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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이란 말이 좀 그렇죠 ㅣ 바통 5
김홍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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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진화한 형태의 생물은 아메바인지도 모른다. / p.136
'관심 종자'의 줄임말로 알고 있는 관종. 관종을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내가 있는 거리에서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성격이든, 성향이든, 실제로 관종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든, 관종은 나와 가까울 수 없는 단어이자 존재이다. 남들에게 큰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바라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부담을 느끼는 성격이어서 관종의 감정은 평생 못 느끼지 않을까.
그러므로 적어도 나에게는 관종이라는 어감 자체가 부정적으로 들린다. 물론, 대중의 인지도가 중요한 연예인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인플루언서 등 관심이 곧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관종이라는 성향이 꼭 필요한 능력이자 긍정적으로 영향을 발휘되는 예시라고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매체를 통해 관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안 좋은 사건들을 우선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다 보니 나에게는 그렇게 달가운 단어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여덟 명의 작가님들의 관종에 관한 앤솔로지 소설 단편집이다. 참여하는 작가님들에 대한 기대감이 관종에 대한 거부감을 이겨서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책이다. 청소년 문학의 매력을 알게 해 주신 손원평 작가님과 우연히 본 단편집을 통해 알게 된 이서수 작가님,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추천을 너무 많이 받아 기대하고 있는 한정현 작가님까지 낯익은 작가님의 소설이 궁금했다. 관종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소설에 녹이셨을까.
총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처음에는 '이게 관종이랑 무슨 관련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도 있었고, 누가 봐도 관종이라고 느낄 정도로 주제가 뚜렷한 소설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생각을 바꾸고 나니 관종이라는 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현실감 있는 내용의 소설이어서 무리 없이 읽었다. 물론, 임선우 작가님의 소설은 판타지가 들어간 소설이기는 했지만 현실에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서이제 작가님의 <출처 없음, 출처 없음>, 손원평 작가님의 <모자이크>, 이서수 작가님의 <젊은 근희의 행진>이라는 세 작품이 가장 관종이라는 주제를 피부로 와닿게 하는 소설이었다. <출처 없음, 출처 없음>은 한 배우가 게임에서 화석을 찾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야기이다. 배우 신이정은 역변의 아이콘으로 악성 댓글로 고생하다가 17 세에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신이정의 근황을 추측하기도 했는데 로맨틱 아일랜드라는 땅을 일구는 게임과 연관 지어 신이정의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기사로 올라온다.
종종 아역으로 활동했던 배우들이 성장한 모습들을, 연예인들의 사생활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서 연예인이라는 직업 자체에 너무 과한 무게감을 주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대중의 관심이 곧 보수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영역에 대한 제한이 있기는 하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역변이나 카메라 뒤의 모습들도 검열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한 맥락으로 보면 신이정이라는 인물은 타의적 관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는 악성 댓글을 피해 숨어 살고자 했지만 대중들은 유난히 관심이 많았고, 기자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이용했다. 로맨틱 아일랜드와 신이정은 현실에 없다고 해도 그와 비슷한 사례들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지구 어디인가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모자이크>는 히키코모리가 손발만 나오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버로 활동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히키코모리로 몇 년을 지내온 사람이다. 손에는 화상 자국이 있고, 자신을 하찮게 생각했던 그런 사람. 그러다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손발에 보정해 올리는 영상을, 또는 매니큐어 또는 패디큐어를 칠하는 영상을 올렸다. 별 특별하지 않은 영상에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서 주인공은 점점 선을 넘는다. 과한 보정은 물론이고, 없는 이야기들을 지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만든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삶을 가공했을 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젊은 근희의 행진>은 유튜버 동생과 언니의 이야기이다. 오근희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관종은 관종이라는 단어를 참고 견뎌야 하며, 언니가 꼰대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반면, 언니인 오문희는 동생을 아메바라고 칭하며, 노출 심한 옷을 입고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던 중 오근희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 두 편의 소설은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에게 이 두 편의 소설이 가장 관종이라는 주제가 명확하게 느껴졌던 소설이다. 읽으면서 오문희에게 가장 감정 이입이 되었는데, 문희의 캐릭터가 관종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가장 가까웠다. 문희가 근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것처럼 독자인 나는 모자이크의 주인공과 근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없는 자신을 만들면서도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주인공과 관심을 받기 위해 노출을 불사하는 근희의 모습을 뻔뻔함이라고 봐야 할지, 당당함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전자에 더욱 가깝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관종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 역시도 이러한 모습을 떠올렸다.
김홍 작가님의 <포르투갈>과 장희원 작가님의 <남겨진 사람들>, 생각하지 못했던 관심을 다루었던 장진영 작가님의 <첼로와 칠면조>과 임선우 작가님의 <빛이 나지 않아요>를 읽으면서 부정적인 편견에 부딪혔던 세 소설과 다르게 관심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한정현 작가님의 <리틀 시즌>은 나의 시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운맛의 소설처럼 느껴졌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동성애자, 과거 아픈 역사를 가진 사람, 외국인 등 본의 아니게 관심을 받아 관종이 되는 사람도 있는데 무작정 관종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맞는가. 편견을 늘 경계하고 있지만 과연 너는 관심 종자들에게도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꾸짖는 것 같았다. 마음이 따끔따끔 아프기도 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라고 해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을 텐데 이러한 부분까지 생각한다면 나 역시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 한정 관종이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질문들이 많았다. 단순하게 관종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것부터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나의 시선과 생각에 대한 깊은 고찰의 시간이었다. 완벽하게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덮으면서 들었던 하나의 순수한 질문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과연 세상에 사람의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관종이 아닌 인간이 있기는 할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