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죽기로 결심하다 - 어느 날 문득 삶이 막막해진 남자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
콘스탄체 뢰플러 외 지음, 유영미 옮김 / 시공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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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우울증, 왠지 조화로운 단어의 결합 같지가 않다. 이 낯선 느낌은? 남자가 자기감정에 연약하게 휘둘려서야 되겠느냐는 얼토당토않은 남성성이라는 덧에 씌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은 줄곧 여성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어 남성의 우울증에 대한 이해는 그야말로 취약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자의 4분의 3이 남성이고, 그 최대의 직접 원인이 우울증이고보면 뭔가 잘못된 사회, 문화, 의료적 인식이 사실을 방해하고 있다는 암시를 받게 된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러한 현실의 오해로 인해 무시되거나 무관심의 영역이 되어버린 ‘남성 우울증’의 심각성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개별 인간(남성)을 위한 질병으로서의 예방과 치유책이기도 하지만 사회문화적 반영으로서의 병리적 결과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단순한 심리치유의 범주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하는데 미숙하며, ‘남성성’이라는 과묵함과 책임감과 같은 독특한 환경에 지배되어 왔다. 따라서 남성 자신의 정신적, 감정적 취약성을 호소한다는 것은 남성의 사회적 역할을 의심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더구나 이들이 외적으로 노출되어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압박은 남성이 우울증을 인정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개별적 인식에 더해 극한의 경쟁을 비롯한 성역할의 붕괴 등, 직업적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의 가중, 가족 갈등의 점증(漸增)은 우울증 유발사회라 할 만큼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처럼 여성 우울증과는 달리 잘 드러나지도 않고, 당사자가 인정하려 들지도 않는 질병이기에 그 존재는 더욱 고독하고 위험하며 극단적인 상황을 겪게 된다.

 

OECD회원국 자살률 1위를 놓치지 않는 한국사회를 생각할 때, 특히 여성의 3배를 넘는 남성 자살자를 볼 때, 가부장적 남성성에 대한 오랜 문화적 압박으로 노출되지 않았던 남성 우울증에 대해 의학, 심리학 분야는 물론 관계당국과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하에서 남성 우울증이 외면당했으며 인정조차 받기 어려운 질병이었음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책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축구팀 유명선수의 자살이 오랜 우울증이었다는 보고로 시작된다. “마음은 공허하고, 냉랭했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은 죽음으로 도피한 우울증의 전형적 사례이다. 남성의 우울증은 본인 자신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의 시선 또한 남성은 스스로 털고 일어나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남성의 우울증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해되고, 설혹 그 존재의 인식에도 이렇다 할 심화된 연구조차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1. 남성 우울증 유발 요인들

 

무엇보다 직업적 문제, 즉 직업 안정성의 부족, 열악한 임금, 삶의 핵심적 영역에서의 통제권 상실이 제 1요인이며, 여기에 인간관계의 해체가 더해지면 거의 결정적으로 피할 수 없는 질병으로 남성의 내면에 깊게 자리한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이 요즈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30년간 가족 부양의 책임자로 에너지를 쏟다가 어느 날 실직하여 무력감에 시달릴 때, 여자(아내)들은 그런 남자에게 등을 돌린다. 경제력을 상실(失職)한 남자는 더 이상 여성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직업과 인간관계가 동시에 파괴되는 것이다. 남성의 삶을 지탱하던 요소가 이렇게 동시에 사라지는 현상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죽기로 결심한 남성이 증가하는 것은 자명해 보이기만 한다.

 

실직은 남성성의 전형을 파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의 지난 세월 많은 에너지를 들였던 가치가 급작스럽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는 자괴감, 공허감을 낳는다. 또한 스마트폰과 같은 변화된 디지털 환경은 언제 어디서나 연락이 닿는 인간이기를 요구하는 노동환경으로 인해 끊임없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정신을 압박한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산후우울증은 여성의 산후우울증에 버금가는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가져오며, 제2의 사춘기로 치부되고 마는 40~50대의 남성들이 겪고 있는 ‘미들 라이프 크라이시스(Middle Life Crisis : 중년의 위기)’는 삶의 역사에 대한 혼란으로 현실감을 박탈하고 관계 맺기를 저어케 한다.

 

결국 삶의 무의미와 무기력이 내습한 정신은 삶의 단절을 재촉한다. 남성의 우울증은 바로 남성성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공허와 좌절의 분노로 인한 폭력을 자신에게 돌리는 자살로 직결되곤 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가족을 붕괴시키고, 사회적 손실을 야기한다. 그만큼 남성의 우울증은 사회적 인식과 현상의 직접적 반영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무관심은 실로 당혹스러움이라고 까지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2. 남성 우울증의 인식

 

남성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힘들다. 이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남성적 역할상을 깊이 내면화한 사람일수록 우울증의 깊이는 더 혹독하게 심화된다.

한편 오늘날과 같은 성과지상주의 사회에서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적인 취약함의 드러냄은 곧 실패자이고 루저(looser)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 그래서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 탈진 증후군)과 같은 품위있는 심리학 언어로 조탁되고, 최상으로 활동적이었다는 이미지를 덧씌워 마치 우울증과는 무관한 일종의 열정적 직업인으로서 일시적으로 겪는 후유증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번아웃증후군은 이제 우울증의 한 유형으로 인정되고 있다. 남성 우울증은 이만큼 좀체 인정되지 않거나 은폐되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정상적 기분저하와 우울증의 모호한 경계로 인해 남성의 우울증은 쉽게 숨겨지고 잠복한다.

 

2020년이 되면 우울장해는 조기사망과 질병 1호가 될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향해 치닫는 노동세계는 인간적 유대와 결속을 급속하게 파괴하고, 현실과 환상을 흐릿하게 하며, 만성적 불안과 무기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직업 환경을 비롯한 사회문화적 현실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남성성의 부담이 여전히 부여된 상태에서 남성의 우울증은 당사자 1인의 인식과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며, 이의 치료와 대책은 공동체 모두의 중대한 인식이 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우울증의 치료와 대책

 

많은 남성들이 운동에 열중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운동은 적절한 천연 치료제로 권장된다. 그러나 오히려 해가되는 운동이 있다. 외적 이미지, 즉 물신적 광기로 인해 전(全)미디어 매체가 남성의 조각처럼 단련된 몸을 드러내고, 저열한 여성 연예인 따위들은 광적인 환성을 내지른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몸만들기에 열중인 남성이 증가하고 있다. 사실 자신의 외부, 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어떠한 관계성도 배제된 채 자기 혼자만 하고, 과시를 통한 자신감 회복이라는 명분이 이를 부추긴다. 이것은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라는 환상만 강화할 뿐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서의 우울증의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정신과전문의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울증은 관계성 회복에 중심이 있다. 외부에 열려야 하는 것이다. 가족들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열린 질문을 하며, 서로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믿음을 공유해야 한다. 남성이 깜깜한 거실에 홀로 앉아 있다면 인정하건 아니건 그는 우울증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종종 대화에서 자살의지가 피력된다면 그것은 도와달라는 외침이다. 주변이 시들해지고 완고함과 냉정함이 심성을 지배하고 있다면, 심장 조임 증세나 복부 불편감이 있다면, 식욕과 성욕이 흐릿해지면, 우울증의 신호일 수 있다.

 

항우울제, 운동 등 의료적 행동적 처방과 대책이 그 원인과 대응하여 소개되고, 우울증의 신경의학적 현상들까지 더해져 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기위한 노력들이 촘촘히 적시되고 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삶의 무의미를 외치고 있다면, 내면의 음성을 가만히 들어보자. 홀로 고독하게 세상과 안간힘을 써대며 분투하는 이 땅의 남성들이여, 남성성이라는 굴레를 훌훌 벗어던지고 우울증을 넘어서자, 우울증은 치매와도 닮았고, 탈진 증후군이기도 하며, 정상적인 기분저하와도 구별이 안 된다. 삶의 의미로 가득한 세계임을 되찾기 위해.

책은 친절하게 남성들의 우울증을 자가 체크할 수 있는 간이 진단표를 제시하여주고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이제 자각하여야 할 만큼 위험이 증대되어 있음이다. 얘기되지 않는 남성우울증에 대한 관심이자 처방전이기도 한 이 책은 실의와 좌절, 의기소침과 허무, 그리고 무기력으로부터 현실을 눈뜨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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