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즈 어웨이 안전가옥 쇼-트 1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 때문에 별로 안녕하지 못하다. / p.74

평소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보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다. 이러한 이유는 명확하다. 피가 흐르고, 사람을 해치고, 긴장하게 되는 등 내가 싫어하는 모든 일의 집합체가 거의 좀비 영화에서 등장한다. 흥행했던 영화들 중에서도 좀비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는 영화는 볼 수 있어도 좀비가 나오는 영화는 조금 힘들다. 좀비 영화의 줄거리를 읽을 때마다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 책은 배예람 작가님의 좀비 소설 단편집이다. 심너울 작가님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를 읽은 이후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에 관심이 생겼다. 아직 다른 소설집을 읽지는 못했으나, 개인적으로 관심 가는 작품들이 있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중에 신간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세 가지의 단편 소설집이 실렸다. 첫 번째 소설인 <피구왕 재인>은 주인공인 재인과 친구인 혜나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재인은 피구에 소질이 없는 그런 학생이었는데 혜나의 코치로 조금씩 피구하는 법을 터득한다. 3 반과 재인이 속한 반의 피구 경기 중 학교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고, 재인은 친구인 혜나를 구하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간다.

두 번째 소설인 <좀비즈 어웨이>는 연정이 성하를 만나 같이 길거리를 걷게 되는 이야기이다. 연정은 좀비 정육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 정육점 사장에게 모진 핍박을 받고 있으면서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좀비 머리를 찾으라는 사장의 명령에 따라 평소와 다름없이 수행하던 중 얼굴과 팔만 있는 성하라는 인물을 마주하게 되고, 부탁을 듣고 함께 길거리 여정을 떠난다.

세 번째 소설인 <참살이 404>는 소영이 jbu라는 에너지 드링크 회사에 취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소영은 취업에 실패해 자살을 계획하던 중 참살이 404 라는 에너지 드링크를 판매하는 광고를 발견해 입사하게 되었다. 참살이 404는 무력감과 우울감 등에 특효이자 쓸모없는 인간도 제 구실을 하게 만들어 준다는 음료로, 소영은 이 드링크를 마시자마자 처음 겪은 긍정적인 영향을 느껴본다. 회장의 언변과 당당한 태도를 보면서 열정적으로 일하였고,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보영을 신규 직원으로 스카웃한다.

세 가지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주류와 조금 떨어져 있는 인물들이다. 재인은 피구에 소질이 없는 학생으로 등장하지만 친구인 혜나에 비해 공부나 운동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하다. 연정은 말주변이 없으며, 손이 느린 아르바이트생이다. 소영은 패배자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가는 취업준비생이다.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현실에 맞닿아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특출나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고, 또 누군가는 손이 느리거나 말주변이 없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핍박을 받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취업에 실패해 세상으로부터 낙오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을 것이다. 지금 주변만 둘러봐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소설로 다시금 접하게 되니 씁쓸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이미지와 동떨어진 주인공들의 인간성이 두드러지는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씁쓸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또한 하나같이 인간적인 면모들을 보인다. 좀비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좀비의 부탁을 듣고 이를 행동에 옮긴다거나, 자신이 벌인 결과에 죄책감을 보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봐왔던 좀비 이야기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보통 나에게 좀비 이야기는 차갑고 냉혈한 느낌을 주는 배경에서 사람들을 살육하는 모습들 위주로 상상이 되었는데, 보는 내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개인적으로 분장의 기괴함이나 무서움보다 사람을 해치면서 세상을 파괴하는 스토리 자체에 반감이 있어 좀비 영화를 선호하지 않았던 터라 이 소설처럼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견디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좀비 장르의 소설이라고는 하나 전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인간들이다. 심지어 주인공인 세 사람마저도 인간이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보여서 보면 화가 나기도 했었지만 주인공들은 특정한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능력을 발휘해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능력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각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들이 위험함을 피하는 일들이 하나의 큰 능력처럼 보였다. 세상에는 인간성마저도 없는 극악무도한 인간들이 많으니 어떻게 보면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 또한 하나의 능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인간이 가장 무섭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만큼 따뜻한 존재도 없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