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숨겨진 환자들 - 당신이 모르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재구성
미켈 보르크-야콥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와사랑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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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질병과 달리 삶은 늘 죽음으로 끝난다. / p.214

전공 과목에서 심리학 이론을 배울 때마다 프로이트가 끼친 영향에 대해 강조할 때가 많다. 융도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같이 연구하다 틀어져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론을 발표했었고, 에릭슨의 이론 역시도 프로이트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조금 더 펼쳐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지금에서 보면 프로이트 이론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여러 심리학 이론을 배우다 보면 영향력이 꽤 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 책은 38 명의 프로이트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도서들을 많이 봤지만 거기에서도 프로이트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가끔은 철학 이야기에서도 프로이트가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전공에서는 세부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항상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뭔가 프로이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지 않을까.

38 명의 환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충격적이었다. 아무래도 프로이트 이론 자체가 성으로 수렴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련 언급이 많이 등장하고, 여성을 경시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수업을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사례로 보게 되니 새삼스럽게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치료 사례들이 담긴 이야기, 환자들의 일대기가 담긴 내용들이어서 흥미로웠다.

38 명의 환자들은 대부분 잘 사는 유지 집안의 자제들이었고, 미술이나 문학 쪽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신경증적인 증상을 보이고, 모르핀이나 알코올 등의 중독을, 성적인 문제 행동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어렸을 적에 받았던 성적인 충격으로 인해 드러난 증상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약물을 주입하거나 분석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처방과 분석으로 호전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환자들 중에서 프로이트의 딸이자 같은 정신분석학을 연구했던 딸 안나 프로이트와 프로이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의외라고 느껴졌다. 프로이트의 아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안나 프로이트의 문제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성적인 행동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로이트에게 분석을 맡기기도 한다. 사실 나라면 아버지께 나의 문제적인 부분을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부끄러운 일이어서 다른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은 프로이트를 믿고 의지했지만 독자이자 제삼자의 시선인 나에게는 너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프로이트의 분석이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과에서 볼 문제와 원인을 정신분석학에서 찾는 것도, 경미한 정신적인 문제도 과하게 진단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변비의 원인도 과거 어린 시절 성적인 충격을 받아서 그렇다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분석은 정신적인 문제 행동을 보인 이유가 어머니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을 듣고 충격을 먹었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뭔가 어이가 없었다. 또한, 계속 성관계를 하라는 처방도 당황스러웠다. 아마 지금의 처방이었다면 돌팔이 의사라고 SNS에 도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들 중에서도 환자의 가족들이나 환자가 프로이트를 돌팔이 의사로 칭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사실 돌팔이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에게는 터무니없는 진단처럼 느껴졌다.

당시 보수적인 시대상으로 동성애를 하나의 정신병으로 진단해 말도 안 되는 처방을 내리는 내용도 있었다. 오죽하면 프로이트는 동성애라면 진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었다고 한다. 동성애가 정신병에서 나온 게 비교적 최근의 일이어서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동성애자가 된 이유를 과거 성적인 문제에서 찾는다는 발상은 조금 말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프로이트는 38 명의 환자들을 가명까지 쓰면서 숨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극비 보안인 것처럼 재산과 명성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가족들에 대한 정신 병력들이 하나의 흠이 된다는 생각에 이를 보호한 것일까. 아니면 프로이트의 실패를 숨기기 위해 했던 일일까. 후자라고 하기에는 가명을 쓴 서신에서 자신의 오진이나 과오를 인정하지 않거나 다른 이유로 돌리는 등 자신의 분석에 대해 후하게 평가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진료 기록이지만 말이다.

보면서 다시금 프로이트 이론의 비판을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성적인 부분에 집착해 이유를 찾으려고 했고, 어린 시절에 너무 몰입해 원인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정신적인 문제 자체가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쉽게 호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 악화되어, 또는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프로이트 이론의 명암 중 어두운 면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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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이란 말이 좀 그렇죠 바통 5
김홍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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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진화한 형태의 생물은 아메바인지도 모른다. / p.136

'관심 종자'의 줄임말로 알고 있는 관종. 관종을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내가 있는 거리에서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성격이든, 성향이든, 실제로 관종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든, 관종은 나와 가까울 수 없는 단어이자 존재이다. 남들에게 큰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바라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부담을 느끼는 성격이어서 관종의 감정은 평생 못 느끼지 않을까.

그러므로 적어도 나에게는 관종이라는 어감 자체가 부정적으로 들린다. 물론, 대중의 인지도가 중요한 연예인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인플루언서 등 관심이 곧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관종이라는 성향이 꼭 필요한 능력이자 긍정적으로 영향을 발휘되는 예시라고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매체를 통해 관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안 좋은 사건들을 우선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다 보니 나에게는 그렇게 달가운 단어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여덟 명의 작가님들의 관종에 관한 앤솔로지 소설 단편집이다. 참여하는 작가님들에 대한 기대감이 관종에 대한 거부감을 이겨서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책이다. 청소년 문학의 매력을 알게 해 주신 손원평 작가님과 우연히 본 단편집을 통해 알게 된 이서수 작가님,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추천을 너무 많이 받아 기대하고 있는 한정현 작가님까지 낯익은 작가님의 소설이 궁금했다. 관종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소설에 녹이셨을까.

총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처음에는 '이게 관종이랑 무슨 관련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도 있었고, 누가 봐도 관종이라고 느낄 정도로 주제가 뚜렷한 소설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생각을 바꾸고 나니 관종이라는 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현실감 있는 내용의 소설이어서 무리 없이 읽었다. 물론, 임선우 작가님의 소설은 판타지가 들어간 소설이기는 했지만 현실에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서이제 작가님의 <출처 없음, 출처 없음>, 손원평 작가님의 <모자이크>, 이서수 작가님의 <젊은 근희의 행진>이라는 세 작품이 가장 관종이라는 주제를 피부로 와닿게 하는 소설이었다. <출처 없음, 출처 없음>은 한 배우가 게임에서 화석을 찾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야기이다. 배우 신이정은 역변의 아이콘으로 악성 댓글로 고생하다가 17 세에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신이정의 근황을 추측하기도 했는데 로맨틱 아일랜드라는 땅을 일구는 게임과 연관 지어 신이정의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기사로 올라온다.

종종 아역으로 활동했던 배우들이 성장한 모습들을, 연예인들의 사생활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서 연예인이라는 직업 자체에 너무 과한 무게감을 주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대중의 관심이 곧 보수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영역에 대한 제한이 있기는 하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역변이나 카메라 뒤의 모습들도 검열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한 맥락으로 보면 신이정이라는 인물은 타의적 관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는 악성 댓글을 피해 숨어 살고자 했지만 대중들은 유난히 관심이 많았고, 기자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이용했다. 로맨틱 아일랜드와 신이정은 현실에 없다고 해도 그와 비슷한 사례들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지구 어디인가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모자이크>는 히키코모리가 손발만 나오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버로 활동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히키코모리로 몇 년을 지내온 사람이다. 손에는 화상 자국이 있고, 자신을 하찮게 생각했던 그런 사람. 그러다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손발에 보정해 올리는 영상을, 또는 매니큐어 또는 패디큐어를 칠하는 영상을 올렸다. 별 특별하지 않은 영상에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서 주인공은 점점 선을 넘는다. 과한 보정은 물론이고, 없는 이야기들을 지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만든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삶을 가공했을 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젊은 근희의 행진>은 유튜버 동생과 언니의 이야기이다. 오근희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관종은 관종이라는 단어를 참고 견뎌야 하며, 언니가 꼰대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반면, 언니인 오문희는 동생을 아메바라고 칭하며, 노출 심한 옷을 입고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던 중 오근희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 두 편의 소설은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에게 이 두 편의 소설이 가장 관종이라는 주제가 명확하게 느껴졌던 소설이다. 읽으면서 오문희에게 가장 감정 이입이 되었는데, 문희의 캐릭터가 관종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가장 가까웠다. 문희가 근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것처럼 독자인 나는 모자이크의 주인공과 근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없는 자신을 만들면서도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주인공과 관심을 받기 위해 노출을 불사하는 근희의 모습을 뻔뻔함이라고 봐야 할지, 당당함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전자에 더욱 가깝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관종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 역시도 이러한 모습을 떠올렸다.

김홍 작가님의 <포르투갈>과 장희원 작가님의 <남겨진 사람들>, 생각하지 못했던 관심을 다루었던 장진영 작가님의 <첼로와 칠면조>과 임선우 작가님의 <빛이 나지 않아요>를 읽으면서 부정적인 편견에 부딪혔던 세 소설과 다르게 관심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한정현 작가님의 <리틀 시즌>은 나의 시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운맛의 소설처럼 느껴졌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동성애자, 과거 아픈 역사를 가진 사람, 외국인 등 본의 아니게 관심을 받아 관종이 되는 사람도 있는데 무작정 관종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맞는가. 편견을 늘 경계하고 있지만 과연 너는 관심 종자들에게도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꾸짖는 것 같았다. 마음이 따끔따끔 아프기도 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라고 해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을 텐데 이러한 부분까지 생각한다면 나 역시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 한정 관종이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질문들이 많았다. 단순하게 관종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것부터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나의 시선과 생각에 대한 깊은 고찰의 시간이었다. 완벽하게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덮으면서 들었던 하나의 순수한 질문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과연 세상에 사람의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관종이 아닌 인간이 있기는 할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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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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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날마다 밤낮으로 기도했다. 내 삶이 바뀌기를. / p.82

초등학교 때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이 그렇게 인기가 많았다. 친구들은 꼭 한 권씩 가지고 다니면서, 또는 다른 친구들과 바꿔서 읽었다. 대략 스무 권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은 기가 막히게 배웠다. 아마 이 영향으로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신 중의 신은 제우스, 바다의 신의 포세이돈, 지하의 신은 하데스라는 사실은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호흡이 긴 책을 읽을 지구력이 없는 나는 1권을 읽다 중도하차를 했다. 많은 신들의 이름을 구구절절 외우는 것도 딱 질색이었다. 그런데 왜 이십 년 넘게 흐른 지금까지 신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지 미스터리이다. 나에게 신화는 역사 시간에 배웠던 단군신화뿐인데 말이다.

이 책은 팻 바커의 신화에 대한 소설이다. 사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서양에 나오는 신화에 전혀 관심이 없다. 지식의 양으로만 따지면 아마 평균 이하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종이 한 장 두께의 소량 지식만 가지고 있는데 흔히 신화에서 다루는 이야기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관심이 있다. 사실 곡물의 여신인 데메테르, 가장 예쁜 아프로디테 등 여신들의 이야기는 나오지만 신들의 여성 노예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접한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브리세이스이다. 미네스의 아내이자 리르네소스의 왕비였으나 남편과 오빠들을 죽이고, 리르네소스를 함락시킨 아킬레우스의 상이자 노예가 된다. 딸을 달라고 요청하는 한 사제의 재물과 부탁을 거절한 아가멤논의 행동으로 브리세이스는 아가멤논의 노예로 끌려갔다. 불리하게 돌아가는 전쟁에서 파트로클로스이 대신 전쟁에 나가면서 다시 아킬레우스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브리세이스의 시각으로 보는 트로이 전쟁 속 신들의 이야기와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는 여성 노예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여성 노예에 관한 당시의 시각과 당사자인 여성 노예들의 생각이었다. 여성은 여기에서 물건처럼 취급이 되었다.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를 인간이 아닌 전쟁에서 이긴 대가로 받은 상이라고 표현했고,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선택한 이유도 아킬레우스의 자존심을 건들기 위함이었다. 브리세이스가 마음에 들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해도 어이가 없을 텐데 그저 상을 흠집 내기 위한 선택이라는 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당시 시대상이기에 그것 또한 한계였을 것이고, 신화를 어떻게 건들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타협했다.

또한, 여기에서 브리세이스는 남편과 형제들을 죽인 남자와 동침을 한다는 것 자체에 큰 분노를 느끼는 듯했다. 그러한 맥락으로 아킬레우스를 경멸했고, 자신도 증오했던 것처럼 보였다. 다른 신의 노예는 사랑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하는 생각의 꼬리까지 이어졌다. 물론, 같이 살면서 애정이 생겼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을 물건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보는 입장에서는 와닿지는 않았다. 브리세이스도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갈수록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아킬레우스의 발언에 상처를 받는다든지 떠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내용들에서 아킬레우스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었다. 사실 아킬레우스 신화를 주제로 한 소설을 하나 들은 적 있었다. 동성애에 관한 내용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아킬레우스는 알고 있었지만 상대는 몰랐다. 여기에서 파트로클로스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아킬레우스와 직접적으로 사랑의 감정이 묘사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사랑이라고 느낄 법한 내용이어서 혼란스러웠다.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나, 파트로클로스가 있는 이상 진전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식음을 전폐하면서 미쳐가더라도 그제서야 브리세이스와의 관계가 애정으로 진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우정 그 이상의 두 사람의 오묘한 감정도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나에게 신화를 주제로 한 소설들을 읽지 못한 이유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배경적 지식의 한계였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신들의 이름만 알고 있었기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과 달리 술술 읽혔다. 대놓고 인물에 대해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흐름에 따라 읽다 보면 이해가 갈 정도로 친절한 소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신화를 중심으로 한 다른 소설들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부족한 나의 지식적 한계를 느끼지 않아서 더 만족감이 높았다. 덕분에 그동안 몰랐던 신화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고 그동안 비추지 않았던 신화 속 여성 노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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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마땅한 자
마이클 코리타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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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여자와 킬러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죽어 마땅한 자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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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김유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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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문답처럼 이 질문에도 답이 없다. / p.378

이 책은 후안 고메스 후라도의 스릴러 소설이다. 제목을 보고 궁금증이 생긴 책이었다. 개인적인 상상으로는 뭔가 새로운 악덕한 악마가 붉은 여왕으로 스릴러 장르를 만들 것 같은 느낌. 스릴러 소설의 매력도 충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고 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존 구티에레스는 포주에게 걸린 매춘부에게 내내 신경이 쓰여 이를 구하기 위해 하던 행동에 오히려 역으로 걸리게 되었다. 그 결과 정직과 함께 월급을 받지 못하는 처벌을 받았는데, 그에게 멘토르라는 한 사람이 나타나 안토니아 스콧이라는 사람을 설득시켜 달라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안토니아 스콧과 함께 팀이 되어 유럽 은행 총재 아들의 살인 사건과 스페인 부자의 딸 납치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붉은 여왕 프로젝트의 이야기이다. 범인은 유럽 은행 총재와 스페인 부자에게 자녀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지만 그들은 이상하게 숨기는 것이 많다.

많지 않은 스릴러 소설을 읽었지만 갑자기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들은 자주 등장한다. 내 기억에도 벌써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흔한 소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약간은 충동적이면서도 다혈질의 형사인 존 구티에레스와 이성적이고 차분한 안토니아 스콧은 누가 봐도 상상이 가능한 조합니다. 탐정이나 범죄를 파헤치는 인물들을 다루는 소재라면 어디서든 등장할 수 있는 극과 극의 한 세트였다. 중간에 존 구티에레스의 행동으로 일을 그르칠 때도 있었고, 이성적인 안토니아 스콧의 지혜로 이를 헤쳐나가는 모습들도 보여 주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흔한 스릴러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었으나 점점 내가 알던 스릴러 소설들과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물론, 인물들의 행동은 여전했다. 존 구티에레스는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는 행동들을 했고, 이를 제어시키는 역할은 안토니아 스콧이 맡았다. 그러나 범인의 윤곽이 내가 알던 소설들과 달랐다. 아마 인물들이 사정없이 진지했더라면 지루하게 끌고 갔을 텐데 존 구티에레스의 말과 행동들이 조금은 풀어주는 역할을 해서 긴장감과 가벼움이 묘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부분이 나에게는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이유였다고 본다. 특히, 존 구티에레스가 항상 입버릇처럼 부정하는 말이 나의 유머 코드와 딱 맞았다.

범인의 특성도 달랐던 게 나에게는 새롭게 느껴졌다. 보통 내가 아는 납치범들은 금전적인 요구로 가족들을 압박한다. 이는 소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이 듣는 이야기인데 여기에 나오는 범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수시로 전화해 가족들을 괴롭히지도 않는다. 몇 번의 전화로 가족에게 전달 사항을 말하는데 이는 이야기 중반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 제안은 가족들에게는 약간 딜레마가 될 수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라면 묻지도 않고 명확한 선택을 했겠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안토니아 스콧과 범인은 행동의 결과로 선과 악을 보여주고 있지만 원인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류의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도 어떻게 생각을 펼치고 있느냐의 따라 선인과 악마가 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안토니아 스콧이 확실한 선의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상대적으로 범인을 찾고 납치된 부호의 딸을 구하려는 의도 자체로만 놓고 보면 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잔인한 내용도 묘사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마라 수준의 매운 스릴러 소설은 아니었다. 인물들의 심리나 배경들도 마치 제삼자가 독자에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알려 주고 있기에 초반에는 행동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촘촘한 전개들이 시선을 계속 붙잡았다. 왜 이 책이 전 세계에서 읽힐 수밖에 없는지, 영상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는지를 소설을 덮으면서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올 존 구티에레스와 안토니아 스콧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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