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 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를 말하면 의례히 초패왕‘항우’의 쓸쓸한 죽음을 연상케 된다. 한(漢)나라 고조가 된‘유방’에게 패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실패한 인물이 승자보다 더 인구에 회자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를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왜 항우를 말하는가? 왜 패자(敗者)를 노래하는가? 더더욱 승자에 집착하며 패자를 조롱하기에 여념 없는 비정의 세상인 지금에서. 그런데 과연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인가? 무언가를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이기는 것인가? 부, 권력, 부릴 수 있는 인간들, 명예 같은 것들? 아니면 도덕성, 배려심, 연민, 고통에의 공감 같은 사랑은?

 

책은 강력한 군사적 천재성을 지닌, 그리고 초의 대대손손 명망 귀족의 배경으로 가볍게 정치 무대의 상석에 서는 유리한 출발선까지 가졌던 항우가 왜 천하통일의 패업(霸業)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는가를 인물, 전략, 사회적 배경, 정치적 인식 등을 토대로 분석해 내고 있다. 이 해석에서 저자는 때론 일반적 통설을 뒤엎는 주장도 하며 항우의 인간적 매력을 높이기도 하지만, 실패 요인의 분석에 있어서는 냉철한 통찰로 수장(首長)의 자질, 시쳇말로 리더의 경영학적 모델이랄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쟁자인 유방이나 배신하여 유방을 도운 한신에 대한 평가는 항우의 그것과 비교하여 참말의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게도 한다.

 

항우의 정치적 인식

 

항우의 패배이유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정치적 인식의 미성숙이다. 군사적 역량의 천재성은 항우의 성장기에서 시작하여 그가 참여하는 전투에서의 압도적 승리로 인해 반박할 여지없이 승인되는 사항이고, 사가(史家)들 역시 입을 모아 그의 군사능력의 탁월함에는 어떠한 이의도 붙이지 않는다. 항우 자신의 주장이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와 같이 잘 알려진 비유처럼 그가 참여하는 전투에서 지지 않았다. 싸움에서 지지 않는 장수가 졌다는 얘기는 모순처럼 들리지만, 여기에 바로 정치라고 하는 권모술수가 개입한다.

 

한마디로 그는 술수를 부리지 못하는 영웅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유방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모든 분야에서 이류에 불과하던 유방이 뛰어난 것이 이 점이었기에 항우의 정치적 유치성은 더욱 부각된다. 진나라를 멸하고 관중에 진입하면서 이를 제지하던 유방에 대한 항우의 분노를 교묘한 변설과 임기웅변으로 위기를 피하는 유명한‘홍문연’사건은 대표적인 항우의 정치적 패착과 유아(幼兒)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군사적 규모나 영향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하던 유방이 항우의 명예심을 자극하고, 당면한 갈등을 모호하게 하기 위하여 진나라의 멸(滅)을 위하여 공동으로 일어선 역사적 단계로 항우의 경각심을 돌린 교활성에 놀아날 정도로 정치적으로 무식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이 된다.

 

물론 여기에는 항우의 인척으로 유방과 그의 모사인 장량의 술책에 놀아난 항백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이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을 무위로 바꾸어 버린 점이라든가, 유독 애정과 친정(親情)에 취약했던 항우의 편협성에 근인을 두고 있다. 초한(楚漢)전쟁이라 불리는 항우와 유방의 4년간의 싸움에서 국부적 전장에서는 줄 곧 유방에 승리하면서도 전체 국면에 대한 전략적 관심 부족으로 유방의 세력에 포위되어 고립되는 형국에 이르는 것은 그의 정치적 인식 능력의 취약성을 거듭 확인하게 한다.

 

또한 유방과 달리 항우에게는‘범증’이라는 별로 뛰어나지도 못한 모사가 유일한 것처럼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이 있다. 즉 간언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인식능력에 이미 제약, 한계가 있었다는 측면을 말한다. 그러하다 보니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실찰(失察)로 좋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실인(失人)은 그의 실패를 예견케 하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궁지에 빠뜨리는 적과의 내통으로 자기이익만 챙기는 삼촌 항백은 보지 못하고 장량의 이간책에 말려 하나뿐인 모사인 범증까지 쫓아버리는 항우의 전략적 인식능력은 사실 유치함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아마 한국의 대다수 기업의 오너들에서 항우의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족벌경영은 거의 예외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고, 경영적 판단이라는 소위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오너의 독단적 판단에 좌우되는 낙후된 관습이 여전하다는데 동의 할 수 있을 것이다. 간언을 참지 못하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장을 봉쇄하는 한국사회를 예측하는데 이보다 좋은 교훈이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럼에도 왜 항우인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국 사회는 이긴 자가 선하고 진 자는 악하다는 해괴한 신념이 있다. 그래서 무지하고 분별없는 자들은 실패자, 혹은 낙오자라고 조롱하고 멸시하며 배제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우월성인 듯이 행동하는 것에 수치를 알지 못하는 천박한 뻔뻔함을 보인다.

항우는 소위 말하는 루저다! 그러나 사가들을 비롯한 후대인들은 항우를 이러한 해괴한 신념의 선상에서 판단하지 않는다. 다음의 전해오는 영사시(詠史詩)처럼 여전히 영웅으로 회자되고 그의 실패를 안타까워한다.

 

살아서는 사람 중의 인걸이요,

죽어서는 귀신중의 영웅이구나.

사람들이 아직까지 항우를 생각하는 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몰래 강동을 건너지 않았음이리라.

 

이것은 비록 역사적 터닝 포인트를 인식하는 능력이 부족하긴 하였으나, 그의 인간됨됨이는 인걸이자 영웅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는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엇이 그러했다는 것일까? 이러한 일면은 그의 행적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업(帝業)이라는 중앙에 권력이 집중된 통치권자이기보다는 패업을 선택한 그의 행로라든가, 홍구를 경계로 유방과 휴전을 취할 때에도 유방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자신의 패업을 위해 백성들을 고생시키는 것이라는 이기심에 대한 참회의식이 그것이다. 물론 유방은 이것마저도 자기 이익의 편취를 위해 사용할 정도로 교활하였지만 말이다.

 

또한 오강에서 강을 건너 도피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패착을 인정하고 자결을 택했으며, 더구나 배신한 부하에게 자신의 목을 내 놓는 장면은 더 이상의 무고한 백성의 희생을 연장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시대의 환경이 이익을 보면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아무런 수치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였다는 것 또한 항우의 불운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오늘처럼.

그저 자신들의 이익만 쫓는 사회, 타인은 단지 딛고 일어서야 할 물체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항우를 배신한 한신, 경포,...등이 이러한 인간들의 표상일 것이다. 그들의 말로는 어떠했을까?

 

유방의 모사 중 괴통이 전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짐승을 다잡으면 사냥개는 삶겨 죽습니다... 공훈이 탁월한 사람은 종종 상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유방은 결코 사람을 아끼는 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신의라는 것을 품고 있지 않는 인물이었다. 다만 활용할 가치가 있는 재능을 확실히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 뿐이니, 천하 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고 황제를 칭하게 되었을 때 한신 등을 주살해버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로지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이라는 말을 진리처럼 신봉하는 사회가 과연 인간의 주류사회여야 한다는 것이 옳은 것일까? 지금도 한국의 조직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비뚤어진 신념에 의해 희생당하는 인재들이 무수하게 양산되고 있을 것이다. 진정 인재들은 소외되고 얼치기들이 세상을 차지하는 양태에서 무슨 바른 판단과 정신이 서겠는가?

 

결어

 

잔혹한 폭정으로 백성을 학대한 진을 멸한다는 공동의 이익과 목표가 사라질 때, 바로 그것이 정치적 환경의 전환점임을 알지 못했으며, 유방의 경쟁자로서의 성장을 인식하지 못했던 어리석음, 또한 타인을 이용할 줄 모르고 믿지 못했던 약점이 분명 있는 인물이지만 이것들은 일컬어 전략이라는 술수를 부리지 않았으며, 남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다는 측면으로 해석하게 되면 더없이 진실한 인물이 된다.

 

더구나 그의 실패를 야기한 배경에는 백성을 먼저 생각한, 전장에서 자신이 행사한 무참한 폭력에 대한 참회가 있다. 또한 칭 황제 이후에야 관용을 버리고 잔혹해진 유방과 달리 전쟁 중 관용에 인색했던 항우의 우직함 역시 교활함과는 한 참이나 다른 곧은 성품을 짐작케 한다. 우린 패자를 노래해야 한다. 비극의 영웅을 말해야 한다. 잃어버린,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격려하고 그들의 분노를 위로해야 한다. 진짜배기 사람들은 패자들인 바로 우리들이니까 말이다.

 

항우의 우미인(虞姬)과의 사랑 얘기인 패왕별희의 일담(逸談)도, 고구려의 살수대첩을 연상시키는 용수와 한신의 유수(㶙水)전투도, 장량, 진평, 소하, 역이기 등 모사들의 기지도, 두목, 왕안석, 이청조 등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영사시(詠史詩)까지 더해 초한(楚漢)의 쟁패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맛깔나게 재해석하고 있는 이 책은 오늘 왜 우리들이 패자에 연민의 눈길을 보내야 하는지의 이유를 즐겁고 명쾌하게 깨우치게 한다. 오강에서 딱 한 번 웃으며 생을 마감한 항우의 그 호탕한 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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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8-1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묘한 사내입니다. 패자이면서도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인물은 인물인가 봅니다. 항우를 인간적인 면에서 재조명했다니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필리아 2012-08-14 16:49   좋아요 0 | URL
제가 지나치게 인간적 측면을 강조했나 보네요. 책은 정치,전략,환경적 측면을 모두 아우르고 있답니다.

saint236 2012-08-1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리아님의 책소개 때문에 구입했습니다.^^

필리아 2012-08-18 18:07   좋아요 0 | URL
혹여 기대하셨던 내용에 미치지 못하면..., 제 편협한 감상이 폐를 끼친것이 아니기만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