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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공교롭게도‘단독성(Singularity)'에 대한 서로 다른 의미접근을 한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 하나는 자유의 진지한 가치를 말함으로써 삶의 온전함을 말하는 이 책이고, 다른 하나는 『싱글라리티』라는 표제로 들뢰즈가 말한 단독성의 의미가 완전히 야만적으로 사용된, 즉 자유를 억압하는 소비주의의 극한적 방법론을 말하기 위해 이 담론을 끌어댄 책이다. 인문학적 담론이 우리의 삶에서 왜 필요한가를 자문(自問)할 때 그것은 “사회의 문제에 실천적 전망을 제공”하는 것이고, “사회가 가진 치명적 결함을 발견하는 데” 유용한 지적바탕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이렇게 사용되지 않고 사회의 문제나 결함을 은폐하거나 그것들에 영합하여 인간의 보편적 삶의 가치를 훼손하며 자유를 구속하는 것으로 이용된다면 나는 그것을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말 할 것이고, 그러한 자들에게 침을 뱉을 것이다.

 

반면에 저자 강신주가 시인 김수영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분리하고 이제 자기만의 진지한 삶을 가꾸기 위한 첫 걸음을 위한 이별식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이 개별자의 단독성을 말하는 것은 그래서 자유의 가치를 더욱 새롭고 진지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담론의 사용이 지성적으로 사용되는 그 실천적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고, 진정한 지식인의 세계와 마주하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야만을 봄으로써 지성의 빛이 훨씬 명료해졌다는 얘기이다. 나로서는 이 우연한 두 책의 읽기가 다행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 더욱 온전한 단독자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시작할 저자의 자유를 향한 실천에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

 

1. 검열에 찌든 정신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은 자유의 지대에 살고 있다고 말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자유가 방해받거나 억압되어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어떤 한계에 부딪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경계 지어진 영역에 길들어져 순응하는 데 안주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벌어지는 마녀 사냥하듯 개인의 신념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는 거대 보수언론 권력과 수구 정치권력의 행태에서는 어떠한 자유도 발견 할 수 없게 된다. 얼마 전까지 권력에 저항하면 빨갱이로 몰아세우던 것이 종북이란 표현으로 화장하고 이 땅에는 단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 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다양한 신념이나 이념이 들어 설 수 없는 곳이 과연 자유의 지대일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이들 권력들은 더 이상 존중하지 않고 있다. 오직 자신들의 이념만이 옳다고 강변한다. 이들과 다른 신념을 말하면 사회에서 곧바로 매장되게 된다. 입을 달싹거리지 못하고 비겁하게 움츠러든다.

 

권력이‘허용한 자유’만이 자유라는 논리이다. 권력이 허용하지 않은 자유를 발설하거나 행동하면 바로 서슬시퍼런 억압이 시작된다. 그러니 이런 체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검열한다. 그리곤 스스로 자유에 어떤 경계를 친다. 체제가 그어놓은 줄 안의 자유 속에 안주하면서 자유의 지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책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김일성 만세...”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시(詩)에 갑자기 서늘하게 굳어버린 청중들의 표정처럼 획일화된 이념의 장막에 갇혀있는 자신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들 초상이다.

시인 김수영은 이처럼 허용된 자유를 자연농원의 동물처럼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깨워낸다.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검열하는 불완전한 자유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2. 단독성(Singularity)에 대해서

 

“인간은 자유를 가로막는 저항에 맞서 자신의 자유를 관철하는 존재이다.” 온전히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사람이란 얘기이다. 이것이 억압되면 우린 제대로 된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없게 된다. 무엇으로든 테두리로 제한 된 것들 속에서 철저히 자기 고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단독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영원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김수영은 이것을 통찰해 냈다.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고 그것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 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던 그는 단독성의 가치를 찾아낸 것이다. 온 몸으로 삶과 부딪히면 세상의 모든 쾌와 불쾌를 감당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명료하게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온 몸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저항에 직면할수록 단독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싱글라리티, 단독성은 그래서 자유의 경계를 자각하게 하고, 오직 자기만의 몸짓으로 겪어낸 것이기에 타인과의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그만의 고유한 것이기에 새롭고, 철저한 자기이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어떤 일반성과도, 특수성과도 다른 보편성을 지니게 된다. 어떠한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경계로 규정되지 않는 독특성 말이다.

김수영은 치열하게 이 단독성을 추구한 시인이다. 자신의 단독적인 표현을 찾기 위해 교육과 습관이란 고질적인 무의식적 유산조차도 떨쳐내려 했고, 허용된 자유라는 사회가 공유하는 삶의 규칙과는 다른 규칙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아마 이러한 그의 단독성의 추구가 많은 오해를 낳았던 모양이다.

 

단독성을 추구하는 것은 권력이 그어놓은‘허용된 자유’를 넘나드는 것으로 보였을 테고, 이것으로 김수영은 자유의 모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에게 빨갱이, 민족주의, 참여파 시인이란 딱지를 붙이는 오류들을 저질렀으니.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시, 자유를 관철시키려는 시인이 쓴 시는 당연히 과거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적 형식을 만들어 냈고, 내용을 만들어 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일 터이다. 무지하고 탐욕스러우며 비겁한 무리들이 얼마나 그에게 철퇴를 내려치고 싶었을까? 터무니없는 범주화, 규정화, 패거리들의 오류와 기만들. 자유를 말하는 것, 허용된 자유라는 이기적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권력에게는 불온한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다.

 

3. 모든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 사회

 

시인은 단독성을 추구하는 자이다. 새로운 삶을 살아내려는 정말의 피와 땀이 어린 진지한 치열함을 가져야 하는 자이다. 팽이처럼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도는 힘을 회복하려는 자이다. 그래서 외롭고 서러운 과정이다. 자유란 이처럼 두려움과 슬픔이란 난관을 관통해야 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만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현실의 상황 속에서 쉬운 일이겠는가? 타협해야하고 공통된 무엇에 규정되고 틀 지워져야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 소시민의 현실이다. 더구나 허용된 자유의 한계를 직면하고 분노했을지라도 권력에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외면하고 피해가는 것이 미덕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조금 나아가 관념에서나 자유를 이해하곤 마치 최선을 다한 것인 냥 거들먹거린다. 실천으로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머리로서 주어진 조건을 지적 조작으로 새롭게 하려하거나 자신의 정서적 반응에만 주목하면서 말이다. 아내 김현경을 우산대로 때리곤 자신의 나약함, 이기심을 바라보는 김수영의 통렬한 시선에서 현실에 주저앉아 자기 삶을 주도할 용기를 내지 않는 나약함과 비겁함에 물든 내 찌든 몰골을 본다. 불편함, 불쾌감에 대한 응시, 그것을 직면해야만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정말의 의지가 작동되는 실천의 현장을 보고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또한 옳음과 그름은 생각의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구체적인 삶을 살아낼 때 비로소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확인할 수 있다는 실천적 의지와 온 몸으로 삶을 살아내는 단독자로서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만 시가 될 수 있듯이 종교, 자본, 권력의 힘을 떨쳐내고 온전한 자유, 현실에서의 자유를 추구할 때 비로소 그 무수한 다양함들이 정작 우리의 문화와 민족, 인류의 발전이 되는 것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한 사회의 문화에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해야 한다는 거대 언론과 자본 권력의 주절거림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억압된 사회로 퇴행시키고 있는 오늘, 민주주의는 외적인 제도나 형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유정신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것이며 이를 위해 단독성의 실천을 말하는 김수영 시인의 빛과 그림자를 담아낸 인문학자 강신주의 글에 어떤 긍지와 고마움을 갖는다. 한국인 모두가 시인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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