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풍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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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커다란 시선이 있다. 하나는 비극으로 치닫는 한 가문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고, 또 하나는 한 남자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 성향을 옹호하는 듯 함속에 교활한 조롱을 담아내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의미심장함도 지극히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을 건드리는 통에 예사롭지 않지만, 이것들을 묘사하는 문장들, 무심한 듯하지만 결코 냉소적인 것만은 아닌 독보적인 비유의 수사(修辭)에는 그만 넋이 나갈 정도로 매혹된다. 인간에 대한 세밀한 관찰, 그리고 그것의 묘사가 너무 명료해서 불쾌할 정도에 이르는 감정적 자극을 받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인간들의 비천하고 야비한 본성을 가능한 적나라하게 드러내려는 의도를 노골화하려는 수단으로 등장인물들의 대다수에게 완전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드 M...씨, 드 K...씨, V...씨, P...씨 등처럼‘익명의 숲속’에 파묻어 버린다.  고작“자기 보전의 본능에만 사로잡힌”인간들에게 이나마도 배려의 산물이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니 소설은 오로지 그의 시선으로 써지고 있는데, 바로 그 화자(話者)인 당사자조차도 P...씨에 불과하다. 그것도 눈을 똑바로 뜨고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딱 한번 그의 신분이 스쳐 지나가는데 변호사가 맞는 것인지 확실치 않기까지 하다.


‘상류 사회’의 일원이라고 믿는 화자의 세상보기는 그의 믿음만큼이나 편협한 것이어서 그 옹색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시각이 은폐되지 않고 솔직하게 주장되고 있기에 이 자가 술회하는 이야기는 오히려‘사실’이라는 진실을 부여하게 된다.

작은 도시에‘조제프’라는 낯 선 인물이 들어온다. 우리들은 어디서나 텃세라는 것을 보게 되는데, 굴러온 돌이 만만해보이면 변변찮은 인간들이 합세하여 더없는 악의를 가지고 괴롭히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 혹은 엄청난 재산을 가진 자, 설혹 권력이나 부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그러한 자들을 배후 세력으로 한 자일 경우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살갑게 다가가서 머리를 조아린다.


1. 

소위 이름 앞에 ‘드’라는 귀족임을 나타내는 이름을 가진 자들, 그리고 상류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에게 이 새로운 남자는 마구 씹어대고 찢어발기고 싶은 대상이지만, 이 속물들의 무리에게는 그의 고상한 품격, 대귀족이거나 국가의 고위층이 아니면 지닐 수 없는 화려한 식탁보는 섣불리 대할 수 없는 신비와 경외를 준다. 그리곤 저희들끼리 새로운 남자를 범접할 수 없는 지위와 신분의 인물로 숭배한다. 이는 조제프라는 사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이런 속물들, 인간들의 비루함과 악의를 주물러 댈 수 있는 자임을 의미한다.


같은 이야기의 바깥 면이 되겠지만 웃기는 일화가 등장하는데, 귀족들과 돈푼이나 모았다는 가문들이 가족들을 이끌고 공원을 산책 하는 장면인데, 이들 사회에서 따돌림하고 조롱당하던 두 아가씨를 양 팔에 끼고 조제프가 그들 앞을 거닐면서 상류사회란 것들, 그 속물들의 집단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 사회에 모욕이 아니라 경외와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큼 비굴하고 수치심도 잊게 만드는 이기심, 탐욕에 매몰되게 할 뿐이다. 화자는 인간사회의 본성이란 것 아니냐고 항변하듯 이러한 추악한 몰골들을 자주 묘사한다.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속에 조제프란 인물이 주인이 된 ‘폴란드의 풍차’라고 불리는 영지의 가문에 얽힌 비극적 운명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5 대(代)에 이어지는 한 가문의 참담하다고 할 밖에 없는 비극의 역사를 통해 운명, 사랑, 죽음, 즉 삶의 의미를 추적한다. 영지 폴란드의 풍차의  1대인‘코스트’는 두 딸을 둔 재산가이고, 딸들의 인생이 평온하고 안락한 삶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딸들의 혼인 대상자는 그야말로 평범한 인물들이기를 바라고 그 평범성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안정된 평범함이란 것이 인간의 삶에서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달리 말하면 평범함처럼 사실 비범한 것도 없다. 완전한 평범함이란 삶에서 오히려 지나친 기대, ‘과잉’이다!


결국 800년 동안 별 탈 없이 세대를 이어온 집안, 그 완벽한 평범함에 딸들을 시집보내지만, 운명이란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낚시 바늘에 찔려 죽고, 가출하고, 버찌씨가 목에 걸려 죽고, 기차폭발로 일가족이 몰살되는 죽음이 가문을 휩쓴다. 이 불운에 대해 이 집안사람들의 기질로 표현되는 심한 불균형적 성벽이라든가 지나친 열정, 광기가 죽음이라는 비운을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둥 이러저러한 궁색한 이유를 갖다 댈 수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작품을 왜소하고 졸렬하게 만들 수 있다.


조제프란 인물의 등장과 어울려 마을 사람들이 보였던 인간 무리의 본성을 보여주는 연장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열차 폭발로 코스트의 첫째 딸 가족인 드 M...의 일가족이 몰살되자 사람들이 이 가문의 잔존자들에게 보내는 시선에 대한 화자의 설명은 이러한 점을 잘 말해준다. 기차의 제동기 과열로 인한 사고이건만 도시와 마을의 사람들은 “코스트 가(家)의 탓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이 비극, 코스트 가문사람들의 연속되는 죽음, ‘폴란드의 풍차’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늘이 “전염병이 돌 때와 흡사한 공포”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소위 ‘불온한’대상으로 낙인을 찍는 것인데, 알 수 없는 두려움, 그것이 마침내 자신들에 침투할까봐, 그래서 자신들의 삶조차 파괴할 것을 우려하는 근거 없는 적대감이 확산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는 칼이나 맹금보다도 우리가 삶에 대해서 품고 있는 관념과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라거나, “남을 증오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고 해서 비난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남을 증오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마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라고 하는 화자의 말과 상통한다.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면 인간들은 그 대상에 한없이 잔혹해지고 악랄해진다. 꼭 요즘 누군가를 따돌리고, 괴롭히고, 그래서는 죽음까지 몰아대는 잔인함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메말린다. 겸손, 연민이란“부득이해서 그런 것”이라는 화자의 말에는 야비한 인간의 얼굴이 있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면 인간은 타인에 대해 가장 악랄해질 수 있음이다.


2. 

“이기주의, 그 극단의 순수한 상태에서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다.”운명과 결혼한 추악한 이기심으로 뭉쳐진 여자는 자기 운명을 학대함으로써 사랑한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죽지만 그것은 이기심일 뿐이었다. 우린 사랑을 오해한다. 이 오인한 사랑을 사랑이라 믿는 것이 이미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 것일 게다. 코스트가에 평범성을 이식하려한‘오르탕스’란 여인의 운명의 집착에서 비롯된 사랑은 자기 학대일 뿐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그리고 이 대상을 위하여> 아낌없이 베푼다는 것”일망정 이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대상의 문제이다. 결국 사랑이란 비극적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권총 자살을 택한 오빠, 온갖 악의와 멸시와 조롱에 시달려온 코스트가의 4 대째 유일한 잔존자인 '줄리 드 M'이 죽음의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은 주변의 인간들이다. 음악에 열정을 쏟아 붙는 것은 인간 자신들의 집요한 공포를 은폐한 폭력의 결과로서 야기되는 것이랄 수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줄리의 노래는 광기, 죽음의 목소리이지만 그것을 통해 그녀는 운명에 응대하는 것일 수 있다.


상류사회와 하류사회의 화합이라는 위선적인 마을의 축제가 열리는 소설의 전환점이 되는 일화는 이러한 줄리의 자기 운명에 대한 정면의 도발을 보여주는데, 얼굴의 한쪽 면이 심하게 일그러진 모습과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드레스로 홀로 춤을 추는 장면이다. 마을의 모든 인간들이 내려다보는 현장에서. 이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을 대리한다고 할 수 있는 화자의 느낌은 그야말로 걸작이다. “일그러진 얼굴에 자신의 욕망을 뻔뻔스럽게 드러내는 여자를 보니 나는 산(酸)에라도 데인 듯 몸이 타올랐다.”라는 것이다. 그 희한한 몸짓에 인간들은 순간 숨을 죽이고 웃지도 못한다. 무서움과 혐오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이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일종의 가면을 쓴 인간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인데, 어떤 불온한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자신들의 세계에 침입한 것에 대한 불안과 조롱이란 양가적 감정이란 비천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좀스런 인간들의 사회에서 그녀의 운명을 향한 시도는 비참하게 실패하고, 그녀는 미지의 인간, 숭배되는 인간인‘조제프’에게 달려가 구원을 요청한다. 소수의 특권층이 비루함을 쌓아놓은 사회가 배제한 것들에 명예를 돌려놓는 사람, 그렇기에 더욱 경배되는 남자가 인간들을 보기 좋게 굴복시키면서 줄리를 구원한다. 줄리와의 결혼은 인간들이 소외시킨 가문을 가장 명예로운 가문으로 복원시키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즉 조제프가 하는 일이란 운명에 대해 과감하게 멸시를 던지는 작업이다. 잃었던 토지를 사들이고 폴란드의 풍차를 위대한 왕국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상류사회라는 특권층의 인간들을 모두 아내 줄리의 무릎아래 두는 것, 서로 먼저 다가와 아양을 떨고 친교를 과시하게 하는 것, 아내와 코스트가에 진정 평범한 운명을 돌려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물질적 위로는 되지만 깊은 정신적 상흔을 치유하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 여기서 작가는 운명에 대해 멋진 정의를 내린다. “운명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도발하고 호소하고 유혹하는 사람의 은밀한 욕망 앞에 몸을 기울이는 사물들의 지능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끝없이 파괴당하는 운명에 처한 비운의 가문, 그러나 그 숙명과 같은 비극도 한 사람의 도전에 의해 복구된다. 물론 소설은 5 대에 이른 줄리의 아들조차 순탄치 못한 가출로 마무리되고 있지만 우린 그 끝을 알지 못한다. 사랑, 열정과 광기, 죽음이란 인간의 영원한 언어가 운명이란 은밀한 저주와의 사투를 묵시적으로 그려낸 이 걸작에서 우린 엄청난 삶의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본능을 떨쳐내는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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