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란 이 자전소설은 조지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본격적 작가의 인생을 시작한 1933년 발간된 그의 최초 작품이다. 오늘의 경제적 사회적 현상과는 사실 많은 괴리가 있지만 “가난 그 자체”를 쓰려했다는 작가의 선언처럼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 본질과 이를 만들어내는 사회, 사회의 왜곡되고 편협한 시선을 교정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탐지할 수 있다.

소설로 분류되고 있지만, 파리 빈민가의 하층민들과 섞여 그들의 힘겨운 일상과 호텔 접시닦이 등을 통한 생존을 위한 분투와 런던 구빈원을 들락거리며 걸인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의 본성을 통찰하는 일종의 밑바닥 삶에 대한 체험기이자 사회고발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여인숙 숙박비와 빵 값을 조달하기 위해서 일자리 찾아 헤매지만 청소부, 접시닦이와 같은 허드레 일도 주어지지 않는 일상이 지속되고, 급기야 굶주림과 하늘을 가린 냄새나고 불결하며 조잡한 안식처인 여인숙마저도 유지하기 힘든 날이 계속 된다.

“사람이 처음으로 가난에 부닥치게 되면 아주 묘해진다. ~ 무시무시하리라 생각했지만 그저 궁상맞고 진절머리가 날 따름이다. 처음에 발견하는 것이 특유의 구차스러움이다. 편법과 비굴한 쩨쩨함...”

그리곤 가난이 지닌 장점으로 가난은 미래를 말살해버리고, 마침내 밑바닥까지 왔다는 안도감이 주는 쾌감을 말하는데 이르면, 가난이 사람을 정상적으로 온건하게 살고자 하는 노력을 왜 포기하게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욕설이 난무하고 허리를 펼 수조차 없이 낮은 지하의 지저분한 호텔 주방에서의 접시닦이로 하루 17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리면 잠이“휴식이라기보다는 관능적인 무엇, 즉 탐닉과 같은 것”이라는 잠의 진가를 말하는 화자(話者)의 고통이 그대로 전달된다. 현대의 노동자란 사실 노예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임금에서 일전 한 푼 저축하기 불가능하고 겨우 연명할 정도이며 죽도록 아니 악착같이 일하지 않으면 그나마 기다리는 것이 헐벗은 굶주림 박에 없을 때 선택이란 자유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유일한 휴가는 해고당했을 뿐이라는 자조(自嘲)섞인 유머는 육체적 노동을 숭배하고 신성하다고 부추기는 맹목적 설교의 허위를 강타한다.

런던으로 건너와 전당포에 잡혀먹을 옷가지조차 없게 되자 부랑자 구호소를 전전하게 되는데, 부랑자가 재활 할 수 없도록 조장하는 당시의 구빈시스템을 고발하고, 나아가 물질주의에 침몰된 상실되어가는 인간 존엄성과 자선, 구빈을 말하는 사회주체의 위선, 가진 자들의 폭력적인 격리체계임을 지적하고 있다. 단지 적절한 생계비를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경멸 받는 부랑자들, 결국 능력이니, 효율성이니 하며 돈이 미덕을 가늠하는 위대한 척도가 되어 이 기준에 맞지 않기에 멸시당하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란 것이며, 만일 구걸로 돈을 많이 벌어들인다면 존경 받는 직업이 될 것이라고 자본주의 물질 지상의 이념에 조소를 보내기도 한다. 예배를 조건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교회의 위선적인 자선이 그네들에게 얼마나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지, 생활방식의 결과를 원인으로 호도하여 편협한 잣대를 들이대는 무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은 타고난 악덕이 아니라 바로 영양실조였다.”라는 사회 편견에 대한 냉소적 시정의 이 한마디는 이 작품의 전체를 설명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비록 한 세기라는 격세지감이 있지만 소외받는 하층민과 빈곤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케 하여 사회 공동의 일원으로서 우리들의 자세와 태도 교정에 소박한 일조를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930년대의 영국과 프랑스 사회 서민들의 일상을 보는 사료적 재미뿐만 아니라, 오웰의 이후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험과 시선을 만끽 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엿보는 기회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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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소설집에는 예나 지금이나 유토피아로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실상을 우화적으로 비판한, 오웰의 작가로서의 지위를 공고하게 해준 <동물농장>이 수록되어 있는데, 봉사의 즐거움과 노동의 존엄성에 대한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기만을 하는 지배자의 탐욕이나, 당시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권력투쟁과 사회주의의 폭력과 위선, 그리고 실패에 대한 엄중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볼쉐비키의 멘쉐비키에 대한 잔혹한 처단이나 인간 해방을 부르짖는 이면의 암울한 실상이‘수퇘지 나폴레옹’이란 독재자를 통해 비유적으로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 “누가 돼지인지 누가 사람인지 구별하기란 이미 불가능 했다.”고 맺는 이 소설은 인간이란 자기 자신 이외에는 다른 어떤 동물의 이익을 위해서도 봉사하지 않는다는 개인 이기주의 본성에 대한 신랄한 반성의 토대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고전은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그 재미를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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