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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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에는 왠지 모르게 순수하고 투명한, 그리고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 세심한 관찰력을 가진 작은 어린 여자아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네들의 삶과 세상이 그녀에게 모두 들켜버린 것 만 같은 그런 수치심 때문일까?

작품 어디에도 빈 수레들의 큰소리가 없다. 소란스럽지 않은 나지막한 소리에 거절과 두려움, 상처와 슬픔, 불안과 균형, 삶의 깨달음이 실려 있어 더 없이 그 이야기들의 진지함에 동화된다. 이렇듯 8편의 소설 모두에서 삶의 그 우연함과 몰염치함의 부조리에도 항상 평온이 깃들어 있고, 측은함과 연민이 애틋하게 배어있음을 본다.


“크게 되는 것만은 나의 의지였으니까.”라는 엄마의 중얼거림에서 삶의 자유로운 평화를 보는 것처럼, 출생과 성장의 비애로만 비추어지는 불쾌한 세상의 이야기들로 뻣뻣해져오던 몸이 이미터 사십 센티가 되어버린 엄마처럼 시원한 기분을 맞이하게 된다. 나와 엄마에 퍼진 그 훈기의 편안함이 그 모녀만이 아닌 나에게까지 전해져 오듯이. <나를 위해 웃다>

세상을 제 정신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힘겨운 사람들, 사랑과 상실의 외로움으로 정신의 결을 반대 방향으로 바꾸는 사람들, 거절당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뒤 서서히 소모되어온 사람들, 꿈꾸지 않기에 적당히 살아 갈 수 있는 사람들, 삶 어딘가 늘 텅 비어버린 듯한 체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먼 길을 돌아와 비로소 가야할 길을 깨닫는 이들의 모습에 보내주는 그 따뜻한 기대와 긍정의 기운이 우리네 마음에도 어느덧 깃들게 한다.


“남자들이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새벽. 죽고 싶을 때마다 대신 바라보려고 손목 아래 그려놓은 빨간 점선”을 내려다보는 세상 밖에선 그녀들의 두려움을 정말“선명한 정신으로 바라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손을 내밀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고 덥석 물어버리는 쪽에 언제나 마음이 더 끌”리는, 사람에 대한 그 이해와 관심이 너무 소중하고 탐나기까지 한다. <아프리카>


한편으로 론 “열두 평짜리 임대아파트와 미뉴에트 선율”의 어색한 조화, “보석을 손에 쥐어보면 그 속에 뜨거운 불길이 갇혀 있다”와 같은 일상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성찰이 어디에까지 이르는지 보는 것 또한 분명 기분 좋은 독서에 일조한다.

위태로워 보이던 가족의 그 평범함에서, “품위”를 되뇌는 아버지의 자전거. 그리고 매연이 이는 거리와, “그 뒤에 앉은 엄마를 떠올릴 때면, (중략) 그게 아주 균형 잡힌 춤처럼 느껴지는”주인공의 시선에서 소중한 그 무엇들이 행복한 슬픔으로 남겨진다.<댄스댄스>


그리고 “매번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따라 불렀던 그 노래들. 늘 어딘가 텅 비어있는 듯하던 삶, 절름발이처럼 느껴지던 그 삶, 구겨져서 보이지 않던 그 삶의 노래는 <천막에서> 의 ‘나’처럼 내가 가야 할 곳을 깨닫는다. <휴일의 음악>


젊은 작가의 시선이 그리 녹록치 않다. 세상을 깊고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 엄숙하다고까지 할 성찰에서 깨끗하고 고귀한 품격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번잡함도 없다. 정면을 마주하고 오늘을 귀 기울여 듣고, 지금의 모습을 헤쳐 가는 그런 성숙함이 있다. 감히 만족스럽다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모나지 않은 조용한 숨결 속에 예리함을 넘어서는 탁월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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