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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평점 :

인생은 연애의 적이야. / p.53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단편집이다. 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제목이 아리송하게 보여 관심이 갔던 책이다. 울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지 않을 뿐더러 어떤 순간에 울 준비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이 생겼다. 최근 일본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래도 나름 만족을 했기에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다.
총 열두 가지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와 소설에서 느껴지는 불안 또는 쓸쓸함의 감정, 주인공이 자신의 주변 환경 등을 설명하는 방식들이 약간 비슷하면서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소설 속에서 어떤 이는 성소수자로서 같은 동성과의 사랑을, 또 어떤 이는 불륜이라고 칭하는 사랑을, 또 어떤 이는 보통 사람들이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랑을 한다.
개인적으로 <뒤죽박죽 비스킷>과 <열대야>,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세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뒤죽박죽 비스킷>은 주인공 마유미의 사랑 이야기이다. 마유미는 가족들이 먹지 않는 뒤죽박죽 비스킷이라는 과자와 비슷한 신세라고 생각하는 열일곱 소녀이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히로토라는 남자에게 드라이브를 제의해 키우고 있는 강아지와 함께 해변으로 데이트를 나간다.
어떻게 보면 너무 흔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결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결말마저도 특별하게 다를 것은 없었지만 첫사랑과의 추억의 느낌이었다. 날씨부터 감정까지 전부 최악인 데이트였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기억에 남는 것은 데이트를 기대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설렘과 불완전한 나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첫사랑의 기억에서 나쁜 일들은 전부 날아가고 좋은 감정들만 미화가 된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그 말들이 떠올랐다.
<열대야>는 아키미와 치카의 이야기이다. 아키미와 치카는 동성 커플이다. 치카는 아키미와의 관계를 불안하고도 고독하게 느끼고 있으며, 아키미는 그런 치카를 안심시킨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역시나 치카는 간접적으로 아키미에게 불안감을 내비쳤고, 과거 오키나와의 추억부터 둘만 있었던 시간을 하나하나 꺼내 이야기하면서 치카에게 안심을 준다.
성소수자들의 불안한 현실을 느낄 수 있던 작품이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치카의 감정선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특히, 이들이 그렇게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현실적인 부분과 함께 맞물려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치카의 말에 아키미의 사랑한다는 대답이 유독 인상 깊게 다가왔다.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은 며느리 나츠메와 시어머니 시즈코의 이야기이다. 나츠메는 매년 시어머니인 시즈코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시즈코는 아들인 요이치와 함께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내내 꺼낸다. 시즈코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츠메는 싫다는 생각과 함께 과거에 불륜 관계였던 루이라는 인물을 떠올린다.
처음에 남편의 존재를 내 마음대로 읽었던 탓에 혼란스러움이 왔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시 읽고 보니 나츠메가 말하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와 왔던 여행지에서 과거의 애인이었던 루이를 떠올린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읽고 있는 나까지 금지된 생각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나츠메의 질문과 그에 대해 다소 싱겁게 대답하는 시즈코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맴돌고 있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허울뿐인 부부 관계를 이어가면서 다른 이성을 떠올리는 사람, 유부남과 내연 관계에 있는 사람, 이혼 직전의 부부, 전형적인 아내와 엄마 역할에 취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사실 누가 보면 막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관계들을 잔잔하면서도 쓸쓸하게 표현해서 나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겼다.
여기에 실린 단편에 나오는 대다수의 주인공들이 사랑 속에서 불안 또는 고독을 느끼고 있다. 직접적으로 고독하다는 말을 꺼내는 경우도 있고, 고독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을 읽는 내가 느끼기에는 자신이 고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 그 모습 역시도 다른 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담한 문체로 꺼내는 사랑 안에서의 고독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작품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