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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역사에서도 그러하겠거니와 평범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어떤 짧은 순간에, 또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숙명적인 결과가 일어난다는 것은 실로 당혹스러운 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결정적 순간이나 몰락으로부터 무한한 상승의지가 솟아나는 위대한 모순을 알 수 있었다면 우린 천재로 불리고 삶과 역사의 전환자로서 우뚝 서있을지도 모른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순간’, 그리고 ‘위대한 비극’을 포착했다. 이것들에 드리운 광기, 바로 인간 내면의 심층에서 역동하는 어리석음과 무서운 본능이 지배하는 인간사와 인류의 역사의 전환적 사건들의 실체를 보았다는 것이다. “본질적이고도 지속적인 것은 모두 아주 드물고도 짧은 영감의 순간에 창조된다.”는 그의 말은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 모두를 정의하기에 충분하다. 빼어난 이야기꾼이 문학적 향기 그득한 문장에 담아 들려주는 운명의 진실들, 우린 한 걸음 더 우리 자신의 역사에 다가가게 된다.
선택의 순간, 단 1초의 무의식적이기도 하고 의식적이기도 한 망설임, 그리고 역사의 페이지는 넘어간다. 한 개인은, 인류는 오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길 수 없는 운명의 거대한 힘에 맞서려는 광기가 없었다면 예술도, 과학도, 문명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역사는 우연과 광기가 낳은 위대한 모순의 산물이라고도 할 것이다.
세계사를 바꾼 ‘1초’
1815년, 유럽, 나아가 세계를 뒤흔든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온이라는 인물의 정치생명과 유럽대륙의 패권 향방을 가름 짓는 절대 절명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 세계사적 전투가 운명의 부름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어리석고 무능한 장군, ‘그루쉬’라는 인물의 한 농가에서의 1초, 순간적 오판의 결과였다는 것은 인류의 엄청난 역사라는 것도 사실은 대부분의 일상적이고 지루함이며 본질적인 것은 그 속의 아주 짧은 순간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 우연의 순간 말이다. 이미 이 미련한 프랑스군 장수를 따돌리고 영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워털루로 달려간 프로이센군의 흔적만을 찾는 그루쉬의 1초는 세계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 1초라는 순간의 시간, 어떤 우연함에 의해 찾아든 시간은 그 순간만큼 무한히 확장되는 시간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정치범으로 처형대에 끌려가 검은 두건에 시야가 가려지고 사형되기 직전에 교차하는 불타오르는 죽음의 키스,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기쁨과 행복이 어울린 지상의 마지막 고통, 그리곤 삶의 달콤함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그 찰나(刹那)의 상념들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칼이 내려치려는 직전의 순간, 처형은 정지되고 생의 순간으로 복귀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얼굴에 매달린“창백한 노란 웃음”은 실로 형언 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의 미지의 숭고한 무엇이다.
역사의 우연, 그 순간들이 소설이 되어 흐르고, 웅장한 서사시가 되어 호수의 잔잔한 물결처럼 우리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삶과 역사의 대부분은 지리멸렬하고 초라하다. 어떠한 것도 지속으로 내내 운명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 짧은 찰나의 시간이 우리의 영원을 규정하고, 지탱한다. 흔해빠진 역사의 소재가 아름다운 문학적 문장으로 변신하여 웅숭깊고 지고한 삶의 교훈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경이로운 통찰이 되어 심장을 파고든다.
인간의 진실, ‘광기’, 그 모순의 세계
감성의 억제, 이성의 채로 걸러진 이지적 감성을 말하던 대문호 ‘괴테’의 노년에 찾아든 열정, 아마 죽음이 임박한 일흔 네 살의 노(老) 대가에게도 그 불안의 강렬함은 마지막 욕망과 마지막 체념의 경계를 오르내리게 했던 모양이다. 열아홉 살 소녀, ‘울리케 폰 레베초프’를 향한 연정, 다시금 청춘을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 늙은 베르테르가 다시 깨어나는 그 전환적 외침은 광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광기! 그 인간적 진솔함, 가장 깊고 가장 성숙하고 정말로 가을처럼 이글거리는 문학작품이라 불리는 『마리엔바트의 悲歌』의 탄생을 가져왔으니 말이다.
“어찌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랴,
이 날에도 아직 닫혀있는 저 꽃 봉우리를.
낙원도 지옥도 네 앞에 열려 있으니
마음 속 생각들은 얼마나 불안하게 흔들리는지!”
울리케의 키스를 받으며 이별하고 돌아오는 노인의 체념에는 잊을 수 없는 내적 갈등이 안타깝게 출렁인다.
이처럼 광기는 열정이요, 집념이며, 생래적 부조리에 대한 대항이다.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마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성벽공략을 향한 집념의 산물들, 거대한 대포, 노출된 바다를 우회하기위해 산을 오르는 배는 그야말로 욕망의 실현을 위해 인간이 행하는 광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 유럽인들에게 신대륙의 진면을, 광활한 대양 태평양을, 나아가 잉카에 이르는 길을 최초로 드러낸‘발보아’란 인물의 불멸을 향한 도주의 행로는 한 인간의 광기가 세계사의 흐름을 어떻게 뒤바꾸는지를 찬란하게 드러내며, 성공이라는 우연성에만 집착하며 불타올랐던 남극탐험가 스콧의 장엄한 도전은 위대한 비극의 진한 감동을 일깨운다.
더구나 근대적 시간관, 지상에서의 속도, 그 규모나 리듬에 있어서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 1837년의 세계사적 사건을 주목하게 하는데, 한 인간의 굽히지 않는 소박한 용기, 그래 광기다. 격리되어 있던 인간 체험을 동시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 대 역사, 구대륙과 신대륙을 잇는 대서양의 해저 케이블 설치는 미친 짓이었을 것이다. 모르스부호가 전신(電信)을 타고 순식간에 세계를 연결하였으니, 오늘날의 이동통신기술은 사실 이 최초의 진보를 향한 도전에 비할 것이 못된다.
에필로그
일생의 작품세계에서 인간의 숨겨진 악마성, 광기와 욕망의 본성, 그 순간의 우연에 천착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시선이 녹아든 이 저작은 예리한 역사적 통찰을 문학 향기 그득한 소설로, 서사시로, 희곡작품으로 둔갑시켜 우리네 삶의, 감성의 한복판으로 흐르게 한다. ‘헨델’의 숭엄한 <메시아>의 선율로, 공병장교‘루제’의 하룻밤 열정이 조국 프랑스의 국가인 <라마르 세예즈>가 되어 울려 퍼진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미완성 희곡 『그리고 어둠속에 빛이 비친다』는 폭력과 권력에 대한 이중 잣대로 가장했던 대문호의 양심을 하나의 희곡으로 완성하기도 한다. ‘아스타포보’ 기차역 대합실에 붙어있는 작고, 좁고, 낮고 가난한 침대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쳐야 했던 노 작가의 죽음을 승화시키면서.
가끔 우리는 거대한 당위를 거스르는 위험한 광기에도 휩쓸리며, 우연한 어느 순간에 자신의 길을 벗어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한없이 작기만 한 인간이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위험한 우리의 모순된 행동이야말로 바로 위대한 비극 아니겠는가? 삶이란 역사란 그런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위대한 전기 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시인인 츠바이크의 역사, 세상, 인간보기에 다시금 매혹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