고는 하나 전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인간들이다. 심지어 주인공인 세 사람마저도 인간이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보여서 보면 화가 나기도 했었지만 주인공들은 특정한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능력을 발휘해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능력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각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들이 위험함을 피하는 일들이 하나의 큰 능력처럼 보였다. 세상에는 인간성마저도 없는 극악무도한 인간들이 많으니 어떻게 보면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 또한 하나의 능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인간이 가장 무섭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만큼 따뜻한 존재도 없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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