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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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살아가다보면 절로 보이고, 느껴지고, 그래서 깨우쳐지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사회의 속성이란 것이 있다. 때론 그것이 역겹고 부조리해서 독설을 담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게 어디 보이는 것이 아닌 까닭에 거대한 에피스테메가 된 담론적 질서에 종속된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받거나 변화를 기대하기란 역사의 진실을 보더라도 가능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아예 단절된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속내를 태우지만 나 같이 이러한 현실에 얽혀 발을 빼내기가 어려운 범인(凡人)들로서는 이도 실행한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닐뿐더러 아예 겉으로 내색조차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실상이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내내 타자와 세상에 냉소를 보내고 군중 속에서 홀로 은둔하는 불편함을 인생이려니 하고 감수한다. 내가 바로 타자들의 그것인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자니 만나는 오래된 벗들이나 동료들을 청중으로 하여, 내 불운한 인생 이야기, “냉소의 부산물인 추억의 납덩어리”를 소설 속 화자인‘장원두’란 인물처럼 풀어 놓곤 하는데, 그러하다 보면 어린 시절인 오래 전의 시대로 훌쩍 넘어가버린다. 그럼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나 인생에 첫 대면했던 자극적이고 진기했던 사건들이 줄줄이 잠긴 기억의 사슬을 풀고 쏟아져 나온다. 다만 내겐 이 소설 속 화자처럼 현실의 가까운 거리에‘마사오(正夫)’같은 신화적 인물, 마음의 영웅이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그 후계자를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기에 어른이 된 어느 시기에 이르러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의식(儀式) 같은 거추장스런 부담이나 회한의 시간이 불필요했다. 물론 숭배할만한 지배 권력에 익히 예속되어 그 안에서 평온을 누리던 사람들이 굳게 믿었던 신화가 깨지고 역사의 시대, 새로운 권력의 다른 습관을 인식하게 되면 냉소적이었던 자신조차도 그 물에 놀던 물고기인지라 추억을 되씹는 것은 도리가 없는 일이긴 할 것이겠지만.

화자(話者)는 자신의 성장기 내내 마음 속 왕이었던 고향지역의 거리가 낳은 최초의 건달, 싸움꾼, 깡패이자 “지역의 평온과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 재판관, 시장, 의원, 언론인, 배우의 기능을 겸한 위대한 인물”이었던 영웅인‘마사오’를 신성한 권력의 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소설은 이 신화의 스러짐을 기점으로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데, 그래서 그 시간 속에 기록되는 것들은 어차피 이미 진행되어버려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화자의 고향인‘지역’으로 상징되는 공간 역시 회오리바람과 비안개로 뿌옇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현실인 지금과는 다른 시공간처럼 보인다. 추억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이처럼 삶의 경계가 다른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이 경계가 다른 세상이 우리네들의 세상이 아니란 것이 아니라 이제 이러한 세상과는 단절하거나 아니, 안개 낀 흐릿한 어둠에서 밝은 햇살이 빛나는 화창한 세계, 즉 변화된 세계로 연결하려는 의미일 게다.

‘나’, ‘장원두’와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지역의 친구, ‘재천’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뚜렷이 다른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역의 구성원인 군상들이 맺는 관계와 그 관계의 의미, 지역을 지배하는 권력양태의 변천과 속성을 소위 “중앙이나 제도권 언론에서는 도저히 취재할 수 없는 것, 무시하고 포기하는 진실, 예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사실인 것, 다룰 수 없는 역사를 폭넓게 다루는”소문이라는 풍부하고 설득력 있는 형식에 담아 그것들의 여과 없는 모습을 그려 낸다. 이것은 다름 아닌 국민적 망각에 숨겨진 것들, 인간의 이성이 무능력을 나타내는 것들을 여지없이,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를 참지 못하며, 평범한 것에는 만족할 줄 모르는‘재천’이 비범해지기 위해 발달시킨 달변의 혀와 웃는 표정 뒤의 야비함과 폭력성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머뭇거리기만 하는 ‘나’와 대조되어 오늘을 사는 기형화된 우리들을 투사하고 있다. 이처럼 삶을 기술화시킨 사회의 양태는 ‘나’의 짝사랑 연인이었으나 ‘재천’의 처가 된 ‘세희’를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으로 남성을 정복할 일방적 거리를 아는 여성의 본능적인 남성관, 모였다하면 재야 정치가, 재야 경제인, 재야 지식인, 재야 천재화가, 그리고 지역을 대표하는 민주투사로 변신하는 소시민들의 졸렬함, 권력자 가까이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단련시킨 아첨을 아첨 같지 않게 하는 핵심기술, 그래서 “걸레 사이에 낀 먼지처럼 거짓말이 섞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인간사회, 바로 소설 속‘지역’은 축소판 한국 사회, 편협하고 패거리를 짜내고, 보잘것없음에도 비범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무식한 욕망이 들끓는 곳, 그런 곳이 된다.

이제 경계너머‘지역’의 시간과 공간성은 멸실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 이외의 모든 타자는 단지 이용되어야 할 대상이 되고 마는 세상, 그렇게 해서 수중에 넣은 권력에 무슨 행복과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거침없이 타자를 극복할 대상으로만 가르친다. 그래서 모두 성공, 출세라는 말이 지닌 본성을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야합과 적만이 존재하는 사회를 인식하는 것은 냉소가 아니다. 아니 설혹 “힘없고 가난한 자에게 신이 내려준” 도구가 냉소라고 비하하려 할지언정 우린 ‘장원두’의 ‘지역’같은 사회에는 분명 밝음이 무엇인지, 화창함이 무엇인지, 빛을 느끼게 해주어야만 할게다. 너무 밝아서 모든 것이 드러날 정도로 투명한 세상, 바로 그런 것이 진짜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역사로 말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들, 우리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지워버릴 수 없는 바로 우리가 무능력을 보이는 내면화된 삶의 어두운 풍속의 속성, 우리사회가 흘러가고 있는 주류적인 그것들, 익숙한 그것들을 전복하거나 변형하는 힘이 소용돌이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마사오’는 ‘나’의 마음속 가장 오래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영웅, 왕이 아니었을까?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울분을 이해했던 돌발점에서의 반항이요, 용기요, 자유요, 새로움이 바로 그였기에. 시니컬한 재치로 버무려진 맛깔스런 이야기 속에 부패하고 안일한 우리의 내부를 강하게 두들겨대고 이탈을 촉구하는 의외의 목소리가 담긴 작품이다. 문득 나도 마사오같은 인물, 비감(悲感)하게 생을 마친 바보 대통령, 그가 내 마음에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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