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떠난 자리
김만권 지음 / 그린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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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에 정치가 눌러 앉았던 적도 없으니 떠났다는 표현은 한국사회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 것 아닐까? 어쨌든 비어버린 그 공허함, 부재의 아쉬움만은 충분히 전달된다. 모 작가의 소설이 너무 정치를 지향한다고 비난하던 뉴라이트의 정말 지나치게 무식한 행동대원의 말처럼 정치는 시민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해괴한 인식이 뿌리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투표행사를 위한 선거이외에는 정치에 참여하거나 관여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회의 정치에 대한 인식이 이 모양이다 보니 시민사회에 정치가 존재할리 만무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정치와는 무관했던 시민들이 선거 날 투표하는 내용이 무지(無知)에 근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 아니겠는가?

 

저자는 이러한 투표, 소위 대의민주제하에서의 비민주적이고 시민의식이 부재하는 정치의 비극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한국인의 투표는 결코 정치적이었던 적이 없으며, 오직 지연과 혈연, 지역적이며 경제적 소망이었을 뿐이다. 물론 양식(政治的 良識)있는 사람들의 투표가 존재하긴 하지만 무지의 인민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니 이렇게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비단 이번 대선의 결과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선거를 보며 내 주변의 이들은 입을 모으곤 했다.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야 돼’라고. 또한‘저 지역 좀 봐, 뻑 하면 노동쟁의를 벌이고 공권력에 무참히 당하면서도 그 주체에 다시 투표하잖아’ 결국 민주적 형식행위로서 전락하고 굳이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면서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 같다. 깨어나려 하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한정적이고 자기들끼리만 매번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 아무런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민주주의, 자유주의, 진보, 유토피아의 상실을 설명하는 저자의 열변은 아마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 안타깝고 아쉽다. 민주주의는 더욱 후퇴하고, 진보는 자기의 정체성은 물론 스스로 민주적 근간을 훼손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가 평등한 사회에 대한 염원이 자취를 감춘 사회에 어찌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저자가 지적하듯이 한진중공업 해고근로자를 응원하던 희망버스에 탑승했던 시민들처럼 ‘자유’란 이미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체화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이 있으며, 또한 동행하지는 못했지만 그 참뜻을 깊이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회의를 멈출 수가 없다. 이들에 대한 자유의 침해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다수의 시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계급에 반하는 투표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 점에 대한 저자의 믿음은 몇 가지로 요약되는 듯하다.

 

정치는 기성의 소수 제도정치세력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이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민주정이기에 지금까지 외면했던 시민의 깨어남을 위해 식견있는 기성의 정치인들은 시민참여 정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시민들 또한 정치극장을 팔짱끼고 관람만 하는 수동적이고 무지한 자세를 탈피하고 “자유를 확장하는 시민 게릴라”로서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자의 방법론으로 진정 퇴행하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의 가치를 되살리려 한다면 진보세력은 분파적 신념에 매몰되지 말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연대’, 즉 시민의 정치 참여는 물론 자유주의를 비롯한 혁신세력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후자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용기를 말한다.

 

이러한 제안을 위해 한국사회의 정치 현실이 삶의 목적을 생존으로 바꾸어 놓은 국가 중심의 개발독재에 뿌리를 둔 천민자본주의에 연장에서 해독하며 우리의 민주주의가 공존의 모델이 아니라 생존의 모델로 전락하면서 시민들이 정치적 자유의 토대라는 기본을 잃어버렸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와는 상반되는 집단에 투표하는 계급배반투표를 하는 시민들의 행동은 당연한 귀결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모두 옳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를 존중하는 시민의 결핍”이 현실인 사회, 경제적 이해득실에 자신들의 정치적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정치적 자유인이 되도록 깨어나게 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적 무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 현실을 바꾸기 위한 삶의 열정인 유토피아의 상실을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경제적 번영과 생존에만 매달린 시민들에게 동등한 자유를 누릴 권리가 곧 동등한 존재로서의 인정이며 소통의 시작임을 어떻게 깨우치게 한다는 말인가? 한국사회가 진정한 자유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의 정체가 안정되는 사회이기를 기대하는 사람들만의 대화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얻어내지 못하게 된다. 이번 18대 대선의 선거처럼 말이다. 쳇바퀴처럼 돌기만하는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의 지혜가 깨어있는 시민들보다 결코 깨어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문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다만 능동적인 시민정치 참여에 대한 프로그램들은 기성 정치의 혐오로 정치에서 철수한 정치적 자유를 존중하던 도망한 시민들이 되돌아와야 할 중대한 시사와 용기를 제공한다. 주변의 누군가가 나보다 못한 자유를 누린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롭지 않다는 이해만큼 중요한 인식은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분명 수구정권의 5년을 통과하면서 너무도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퇴행을 목격해 왔음에도, 다시금 5년을 연장시켰다. 이 절망의 나락에서 시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는 방법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심각한 인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이 인식을 자기 계급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많은 시민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한 지속적인 방법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그들이 읽어 주었으면, 그리고 변화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책을 읽지 않는 시민들이며, 경제가 정치보다 우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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