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가 타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런데 그 누군가란 가해자가 중학2년의 10대 소년들이다. 피살자는 4살짜리 여자아이고 아이를 여윈 엄마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그럼에도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은 단순 사고사로 처리되자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우린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형법의 적용연령을 개정해서 응분의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가해자는 무력한 타인의 생명을 해친 것에 대해 반성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아이들의 부모, 보호자들 또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만일 사회적 형벌도 취해지지 않고 반성도 없다면 지역, 집단 공동체가 나서 이들에게 어떤 도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여기엔 또 다른 도덕적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소년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항상 수많은 도덕적 질문들을 토해낸다.

 

소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당사자들의 고백(告白)이다. 피해자의 엄마이자 가해자의 담임선생, 가해 학생들, 가해자의 엄마와 가족, 그리고 제3자인 학생들의 급우인 사회적 연대자의 목소리로 사건의 동기와 의미, 당사자들의 도덕적 관념, 부모의 양육환경, 소년 범죄의 처벌과 관련한 사회적 공감대와 반대라는 법규범과 도덕률의 갈등과 충돌 등의 다면적 시각이 꽉 조인 탄탄한 구조위에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사건의 진실, 궁극의 당위로 접근해 간다.

 

싱글 맘이라는 편협한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며 삶의 모든 의미를 담아낼 만큼의 사랑으로 키우던 네 살 딸아이가 자신이 맡고 있는 반의 학생에게 살해되었음을 형언할 수 없는 내적 고통과 극도의 압력으로 눌린 분노를 내면화시킨 채 담담하게 사건의 과정에 이르는 진실의 고백은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뒤틀리고 역겹고 야비한, 그리고 도덕적인 불쾌감으로 살인자인 두 소년에 대한 적의를 극대화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버젓이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두 학생의 태도는 피해자의 어미로서 감당키 어려운 감정이다. 그래서 이 억제된 분노와 살의(殺意)는 억압되어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두 학생에게 예정된 죽음의 정신적 고통이란 가공할 속죄의식의 부여로 전환되어 외부로 강렬하게 표출되는 분노보다 더욱 무서운 보복행위로서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자신들의 살인 행위를 단순한 사고사로 위장하고 어떠한 죄의식도 갖지 않는 소년들, 사회가 죄를 묻지 않는 이들 소년들에게 피해자들이 선택 할 수 있는 수단이란 것들은 무엇일수 있을까? 용서와 관용?, 도덕적 인간으로의 인도를 위한 교정교육?, 아니면 형법조항의 변경을 통해 성인과 동일한 처벌을?, 아니면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는 두려움의 등가적 정신적 고통을 가해야 할까?

 

 

 

자기과시, 자기애만 주입된 괴물이 된 아이들...

 

그런데 가해자인 소년들의 내면, 그들의 고백으로 들어가면 살인의 동기가 재능의 과시욕, 우월성의 확인, 시선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라는 자기과시, 자존감의 확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며, 어떠한 죄의식도 없이 타자를 죽음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물질화, 즉 단순한 도구적 대상화로 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온통 자기애에만 집중하도록 양육되고, 도덕적 선악에 대한 이해조차도, 법이라는 사회적 약속에 대해서도 “도덕관념이 단지 학습효과일 뿐이라는 얘기는 선악의 분별은 애초에 없다는 말”이라고 할 만큼 타자의 존중과 이해는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다는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소설은 가해자인 두 소년의 이러한 성벽의 원인을 가정이라는 환경적 요인에서 찾는 듯하다. 한 아이는 자기욕구에만 충실한 어머니로부터 오직 총명함에 대한 자긍심만을 배운다. 더구나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자식까지 버리고 떠나는 비정함을 보이고, 어미로부터 재능의 가치만을 배운 아이는 인간적 자질인 사랑과 배려, 존중과 같은 덕목을 갖추지 못한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죽어도 아쉬운 인간이란 없다.”는 정신적 기형아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아이 역시 이기심과 의존성, 그리고 자기 책임의식이란 없는, 자존감만 극대화된 괴물로 양육되고 있다.

 

아마 요즘의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는 인간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이기적이고 극단의 개인주의적 교육열이란 광기에 휩싸인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어떤 인간들로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대한 반면교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애가 눈을 떴는데도 수영장에 던진 건 무서워서 그랬던 거지.”라며, 자기 자식의 범죄를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가해 소년의 어미의 심정처럼 피살된 아이와 피해자 부모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아니라 자기 자식의 손상된 마음을 먼저 어루만지는 빗나간 도덕성이 이 사회를 흉악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일 게다.

 

비록 자신을 버리고 떠났지만 총명함을 물려준 어딘가에 있을 어미의 관심을 끌기위해 타자인 어린 생명을 단지 자기 과시의 도구로 사용하기에 이르고, 공범자인 아이는 굴욕감에 대한 보복이라는 자기 우월성의 확인을 입증하기 위해 살아있는 인간 생명을 죽음에 몰아넣는다. 그리곤 살인의 책임을 타자에게 전가, 회피하고 범죄 행위에 대해 어떠한 도덕적 반성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누이의 임신과 조카의 탄생에는 감동에 겨워하며, 자신의 살아있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고백에는 늑대의 눈물, 사악함의 본질을 보는 것처럼 몸서리가 쳐진다.

 

인간이 인간을 벌할 수 있는가?

 

한편 도덕적 결론에 이르는데 항상 어려움을 겪는 진부한 질문이 이들의 동급생 입을 통해 던져진다. 살인자에 대한 군중의 히스테리, 즉 범죄자에 대한 집단적 따돌림이나 혐오, 나아가 린치에 이르는 처벌행위에 대해 이 권리가 군중에게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형제, 아들과 딸을 죽이고 미성년자이기에 법적 책임을 면했다고 도덕적 뉘우침조차 없는 인간이 우리 앞에 고개를 쳐들고 앉아있다면 이러한 인간에 대해 공리적이랄 수 있는 인간의 약속을 파괴하는 자에게 나머지 인간들은 아무런 권리도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우린 도덕적 공리를 수행하고 이행하기 위해 ‘법’을 만들고, 그를 수호한다. 그러나 미성년자라는 연령적 모호함의 기준으로 인간으로서의 근본, 본질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자를 처단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고, 오류가 아닐까?

인간을 벌할 자격이 우리에게 없다면 인간을 죽일 자격도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타인을 죽일 자격은 있는데 벌 받을 의무는 없다는 것처럼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급기야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자기 과시를 통한 존재의 드러냄이, 어미의 자기 욕구일 뿐이라는 진실을 보는 순간, 그 보복으로 종업식장인 학교 강당에 폭탄을 설치해 자기감정과는 무관한 타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살인을 준비하는 소년에게서 자기애(自己愛), 나르시시즘, 자기 욕구의 가치만이 주입된 우리 사회의 뒤틀린 가정교육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살인자인 소년의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감성을 겸비하지 못했다.”라는 고백처럼 우린 정작 인간다운 인간들을 양육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자를 이기기 위한 경쟁의 기계, 인간, 생명에 대한 이해는 사라져버리고 타인은 자신을 위한 도구, 즉 대상으로만 여기게 하는 인간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연민에만 몰입하는 기형적 인간으로 구성된 이 사회는 공존과 상생의 덕목은 마치 사회 부적응자, 낙오자들이나 하는 소리로 치부할 정도로 피폐화되어 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의 양태가 갈수록 흉포화 되어가고, 범죄행위에 대해 어떠한 도덕적 자각도 없는 소년 범죄를 증가시키고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중학교 여교사의 선뜩한 고백에서 시작하여 살인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아무런 죄의식도 없는 소년들의 혐오스러움, 이들을 양육하는 가정의 뒤틀린 역할과 환경적 양태 등을 고백이라는 여과되지 않은 심리적 도구를 사용하여 우리의 면전에 무서우리만치 들이대고 있다. 그래서 마음 깊이 파고드는 그 사실성의 위태로움과 당혹감, 불편함이 문제의식을 더욱 강렬하게 인식하게 한다. 특히 소설의 첫 장을 보는 순간부터 책을 내려놓는 것이 가능치 않다고 강요되듯이 문장의 강박적 흐름은 가히 압도적이고, 사실성이 뿜어대는 사건적 마력과 은폐되어 있는 인간들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서사적 압박은 몰입을 피할 수 없게 한다. 감추어 둔 것을 숨김없이 말한다는 이‘고백’의 형식미로 발산 할 수 있는 최고 내용의 문학작품이라 함에 주저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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