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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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을 말하는 책이 혹시라도 정작 이야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낭패일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이 문자 그대로‘이야기’의 위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득하고 있지 못했다면, 그래서 책에 몰입케 하는 데 실패했다면 아마 소감을 남기려는 의지는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 외려 이『이야기의 힘』이 전해주려는 우리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에 홀딱 빠져버렸다는 말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에는 어떤 힘이 있기에 이렇게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이 이야기란 사람에게 대체 무엇이며, 모든 인간으로부터 공감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조건, 나아가 그런 이야기들이란 어떤 형식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다. 스토리텔링의 상업주의적, 소위 마케팅 테크닉을 전달하는 비즈니스 계발서 따위는 아니다. 물론 이야기의 힘을 응용하여 명성이나 성공적인 부를 쌓은 브랜드, 상품, 서비스의 사례를 볼 수 있으니 ‘이야기’의 총합적 개론서쯤이라 해야 할까?

이야기란 무엇인가? 왜 우리들은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일까? 이야기가 인간에게 필요했던 것은 기억을 잡아두고, 대화의 거리와 말의 벽을 넘어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스며들어 마음을 변화시켜주며, 추상적 설명보다 구체적 이야기가 훨씬 이해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인간에게 전하려는 것, 삶을 풀어가는 것, 삶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용한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인간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귀와 마음을 열고 매료되는 이야기, 훌륭한 스토리는 어떤 조건과 양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야기일 때 비로소 이야기 고유의 힘을 발휘한다.
                 
“이야기는 욕망이 주도한다.”는 시나리오 닥터인‘로버트 맥기’의 말은 한 문장으로 정련된 이야기에 대한 최고의 정의로 와 닿는다. 인류가 수천년간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고 납득시켜온 것은 바로 인간은 균형을 잃었을 때 그것을 되돌리고자 분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 깨어진 균형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지, 즉 욕망의 성취를 향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 속 인물이 그 깨진 균형을 찾기 위해, 자신의 부정적 내면이 되었든 외부의 그 무엇이 되었든 적대적 환경과 맞서 싸우며 삶의 본질을 깨닫고 용기를 얻으며 희망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변화하며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이야기의 인물이 추구하는 목표, 그 욕망의 대상은 독자, 관객, 청중들 각자가 “자기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원하는 바로 그것의 은유인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재료는 주인공이 끊임없이 바라는 욕망과 그 반대세력 사이의 간극이다. 우린 이 간극, 세상이 내어주지 않는 욕망 성취를 방해하는 힘과의 분투에 매혹되며 몰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방향을 찾고, 알려주지 않은 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우리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이야기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도 있으며,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고, 현실 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도 불러일으킨다. 우린 이야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공유하며 함께 참여하고 변화를 가지려 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마도 이 책의 백미(白眉)라 할 것인데, 이처럼 인간 삶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그 수많은 형태의 삶의 이야기들을 훌륭하게 쓰거나 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만들기’라는 소설, 시나리오, 그 밖의 스토리에 대한 단계별 작법이다.
한편의 단막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하여 유명 영화, 방송 드라마의 사례를 곁들여 가며, 삶의 균형이 무너진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여려 적대적인 것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나가는 장면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의 성격 설정에서부터 시간과 배경의 설정, 삶의 적대자와 장애물 등 대립구조 만드는 법, 그리고 최고조에 이른 갈등, 즉 “갈등의 힘이 뚜렷할수록 그것을 풀어내는 스토리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는 글쓰기의 준공리를 지켜내는 방식, 갈등해소와 복선의 활용, 화자의 철학과 가치관이 드러나는 핵심으로서의 결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절로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된 듯한 자신감을 갖게 할 정도이다.

“이야기에는 무의식적 욕망, 금기된 것들의 욕망, 하지 못한 것들, 혹은 할 수 있는 것들”과 같은 우리의 근원에 대한 것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무한한 욕망과 관련되어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대를 형성시켜준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부족한 것들, 다시 말해 욕망의 대상인 것들, 사랑? 미성숙? 부정적 태도? 등등 그것을 채워주는 이야기들은 지금도 무수히 만들어져 우리들 삶을 끊임없이 자극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우리들을 더 가치 있고 선하며 도덕적 상승감에 연결시켜주는 한 우린 이야기의 힘에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처럼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추동력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접했던 소설, 영화와 드라마, 오페라의 스토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일종의 분석적 이해력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또한 재미있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치기어린 자신감도 얻게 되며, 오늘날의 각종 소통수단들과 대화 도구를 통해 효과적 의사 전달에 대한 감각도 깨우치게 된다면 지나친 이해일까? 결국 삶의 원형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본질에 대한 탐구인 이 책은 본격적 이야기의 시대인 오늘에 신선하고 적절한 이야기 문화의 안내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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