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소설 살림지식총서 232
안영희 지음 / 살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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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의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고백하는’ 양식의 소설인 사소설(私小說)은 내겐 기이하고 혐오스런 느낌을 주었다고 해야겠다. 자기의 실제경험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소위 리얼리티를 진정한 문학이라고 하는 소신인데, 이게 거북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2011년 수상작이 사소설인 『고역열차』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1920년대의 서구 자연주의 문학이 왜곡되어 이해된 일본문학의 특수한 형태가 왜 21세기 일본의 현대문학 시장에서 다시금 부상하게 되었는가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부랴부랴 사소설의 탄생 배경과 사소설의 요소와 특성, 일본인의 의식과의 연관성 등에 대한 궁금증의 해결로 나가게 했다. 소설의 화자는 곧 작가인 소설, 경험 사실을 소설적 형태로 서술한 것, 그렇다보니 작가의 경험을 한 치도 넘어서지 못하기에 갈등구조나 해결방식, 절정과 대단원에 이르는 소설의 양식을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인해 삶의 균형을 상실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체험하여야 하다보니 사소설 작가들의 인생이란 밑바닥 삶과 소외되고 저열한 생활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처럼 개인의 지루하기 그지없는 사생활을 들려주는 얘기가 독자에게 대체 어떤 의미를 주기에 문학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의 현대문학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작품은 발붙이기 어려운 장르라 할 수 있다. 타인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으며, 고작 험난하고 비참하며 비루한 일상을 읽어야 할 동기유발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인들과 그들의 사회는 온통 빠져들고 칭송한다. 이것은 일본인 고유의 정서와 인식과 사소설이 지니는 속성과의 강한 유대관계를 의미한다. 근대 서구 자연주의문학이 일본에 유입되면서 사소설이라는 변태적 리얼리즘 문학으로 정착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며, 일견 퇴행적인 문학양식이 여전히 그 생명이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지지받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사소설의 탄생

사소설이란 장르의 개막은 일본의 자연주의 시작과 궤적을 같이하는 모양이다. 사실의 충실한 재현과 노골적인 묘사를 원칙으로 하는 자연주의가 천황의 강력한 지배하에 놓인 1900년대의 일본사회에서 “구시대의 비판이 사회와의 대결”이라는 방식으로 나가지 못하고, “신변으로 시야를 좁힌 관조의 리얼리즘”으로 안착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결국 일본의 자연주의는 개인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표출, 즉 사생활을 중시하는 고백문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나라한 자기고백, 소설의 묘사는 어떠한 것도 진실이어야만 한다는 신념은 당대 일본문학계의 주류가 되기에 이른 모양인데, 이의 대표적 작품이자 사소설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1907년에 발표된‘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의 『이불(蒲團)』이다. 도키오라는 중년 작가가 자신의 집에 기숙하는 여 제자를 향한 비밀스런 애욕을 그린 작품으로 결코 충족할 수 없는 남자의 욕망이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서술된 이야기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실제 현실의 그대로의 재현으로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라 단지 사생활을 소재로 작가 자신의 내면을 그린 이야기다.

여기서 일본 사소설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철저하게 사회와 격리된 사적 생활의 기술에 머문다는 점이다. 다야마 가타이의 변형된 자연주의에 매료되어 사소설의 양식을 확정시킨 작가 중 한명인 ‘이와노 호메이’의 『오부작』은 사회성을 배제한 채 온전히 자전으로서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드려내고 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사생활을 모델로 소설을 쓴 이유는 “생활과 예술 그리고 사상이 합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생활이 그대로 예술이 되기를 원했고 자신의 사상과 문학을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구현하려 했다고 하니, 망상도 이쯤 되면 할 말을 잃어버리게 한다.

사소설 작가와 일본인의 의식구조

1.

이처럼 자기 사생활을 소설이란 구조에 담아내려다보니 감동을 주어야 하는 자기 폭로에 한계를 느끼는 것은 불가피한 귀결이다. 소재의 고갈이 극명하게 다가오는 것인데, 그렇다보니 밑바닥 삶과 자극적 사건을 몸소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따라서 사소설 작가들 대다수는 어린 시절부터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설혹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소설을 쓰는 작가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상적 균형이 수시로 파괴되는 것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현실의 무참한 폭로라는 비애를 감수하면서 사소설을 쓰는 작가이기 위해서는 이 폭로로 인해 자신이 더 이상 침몰하지 않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올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자인 ‘니시무라 겐타’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중졸의 학력에 날품팔이의 무력한 노동자이며, 성범죄자의 아들이다. “그들은 출발시점부터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생활 실격자’”였으며, 픽션과 같은 외출복은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빈번하게 번역판이 출간되는 사소설 『인간 실격』의 작가‘다자이 오사무’는 유산계급의 자식이었으니, 이 자는 거꾸로 사소설의 소재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파멸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의 소설처럼 반복되는 자살과 사창가 여인과의 도피 등, 자기 예술의 승화를 위해 극단의 생활을 추구했으며, 궁극에는 이 기이한 예술의 모순을 마감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여 해결하는 길 이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들은 왜 써야 했을까? 소외되고 고립된 그들로서는 누구 내 말 좀 들어줘요.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고, 뭔가를 쓰는 것은 피난처이자 자기 위안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 쓴다는 것은 타인과 직접 대면하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일본인 고유의 습성 탓에 상대적으로 쉽게 느낀다는 것이며, 자기 객관화 능력이 떨어지는 일종의 어리광, 나르시시즘이라는 일본인 전형의 인격구조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고백행위라는 작가의 자기희생 행위를 칭찬하는 일본인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인식구조도 한 몫 한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불행한 처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단조로운 일상으로 인한 소재고갈을 뛰어 넘기 위해 끊임없이 불행한 생활이라는 자기 연출에 내몰리게 한다. 자신의 사적 생활 영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소설의 한계는 문학이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

2.

어쨌거나 이 자폐증적 요소를 지닌 사소설은 일본의 문화코드와 분명 연관되어 있다. 일본의 대중 영상물을 보면 공통된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유독‘엿보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TV, 신문, 잡지에서 루머나 유명인의 사생활을 화제로 많이 다루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자신인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타인인 내가 그것을 살짝 엿봄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교사하는 심정이 잠재해 있으며, 사소설은 바로 이러한 공공연한 엿보기를 충족시켜 준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이러한 일본 문화의 영향에 노출됨에 따라 무분별한 관음증이 각종 미디어를 휩쓸고 있다. 어쩜 이러한 현상이 일본문학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사소설의 ‘사실성’이라는 소설 속에 그려진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은 일본인에게 사실에 충실한 작가라는 신뢰를 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작가와 동일한 인물인 소설 속 주인공에 친밀감을 갖게 하고 나아가 ‘자기 동일화’로 더욱 빠져들게 한다. 특히 사실을 숭상하고 허구를 배척하는 일본사회의 특수성은 사소설의 자전적이고 현실의 생활기반 중심의 이야기가 본능적으로 수용되는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소설은 사회에서 도피하여 사적 공간에 머묾으로써 정치사회적 무관심에 놓이고 자기 내면에만 골몰하며 자기연민에 빠진 인간을 양산한다. 결국 사소설이 개인사를 얘기함으로써 반사회적 의식을 시사하더라도 예술을 관철하기 위해 자기 현실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 전도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글쓰기인 이상 자기 파멸적, 멸망의 문학이란 오명을 피하기도 쉽지 않다.

고백문학, 일기문학, 수기문학으로서 작가가 화자인 사소설은 작가의 시선이 주인공과 객관적 거리를 가지지 못함으로써 자기반성이 불가능한 문학이다. 반성이 없으니 변화가 없고 때문에 발전이 없다는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미시마 유키오’의 지적처럼 “자유로운 인격의 발전” 혹은 “자신이 책임지는 자율적 개인의 인격형성”이라는 가치와 갈등을 일으킨다.
허구를 배제하고 사실을 추구하는 기이한 소설, 객관적 거리감을 상실한 문학인 사소설이 일본문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경은 일본인들의 정신구조와 관련하여 이처럼 비상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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