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복제자 밈
수전 블랙모어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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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사상이나 현상의 근원에 대한 생각들이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규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본성- 생물학적이 되었든, 정신 또는 마음이라는 형이상학적 관점이 되었든 - 에 대해 그토록 알아내지 못해 모두들 안달하는 것일까? 결국 인간의 실체에 대한 정의야 어찌되었건‘인간’이 세상의 주체, 즉 설계자이고 기획자이며 제조자이고, 또한 그렇기에 이로부터 파생되는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의 인간사회 구조에 숨겨진 본질적인 원천적 요소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자신들을 위해 당연한 물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신다윈주의자로서 동물생물학자인‘리처드 도킨스’가 그의 저서『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생물학적 복제자인 유전자에 비견하여 처음으로 일종의 문화전달자인 밈(meme)을 언급함으로써 유전자가 아닌‘제 2복제자’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데, 이는 현대 인간의 사유와 행동양식이 소위 생물학적 배경만으로 해석 되거나 규명될 수 없다는데 기인한다. 진화심리학을 비롯한 사회생물학자들의 생존유지와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생물학적 논리에 기반한 설명이 여전히 개체의 행동을 장악하고 있는 유전자의 지배력에 근인(根因)하는 것이기에 많은 부분에서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나 또한 많은 부분에서 설명되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 오늘의 인간의 모습, 즉 큰 뇌를 가지고, 언어란 의사소통 기호를 지니며, 각종 전자장치를 만들어내고, 우주공간을 비행하는 것은 물론 더 이상 번식하려 하지 않는 개체가 늘어나는 등 이러한 현상 중 많은 것들을 유전자의 자연선택원리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불명확하고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아닌 스스로 복제하고 진화하는 제 2의 복제자가 있다는 것인데, 바로“의복과 음식의 유행, 의식과 관습, 예술과 건축, 기술과 공학 등 문화가 뇌에서 뇌로 퍼져 가면서 그 수가 늘어나며 진화하는”문화전달 단위이자 모방의 단위인‘밈(meme)’이 그것이란 것이다. 더구나 이 저술은 밈과 유전자와의 공진화 역사는 물론 경쟁관계에서 우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제2의 복제자라는 밈이 진화알고리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변이와 선택, 그리고 보유(유전)라는 자연선택의 원리인데, 밈 역시 퍼질 수만 있다면 무조건 퍼지게 하려하고 뇌 속의 제한된 처리 용량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뇌를 비롯한 저장장치에 저장되고 모방을 통해서 다른 뇌로 전달된다. 또한 유능한 복제자의 필수요소인 정확한 복사와 복사량을 늘리고 오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복제자로서의 조건은 확보하고 있는 것이 된다. 특히 밈의 핵심은 남을 관찰함으로써 어떤 행동에 대해서 뭔가를 배우는‘모방’이다. 이 모방을 통해서 밈은 선택되고 복제되기 위해 경쟁하며, 그래서 밈은 자신을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만들어 내는데, 인간 진화역사에서 중요했던 것들인 성(性)이나 권력, 음식에 관한 단어나 문장, 관련 형상들을 통해 보다 많이 선택되어 복제되고, 사람들의 대화에 자주 오르내리는 흥미진진한 스캔들이나 끔찍한 뉴스, 유용한 지침, 위험 회피를 위한 조언과 같은 말들로 자신을 퍼뜨린다. 밈 역시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목적의식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자신이 많이 복제되어 오래 동안 살아남는 전략을 취할 뿐이다.

어쨌든 “인간은 진화 역사에서 최고의 전환점은 우리가 서로 모방하기 시작한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제2의 복제자 밈이 나서기 시작했으며, 이 밈이 인간의 뇌를 거대하게 만든 선택압으로 작동했고, 유전자의 선택환경과 그 변화방향에까지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의 인간은 유전자와 밈의 공진화에 의한 결과이며, 나아가 밈이 유전자의 고삐까지 틀어쥔 상황이라고 까지 주장한다.
저자‘수전 블랙모어’는 이러한 밈의 본질 하에 인간과 인간사회의 행동과 사고, 문화 전반에 걸친 해석으로 나간다. 그래서 이 저술은‘밈학’이라는 새로운 학제의 영역을 개척하는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을 비롯한 심리학, 과학철학, 신경과학, 사회학을 망라한 인간 행동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과 밈이론은 경쟁을 벌인다. 어떠한 해석과 이론이 더 유효한가, 그리고 보다 경제적이며 종합적이고 시험 가능한 예측들을 낳을 수 있는 것인지를 통해서 밈이란 제2복제자의 본성을 명료화하고 확증하고 있다. 일례로 인간의 짝짓기는“최고의 모방자와 결합하라!”라는, 즉 당시에 가장 선호되는 밈을 모방하는 남성과의 결합을 선호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 최고의 모방자라는 최신 유행하는 옷, 음악취향, 종교적 견해나 정치적 견해, 교육수준의 외형적 특성과 밈을 많이 퍼뜨리는 생활을 하는 작가나 예술가, 기자, 아나운서, 영화배우, TV탤런트, 가수, 그리고 유명 정치인(권력자)을 여성들이 선호하는 것을 보면 일견 타당한 논리로 이해된다. 결국 사람들은 상대의 밈복사, 사용, 확산 능력을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진화심리학과 같은 사회생물학으로서는 거의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인 인간의 금욕주의 행동이나, 산아제한, 입양과 같은 현상도 밈이론으로는 명쾌한 가설과 설명을 낳는다. 출산율 저하의 문제를 대다수의 사회이론은 경제적 문제, 또는 낙태의 용이성, 도덕성의 쇠락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보다 근원적인 요인은 여성의 높은 교육, 인쇄나 방송매체에 대한 접근성과 같이 여성의 소통 대상인의 증가로 인한, 다시말해 유전자보다는 밈에 시간을 많이 쏟는 여자들, 더 많이 모방되는 인물의 확산에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나아가서 모방되고 복제될 가능성이 높은 것들, 사람들의 말이나 전달수단을 통해서 빈번하고 많이 오르내리는 성이나 권력, 음식을 보면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강하게 살아남아 복제되고 확산되는지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다소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대 인간의 섹스가 아이를 번식하기 위해 하는 행위라는 생물학적 인식으로 과연 해석이 가능한가하면, 사실 누구도 다음세대에 유전자를 많이 남기겠다는 의지로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아기를 만들려고 야한 잡지”를 사고,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섹스라는 행위 그 자체의 즐거움 때문이라 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즉 성은 이미 밈에 장악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처럼 유전자라는 복제자가 밈이라는 제2의 복제자에게 목이 메달려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란 얘기가 된다.
이 밖에도 밈이 복제와 확산을 위해 선택한 술수로‘이타성의 술수’나‘진실성의 술수’의 본성을 통해 복사의 충실도와 다산성, 그리고 긴 수명의 유지를 위한 책략은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행동전략을 그대로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밈이 이들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다음절(多音節)언어로 그리고 언어의 기호인 문자를 다듬고 나아가 종이위의 기호인 책으로, 라디오로, TV로, 컴퓨터 저장장치로, 또한 확산의 속도와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철도, 도로, 배, 항공기와 같은 이동수단은 물론 인터넷이라는 월드와이드웹으로의 이행은 복제자로서의 밈의 성질을 표현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밈의 이러한 본성을 이처럼 규명하고 복제자로서 인식하는 실익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더할 수 없이 효과적인 도구라는 점이다. 어떤 현상이나 물체가 선택되고 오래 살아남을 것인가는 복사의 충실도, 확산의 용이성과 양적범위, 내구성과 같은 수명이 곧 성공적인 밈을 판단하는 자명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복제자들의 경쟁은 더 나은 복사 체계의 발명을 촉진하고 더 획기적인 모방능력을 지닌 것으로의 진행을 압박할 것이다. 또한 유전자의 운반자인 용기로서의 인간 개체는 밈의 운반자라는 동일한 의미의 부여가 가능한데, 소위 자유의지라는 망상에 입각한 자아의 실존이란 상상의 존재를 저자는 자아복합체(일명 셀프플렉스)라는 밈들의 덩어리로 규정하듯이 몸과 뇌와 밈들로 구성된 인간 존재로서의 인간 개체의 이해는 더 이상 독립적 마음이라는 허상을 지우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으로의 방향으로 구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정도로 인간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나면 단지 유전자와 밈의 집합체에 불과하여 인간 존재 의의에 대한 허무성과 비록‘데니얼 데닛’의 표현처럼‘무해한 망상’일망정 자아의 상실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제2의 복제자가 완전히 유전자를 압도하는 상황이란 밈(meme)이라는 모방전달자의 세상, 어쩌면 휴머노이드와 같은 로봇의 세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진정 존중한다면 저자의 역설적 말처럼 자기 복제에만 관심이 있는 이기적인 자아 복합체의 희생자이기를 그만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체가 없는 기만적인‘자아’에 휘둘림으로써 오늘의 인간들, 인간사회의 살육과 전쟁과 탐욕이 그칠 줄 모르는 것이고, 더구나 배아세포로부터의 줄기세포를 추출하고 인간복제의 자기 파괴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밈의 존재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인간의 진화와 현대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는 데 있어 밈이론은 분명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개념이다. 과연 제 2복제자로서의 밈이 인간규명의 훌륭한 이론으로 지지 받고, 진정한 학문으로서 정착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겠지만,‘수전 블랙모어’가 정의하고 그 가설의 가능성을 진일보시킨 저작이라는 의미에서 모방자의 진화론적 해석은 우리의 직관과 사고, 일상의 행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게 한다. 도킨스의 생물학적 진화의 걸작 『이기적 유전자』에 버금가는 인간의 문화적, 형이상학적 진화의 걸작으로 감히 이 저작은 손색이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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