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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 - 정의·도덕·생명윤리·자유주의·민주주의, 그의 모든 철학을 한 권으로 만나다
고바야시 마사야 지음, 홍성민.양혜윤 옮김, 김봉진 감수 / 황금물고기 / 2011년 6월
평점 :
이 책은 한동안 한국사회를 공정성의 담론으로 몰아넣었던‘마이클 샌델’의『정의;Justice(국역: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하여, 『자유주의 정의와 한계』, 『민주정에 대한 불만』,『완벽함에 대한 반론(국역;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공공철학(국역:왜 도덕인가)』등 주저(主著)를 중심으로 그의 정치철학적 신념을 해석하고 궁극적으로 도덕적 정의관에 기초한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재생에 대한 검토라 할 수 있다.
샌델의 정의론은 「하버드 강의」라는 부제 하에 방송으로도 수차례 방영되어『정의;Justice(국역: 정의란 무엇인가)』을 접하지 못한 독자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내용이며, 그의 생명관이나 공공철학에 대한 주장역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낯설지 않은 논의라 하겠다. 그럼에도 샌델의 정치철학을 지탱하는 구조물을 전체적으로 이해함으로서만 본질적 접근이 가능한 내용들을‘고바야시’의 설명을 통해 비로소 혹은 보다 명확하게 근접할 수 있는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일 것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적 정의관에 대한 비판자인 샌델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정의관을‘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뚜렷한 구별을 가능케 하여 일부 흐릿하게 이해하고 있던 부분들의 차이점을 제대로 납득하게 해주고 있다.
일례로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회계약설에 대한 새로운 자아(自我)를 상정함으로써 존재치도 않은 사회계약을 실제계약의 순화된 형태로서의 완전한 계약으로 자유주의적 정의를 설명한 것은 ‘무연고적 자아’, 즉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자아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책무를 지지않는 자아라고 비판한 샌델의 주장을 선명하게 이해케 한다. 이로부터‘미덕의 함양과 공동선’에 대한 고려가 없는 자유주의자들의 정의에 대한 미흡함의 발견은 자명하게 되고 이것이 이후 공동체의식과 연대를 기초로 한 공공철학까지 이어져 샌델의 인간사회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신념의 커다란 줄기를 잡아채는 데까지 이어지도록 돕는다.
특히 정의(justice)에 대한 논의에 있어, 롤스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과 해설을 통해 자유주의 정의론을 해체하여 오늘의 시대가 간과하고 있는 시민의식, 희생, 봉사, 도덕에 기초한 정치 등의 실체를 부상시키고 있는 것은 돋보이는 장점이다.
이러한 도덕적 정의(正義)론이 지니는 함의(含意)들 못지않게 내 사고를 장악한 것은 자유주의에 포획되어 오늘 우리사회가 상실한 “시민적 미덕에 기초”한 “자기통치를 지향하는 생각”의 복원의 주창으로서 공화주의의 재생에 대한 논의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의 파고(波高)에 의해 민주주의의 쇠퇴, 공동의식의 파괴로 치닫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극복할 가치로서, 또한 보수적인 우파들이 자신들의 부족하고 무지한 논리를 돌파하기위해 즐겨 사용하는 파렴치한 언어들을 슬기롭게 압도할 수 있는 건강한 의식을 발견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우리의 헌법 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정치사회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하게 만든다. 민주주의는 형식적 민주주의로 흐르고, 공화주의는 사실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 만일 이런 인식이 옳다면 대한민국은 헌법1조가 말하는 국가의 정체성이 상당부분 훼손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진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이런 상실감, 불안함을 초래한 것일까? 바로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다. 이들은 ‘정의’에 선(善)에 대한 문제, 즉 도덕성을 배제한다. 그리고 모든 정치경제적 판단에서 도덕적 논의는 선반위에 올려놓고 회피하는 것을 중립이라고 부른다. 이러하다보니 시민 공동체들의 자기 통치에 필요한 도덕적, 시민적 요소가 손상되고, 선의 문제를 정치적 담론으로 견인할 수 없게 만든다.
“자기통치를 위해서는 동료시민과 공동선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논의에 있어서는 공공적 사항에 대한 지식이나 공동체의 귀속의식, 전체에 대한 관심, 공동체 사람들과의 유대가 필수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적 미덕이 필요하다. 그런 미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인격 형성이 필요하며, 따라서 공화주의적 정치란 인격 형성 정치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지금 어떤가? 개인이 자유의사에 의해 선택할 수 있다는 주의주의적 자유주의의 사유로 말미암아 공동체의 다양한 선 사이에 국가는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민성이 필요로하는 미덕을 완전하게 제쳐둔다. 그러하다보니 가족, 지역, 연대 등 시민 공동체가 자기통치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되고, 이는 곧 진정한 자유를 상실케 하여 사람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자기통치의 참여가 봉쇄되었으니 선의 미덕을 논의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 후퇴와 공화주의의 실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샌델의 『민주정에 대한 불만』은 이처럼 공화주의의 자기통치 이념을 위기에 빠뜨린 자유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시민적 미덕 같은 윤리적 정신적 요소의 강조와 자기통치를 할 수 있는 제도적 면에 주목하여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의 재생을 주창한다.
공화주의의 시민성의 정치경제라는 기반이 자유주의의 소비자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경제로 변화하여 성장이나 분배적 정의를 중시하게 되면서, 다원적인 연고적 자아, 즉 공동체들마다의 미덕을 훼손하고 국정이나 지방자치에 대한 정치적, 시민적 참가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예로써, 자유주의의 복지수혜는 혜택을 받는 다는 점에서 고충을 덜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정치에 관여하는 시민적 능력을 타락시킬 뿐이다. 정부에 의한 수입조장이 아니라 공동체, 가족, 국가에 관여하는 존엄성을 갖도록 고용을 늘리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시민의식을 되찾아주는 것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실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적 권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연대의식이나 책무의 지지를 받을 때 비로소 동포애, 공동선에 기초한 정의로서의 정치경제, 도덕성이 반영된 정의라고.
자유주의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 불평등이 정의가 아닌 것은 부자의 부가 가난한자의 노동력 착취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자가 쌍방의 인격을 타락시켜 공동체의 자기통치에 필요한 공동성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빈부차가 확대되면 부자는 공원, 대중교통으로부터 도망쳐 사적인 영역으로 도피한다. 공립학교 대신에 사립학교(특목고), 대중시설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시설로, 대중교통이 아니라 자가용제트기로, 이로 인해 결국 공동의식이 부재하게 되고 공동의 선은 사라질 것이다. 극한의 분리와 의식의 균열, 국가와 공동체의 정체성이 파괴되고 민주공화국은 요원한 헛소리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시민의식을 희생시켜 자치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 시스템을 요구하는 공공철학의 사유가 절대 필요한 것이고 더욱이 건전한 민주주의의 수행을 위해 절실한 것이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보이지 않는 균열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자유주의 정치와 시장만능의 자유지상주의의 선(善)없는 경제정책은 롤스식 무연고적 자아에 기초한 미덕 없는 정의가 아니라 도덕성을 내재한 정의라는 정의관으로의 일대 전환을 요청한다. 또한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판단할 도덕적, 정치적 자립성을 보장하는 공동체, 공화주의의 복구가 실행되어야 한다.
개인의 권리가 공동선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유주의 논리로서는 우리가 잃고 상처받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존 듀이의 “자유는 개인들의 역량을 깨닫게 하는 공동생활에 참여하는 사상”이라는 정의처럼 자신의 목적 추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생활에 참가하기 위해 중요하며, 사회적 커뮤니케이션과 자유로운 탐구 그리고 토론을 가능케 하는 것이어야 한다. 부유층보다는 빈곤층에 호소하여 노동, 빈민계층에 거짓 희망을 말하는 국영 복권처럼 근로나 민주적 생활이라는 도덕적 책임이라는 미덕을 파괴하는 정부의 자유주의적 상업적 접근은 근심스럽다. 공적 영역의 대상인 시민과 기업의 고객, 소비자로서의 성격을 구별치 못하는 실상이 너무도 안타까운 것이다. 공동선을 위해서 자본가, 기득계층을 포함한 모든 시민은 자신의 요구를 희생할 필요가 있다. 공적 영역의 존엄과 권위를 지키는 것은 우리들, 공동체의 건강성, 진정한 자유를 지켜내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희생을 공유하는 정신을 알지 못하는 자유주의는 공동체주의, 공화주의 정신으로 속히 복귀하여야 하는 당위가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책은 이러한 선에 기초한 정의관에서 비롯한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재생이외에도 샌델의 생명관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포함한 자연을 다시 만들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열망”에 대한 비판론인 『완벽함에 대한 반론(국역;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에서, 시장화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시장화하려는 인간의 오만을 성찰하고 있으며, 윤리적 미덕과 공동선을 토대로 한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샌델 논문의 해설이 수록되어 오늘의 우리들이 지향하여야 하는 도덕적 정의를 완벽하게 정리해내고 있다. 진정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명쾌한 논의들이 정체의 한계와 궁지에 처한 오늘을 돌파하는 진지한 전환적 사유를 제공한다. 샌델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저작으로서의 위치를 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