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의의 영어표현인 'Justice' 의 사전적 의미는 공평성, 공정성으로 해석되고, 우리말 사전은“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올바른 도리’나, ‘공정한 도리’, ‘공평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대체 공정하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에 이르면 그만 모호해지고, 수많은 견해들이 갈등한다.

이 저작에는 우리들이 좀처럼 결정을 할 수 없는 질문들이 예시되고 있다. 남대서양 한가운데 구명보트에 표류하는 4인이 있다. 그러나 병약한 17살 소년을 죽여서 먹으면 나머지 세 사람이 살 수 있다. 그래서 살해하여 식용하면서 연명했고 드디어 구조되어 생환했다. 과연 이 행위는 정의로운가? 우린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여기서‘제레미 벤담’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功利主義)이론을 통해 한 명의 고통을 통해 세 명의 행복이 달성 되었으니 정당하다고 주장해보자. 정말 그럴까? 그러나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의 기쁨을 고려한다 해도 이러한 죽음을 허용할 경우 사회전체의 행복이 증가할까 하는 질문에 이르면 공리주의적 판단을 하더라도 결코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지는 못하다. 나아가서 도덕 문제를 모조리 쾌락과 고통이라는 하나의 저울로 측정하려는 공리주의가 빠뜨리고 있는 것이 분명 있지 않을까?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의지에 반하는 죽음 즉, 개인의 권리를 소홀히 취급하는 자유의 권리와 충돌하고 있지 않은가? 좀체 정의를 획일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가능치 않을 것 같다.

저자는 정의를 공리주의자들의 행복을 비롯해서 자유와 미덕이라는 세 가지 이상(理想)을 통해 고민하고 있다. 한 가지 문제에 공리주의적 관점, 자유지상주의자의 관점, 칸트의‘순수실천이성’과 정언명령에 의해서, 그리고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이라는 원초적 평등에 기초한 차등원칙, 아리스토텔레스의 텔로스(telos:목적,본질)와 영광이라는 삶의 목적론적 사고에 의한 도덕적 미덕으로서의 판단이 어떻게 개인과 인간사회의 정의에 관여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일례로서 우리의 헌법은 적정 연령에 이른 남성을 징집대상으로 하고 군에 입대하여 국방의 의무를 부담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만일‘대리복무’제도를 헌법에 도입하여, 즉 적정의 댓가를 지불하고 누군가를 대신하여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는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부당하다면 왜 부당하다고 하는 것인가? 또한 대리복무가 아니라 납세자들이 세금을 조금 더 부담하여 아예‘자원병제’를 도입하여 희망자가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하여 복무케 하는 것은 어떨까? 이는 대리복무보다 더 도덕적인가? 자유주의자들은 징병제는 심각하게 개인의 자유, 즉 선택을 제한하는 노예제라 비판할 것이고, 공리주의자는 서로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거래를 금지하여 전체의 행복을 감소시킨다고 비판할 것이다. 이들 자유주의자와 공리주의자의 비판은 옳은 이야기일까? 만약 오류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자원병제나 대리복무제는 애초에 공정성의 문제를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청년실업이 상습화되어 가난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것 아닌가. 결국 강제의 형태만 다를 뿐 사실상 자원군은 경제적 어려움이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기회의 균등이 적절하지 못하며, 자유로운 의사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군 복무를 상품 취급해 모든 시민은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미덕과 공동선을 파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의무를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급기야 댓가를 받고 임신을 하는 일과 같이 임신을 서비스로, 아이를 생산물로 취급하여 거래하는 계약도 있다. 세상에는 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있을까 할 정도로 인간을 상품화하고 거래의 대상으로 하기에 이르고 있다. 이는 정의로운 행위인가? 아기나 임신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에서 과연 가치는 어떻게 평가하는 것인가? 존중 받아야 할 인간이 사용가치로 인식되는 것과 같이 일반적 생산을 지배하는 준거로 대체 할 수 있는 것일까?

칸트는 이와 같이 우연히 생기는 욕구에서 도덕을 끌어내는 것은 도덕을 생각하는 방식부터 그르친다고 이들 자유지상주의와 공리주의를 비판한다. “쾌락(편리함, 위험의 면제 등등)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전체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보는 것처럼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도덕적 일 수 없다는 것으로 인간은 그 자체의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의미를 강조한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에 내 몰리지 않고 이성이 우리의 의지를 통치하게 할 때 우리는 자율적 존재이며 선택 할 능력이 비로소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순수실천이성이 참여 할 때 도덕법을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적절한 기회균등이나 공정한 상태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존 롤스’의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는 원초적 평등한 상황을 말하는 평등주의, 즉 롤스가 주장하는 차등원칙은 자율과 호혜에 대한 도덕적 평가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출생이라는 우연을 기준으로 소득, 재산, 기회, 권력과 같은 도덕적 임의성은 불공평을 조장하고, 더구나 혜택 받은 가정환경의 산물로서 우연의 영향을 받는다면 노력의 미덕도 인정치 않는다. 이러한 도덕적 임의성을 배제하고 엄격한 평등을 추구하여, 사회의 기본 구조를 조정해 우연한 차이가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차등원칙의 주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설명하는 고귀한 도덕적 배경이 되어준다.

한편‘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에 입각한 텔로스와 영광을 통한 정의를 통하여 시민의 도덕적 미덕을 강조하고, 인간존재를 서사의 개념으로 파악한‘매킨타이어’를 통해 “도덕적 고민은 내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이라며, 우리에게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그리고 사회계약의 결과로도 돌릴 수 없는 도덕적 의무를 설명한다.

이것은 역사적 부당행위에 대해 집단적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개인은 단지 자신의 선택과 행동만 책임지면 그만이라고 한다면, 즉 자신이 출생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사과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해외에서 추한 한국인을 보았을 경우 우린 수치심을 느끼고,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월드컵에서 승리하면 우린 자부심을 느끼는데, 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도덕 감정으로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한데 묶여 있으며, 우리를 도덕적 행위자로 만드는 서사에 연관된 사람들임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즉 이러한‘연대의식’은 자연적 의무나 합의를 필요로 하는 자발적 의무를 넘어서는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대나 가족에 대한 충성(직)이 도덕과 충돌할 때가 있다. 내 형제가 악질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 정당한가, 아니면 그의 도피를 돕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질문처럼 공동선과 개인의 연대의식은 어느 것이 정의라고 결정하기가 버거운 상황이 있다. 도덕적 개인주의라고 비난하여야 하는가? 과연 우린 연대의식 없이 삶을 살아 갈 수 있는가?  연대는 우리에게 도덕적 부담을 안겨주기도 하며, 또한 도덕적 힘이 필요하기도 하다. 도덕보다 가족의 연대가 더 무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린 놀라기도 하지만 정의를‘공적 이성’에만 호소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있다.

이처럼 도덕적 판단이나 정의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하는 요소는 실로 다양하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관념에 입각하여 판이한 정의를 주장할 수 있다. 자유와 행복, 공동체로부터 영광과 인정을 받을 가치와 같은 미덕을 생각하기도 해야 하며, 목적, 즉 텔로스를 묻기도 해봐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행복을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 만들 수도 없으며,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논의하는 문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생각의 다양성들 중에서, 오늘의 현대사회에서 판단의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리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텔로스, 존 롤스의 차등원칙, 칸트의 순수실천이성, 자유(지상)주의이념을 중심으로 적절한 사례를 통한 비판과 반박의 이론으로 정의의 이상에 한 발 가까이 가게 해주는 이 저작은 도덕철학, 도덕정치학의 진수이다. 특히 우리를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일상의 문제들에서 보다 정의롭고 좋은 삶에 대한 미덕의 실현에 기여하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도덕 교과서라 할 수도 있다. 풍부하고 정교한 지식과 재치 넘치는 서술로 도덕철학을 이렇게 흥미롭게 읽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가히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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