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성커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중국의 개방화와 자본주의 물결을 거세게 흡입하고 있는 상징적 도시인 선전(深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전통과 서구의 개인적 자유와 평등적 사고는 사적(私的) 영역에서 수많은 잡음과 갈등, 신념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을 터이다. 특히, 사적 영역 중에서도 가장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성(sex)과 젠더(gender), 그리고 사랑의 가치에 대한 변화가 일으키는 사회적 파장은 결코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중심에 서있는 여성의 성적 개방화를 비롯한 성적 지위의 생태변화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남성 중심의 성적 권력관계를 구성하는 결혼제도는 물론 각종 남성 중심의 성문화와 사회적 기율, 제도적 장치들과 충돌하게 된다. 이는 성(性)을 사적 영역에만 머물 수 없게 하는 사회적인, 공적 영역의 문제로 견인되게 한다.

작가‘성커이’는 이러한 성 권력의 변화가 오늘의 중국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성 권력의 약화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남성들은 이 새로운 성 질서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 것인지, 또한 신장된 성 권력을 가지게 된 여성들은 또 어떻게 조화하고 균형을 갖추어 나아가야 하는지를 조명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수동적 성으로서의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을 기다리는 억압된 성으로서의 여성으로 남아있지 않다. 자신의 감성과 욕망을 실현하는데 적극적이고, 사랑이 충족되지 않는 결합은 언제든지 털어버리고 해체시켜버린다. 이러한 새로운 섹슈얼리티에 기초한 사랑관은 미처 적응하지 못한 남성들, 여전히 권위적이고 전통적인 남성 우월적 성을 떨쳐내지 못한 남자들을 분노와 좌절,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더구나 섹스는 이제 생산적 기능을 떨쳐버렸다. 성적 결합 없는 재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이제 성은 완전한 해방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에게 섹스는 더 이상 구속이 아니며 자기 사랑의 확인이며 본능적 욕구의 실현 수단일 뿐이다. 결국 남성은 여성을 전통적인 성으로 구속할 수 없게 되면서 그동안 누려왔던 남성의 성적 자유를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즉, 남녀 간의 성적 평등이란 혁명적인 세상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에 이르렀다 할 수 있다. 이 엄청난 권력의 변화는 진행 중이며, 완전한 평등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상처 받는 사람들을 가공해 낼 것이다.

여성의 성은 한 남성의 소유로서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 소유된 성이란 관념은 해체되고 있다. 소설의 여주인공인‘줘이나’는 혼전에 이미 성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 관리인‘첸진’과 오랜 성관계를 지속하지만 출신지역이나 신분상의 열등성, 그리고 약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언행이 남자로부터 가해지고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결혼한다. 그러나 주방일은 여성의 의무이며 남자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가부장적 권위의식과 수동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요구, 거듭되는 인공유산은 갈등을 심화시킨다. 여기에 재혼한 여성‘위안시린’과, 이혼녀로서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쑤만’이란 여성이 등장하여 기존 남성편향의 성 권력의 모순과 위선에 저항한다.

급기야 줘이나는 태국 여행 중에 만난 변호사‘좡옌’에게서 억눌렸던 자신의 성적 주체성을 발견하고 여성에 대한 섬세한 배려라는 균형 잡힌 매너에 빠져든다. 물론 남편 첸진에 대한 죄의식으로 갈등하지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르며, 이혼 절차를 밟는 기간 중에 좡옌과의 열정적인 섹스에 탐닉한다. 한편 위안시린이라는 여성은 근육질의 흑인과 잠자리를 통해 눌렸던 욕정을 해소하며, 쑤만은 여러 남자들로부터 구속받지 않은 자유로운 성을 추구한다.
이에 대비하여 사업적 접대와 출장 등에서 매춘 여성들과의 성 관계를 가진다던가, 사회의 우월적 지위를 통해 성 접촉을 하는 위안시린의 남편을 통해 기성 사회가 남성 중심의 성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줘이나가 그녀의 정부(情夫)인 좡옌이 출장 중에 여성으로부터 마사지 서비스를 받은 것을 계기로 감정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도 이러한 왜곡된 성의 구조를 강조한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의미심장한 문제를 제기한다. 여성의 성적 지위가 향상됨으로써 위협받고 있는 결혼제도가 그것이다. 오늘날 서로간의 사랑이 의심되고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바로 이혼이란 절차로 이어지고 가족이 해체되어버린다는 점이다. 그 의혹과 불신의 원인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줘이나의 경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푸념이자 남편에 대한 조롱인데, ‘성적 무능력’, 즉 여성의 성적 주도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자기중심적 성 관념에 대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다. 위안시린이나 쑤만의 불만도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오늘날 여성들의 사회진출, 직업인으로서 경제적 독립은 물론 오히려 남성보다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가지거나, 가질 수만 있다면 굳이 결혼이란 제도의 구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줘이나의 경우 정부인 좡옌의 도움으로 직업을 유지하고 있어, 그녀에게 첫 성 경험을 안긴 남자를 만나 완벽한 성적 희열에 도취되어 있음에도 좡옌과의 이별을 망설이는 것이나, 쑤만의 높은 경제적 능력이 남자들과의 잠자리를 주도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결국 이처럼 여성의 성적 지위 향상은 기존의 남성 우월적 성 권력에 의하여 짜여 진 사회 시스템의 재편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처럼 변화된 섹슈얼리티에 대해 남성들의 인식전환은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을 전해주는 사건이 있는데, 성병에 걸린 위안시린과 그녀의 남편‘마샤오허’와 사이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만취한 위안시린이 남편에게 외도한 사실을 말하고 그래서 성병에 걸렸음을 고백하는 것인데, 이것은 신뢰의 배반이라고 길길이 뛰며 이혼을 요구하는 구실이 된다. 그러나 이혼합의 시간을 지연시키던 위안시린은 종합검진결과 성병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자 삼십만 위안을 요구하며 남편의 겁박을 오히려 역공한다. 공장운영을 하는 마샤오허로서 이러한 거금은 사업의 파탄을 의미하며 아내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구걸하는 위치로 역전되는 것이다. 이때 위안시린이 하늘하늘한 잠자리 가운을 걸치고는 눈길한번 주지 않고 육감적인 몸을 흔들며 성의 우월자로서 남편을 냉담하게 외면하는 것은 바로 권력 재편의 멋진 상징적 장면이 된다.

자칫 성 권력의 재편, 남성과 여성의 성적 평등을 말하기 위해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성의 추구를 말하는 것으로 왜곡될지도 모르겠다. 실로 오랜 인간의 역사 속에서 남성의 지배적인 성 구조와 종속된 성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관념으로 굳어진 것들을 변경하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성을 소유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존중하고 독립적 주체성을 지닌 동등한 성으로서 인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성적 본능의 추구만이 인간의 삶 전반이나 결혼과 가족과 같은 인류지속적 본질적 가치들을 지닌 제도들을 파괴할 도덕적 우위를 지닐 수는 없는 것이다.
소설의 대단원에 이르러 줘이나가 첸진 어머니의 임종에 같이 함으로써 가족이란, 부부란 어떤 것인지, 때론 갈등하기도 하지만 사랑하고, 위로하며 위로받기도 하는 것, 행복이란 고통과 함께하는 것임을 자각케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비로소 첸진 역시 성적 평등자로서 줘이나를 존중하고 이해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섹슈얼리티 시대에 요구되는 균형과 조화의 성을 발견케 한다.

이 소설은 분명 문제작이다. 등장하는 여인들의 성적 일탈을 둘러싼 당위에 대해서 엄청난 반향이 있을 것 같다. 또한 남성들이 당연시하는 오늘의 성 구조와 체계에 대한 모순이나, 부부간, 가족 내에서의 남성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분분할 것이다. 특히 결혼했으면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식의 전통적 결혼관계가 배우자와의 사랑이 없다면 미련없이 결혼을 깨어버린다는 당사자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식의 내적인 인간간계인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순수한 관계(Pure Relationship)'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첨예한 물음이 될 것이다.
줘이나의‘평평한 가슴(小說 原題: 水乳)’이란 현대의 외형적 조형미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새로운 욕구와 새로운 불안들을 만들어내는 오늘의 개방된 기획사회를 탁월하게 성찰해내고 있다. 소설적 완성도는 물론 주제의식과 가치 제안적 역량이 그 어느 중국 문학보다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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