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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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도시라는 환상적 공간에서 한바탕 자아의 심연을 헤집어 삶과 죽음이 일체화된 존재자로서의 각성을 던지고 무심히 발길을 돌리던 음반 프로듀서‘다몬’의 세상 보기 후속 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이 세상이 과연 실재하긴 하는 건가? 하는 몽환적 인식이 지배하는 모호한 존재론에 대한 5편의 이야기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인 소설집이다.

 

<나무 지킴이 사내>라는 첫 번째 작품은 타 작품과 달리 사회성을 많이 띠고 있다. 2008년도 발표 작 이다보니 당시 일본의 경제침체에 대한 집단적 불안 심리를 반영 한듯하다. 민속고유의 불안 징조인 유령적 존재인 ‘나무 지킴이 사내’가 환영처럼 등장함으로써 유행과 아이돌, 부동산과 주식에 흥청대던 물신적 존재들의 야단법석을 죽은 이의 시간에 빗대어 세상을 연상케 한다. 사실 메시지의 선명성에는 이 작품이 독보적이지만 정작 내 시선을 주목시킨 단편은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와 <사구 피크닉> 두 작품이다. ‘온다 리쿠’만의 암흑 색채가 주는 기묘한 매혹, 죽음의 선율이 유혹하고, 절묘한 정신분석적 해독이 돋보이는 지적 반짝임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지역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온 여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문을 모티브로 하는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는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산소리>를 슬쩍 끼워 넣어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죽음’에 매료된 이들이 잠든 산의 소리와 의문의 노래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인간의 악마성이 내밀하게 잠자던 시원적 본능을 관통한다.

 

“잠이 안와 오늘밤도 잠이 안와

그 소리가 들리니까

밤의 밑바닥 졸졸 소리 나뭇가지 스치는 바람

그리고 그 소리가 들려와”

 

세 번째로 수록된 <환영 시네마> 역시 ‘애드거 앨런포’의 <까마귀>에 등장하는 ‘네버 모어’라는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남자의 시(詩)를 모티브로 하여 여인을 상실한 남자의 정신적 상흔을 아이돌 로커를 주인공으로 하여 인간 기억회로의 불안정함에 연민을 가득 실어낸다.

 

한편 환영적 체험 사건인 사구(砂丘;모래 언덕)의 사라짐을 서술한 프랑스 물리학자의 과학논픽션이 시발이 되어 동행한 다몬과 번역자 여성의 상상력과 지력 충만한 이야기인 <사구 피크닉>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를 떠올리게 하는 관능적 환상까지로 연결되는 기발한 작품이다. 사실이 생략되고 감추어진 건조한 과학에세이에서 인간의 잠자는, 은폐된 욕망의 실체를 규명하는 장면은 그야말로‘온다리쿠 답다 ’라는 칭찬의 말이 튀어나오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새벽의 가스파르>는 주인공 다몬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죽음의 사실에 대한 통증을 트라우마의 이상적 징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갈수록 세대간, 집단간 가치관의 차이가 벌어지고, 파편화되어가는 개인들의 고통이란 지금의 세상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빗대어 보여 준다.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면서도 그 사실성에 대한 현실감을 상실해가는 우리들의 초상이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는 공포감이란 감성으로 비로소 납득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유감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의 세상은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건가? 하는 이 기만적이기 조차한 물음은 실재와 환상,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체감, 기억과 시각의 불편할 정도의 왜곡 등과 어울려 삶의 현실감을 아득하게 한다. 시간과 공간, 보고 느껴지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늘 열린 상태로 살아가는 주인공 다몬의 삶의 방식에 동화되고 끌려 다니다보면 어느덧 전혀 다른 낯선 시간에 놓여 어리둥절해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소설이다. 현실의 세계가 고달프면 고달플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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