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로 읽는 서양철학사
호리카와 데쓰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철학을 시작으로 16세기 이후의 근현대 사상가들의 삶의 배경과 그들 사상의 핵심적 사유를 개관(槪觀)한 저술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머리말에서“철학자들의 사생활을 들여다 본 책”이라 하고 있지만, 사적(私的)인 야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네들 철학의 본질을 설명하고 오늘의 시각을 담은 비판까지 더해진 현대사상 미니 사전이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 같다.

다만, 저자의 시선이 시장 자유주의적이고 미국의 실용주의 노선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어, 알튀세르, 라캉, 그람시, 알도르노, 들뢰즈, 푸코, 부르디외 등 현대 비판철학자들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존재치 않다는 아쉬움과 도덕적 상대주의까지 더해져 불편함을 떨치기 수월치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잘 알려진 철학자들. 데카르트, 로크, 흄, 스피노자로부터 니체, 헤겔, 칸트, 하이데거에 이르는 근대 계몽주의 철학의 사상적 흐름을 흥미로운 일화와 쉬운 일상적 문장으로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치 아니 할 수 없다.

특히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과 루소의 그것을 설명하는 것과 같이 철학자들의 사상적 핵심을 관련 철학자들의 사상과 비교하여 그 차이점을 명료하게 인식하게 해주는 가면, 홉스의‘자연상태’에 대한 이해나, ‘경험론’과 ‘합리론’의 극명한 배경적 해석 등 잘 이해되지 않던 철학적 용어의 정의나 이론의 중심사상을 재밌는 소설작품처럼 수용케 하여주는 것은 이 저작의 뛰어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철학의 현실과의 괴리를 없애주려는 듯 각각의 철학이론에 대한 회의나 문제의 제기에 있어 시사성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화두를 통해 그 이해의 접근을 더욱 편리하게 도모하기도 한다.‘사회계약론’에 대한 한 예로서, 국가가 개인에게 전쟁에 참여하여 생명을 요구할 경우, 개인은 그 계약을 철회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같다. 존 로크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리고 흄은? 루소는 무어라 했을까? 개인의‘자유의지’를 주장한 철학자들과‘국가의 설립은 폭력’이라고 하는‘원시계약’을 주장한 이들은 분명 다른 대답을 들려준다. 이처럼 외형적으로는 동일한 이론이지만 그 이론에는 각기 다른 철학적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더 할 수 없이 알기 쉽게 설명하여 준다.

볼테르가 루소의 가식과 위선을 고발하는 이야기,  디-드-로가 볼테르의 인간 기피적 칩거생활에 대한 조롱의 편지, 루 살로메와 니체, 릴케 등등의 염문, 샤르트르와 보봐르의 계약결혼 등 숨겨진 사생활 이야기도 또 다른 대가들의 인생기로 독서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러한 이 저작의 장점들 중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이들 철학자들의 대표적 저술이외에 흔히 알려지지 않은‘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칸트’의 <인간학> 과 같은 저술들에 대한 소개를 들 수 있다. “결혼한 지 일주일만 지나면 자신의 눈을 되찾는다.” “연애할 때 질투는 약이 되지만 결혼한 다음에는 독초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을 칸트가 하였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머와 재치 넘치는 새로운 철학자를 발견하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의미 따위는 필요 없다. 신 따위도 필요 없다. 신이 존재하든 않든, 중요한 것은 신이 없어야만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초인이라고 한다.”라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에 해설이나,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이성적이다.”라는 ‘헤겔’의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사상의 배경, 합리적 자본주의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절묘한 해석처럼 엑기스만 기막히게 정리한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 되겠다. 
 

이와 같은 16~19세기 오늘에 이르는 근현대 사상의 조류를 알차게 개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20세기 이후의 철학에 있어서는 많은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단지 프로이트와 하이데거, 그리고 사르트르에 대한 두루뭉술한 에피소드, 편협한 과학사고와 실용주의 노선이 빚어내는 왜곡과 편견정도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서투르고 일천한 지식으로,‘리처드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에 대해서는 섹스기계론이라고 일방적이고 지극히 무지한 편견을 들이대는 식이다. 더구나 오늘의 사상적 조망에 이르러서는 “일단 정책을, 원리는 그다음에!”라는‘리처드 로티’의 실용주의 사상에 각성되어 특정 민족의 대량 학살과 같은 인권문제를 임신중절의 문제와 동일시하며 도적적상대주의론을 펴기도 한다. 이해의 득실로 볼 때 인종 학살도 선이라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를 외치며, 역사의 종언을 외친‘프랜시스 후쿠야마’같은 근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편협함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은 이 저작의 큰 결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고 지혜롭게 정리된 근현대 서양철학의 개관서로서 읽기에 수월한 저작임에 분명하다. 단, 경계 없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서투른 과학 지식, 도덕적 상대주의와 실용주의 등의 극히 주관적 시선이 현대사상을 잠식하고 있는 점은 보편적 철학소개서로 읽히는 것을 방해한다. 아마 이 저작의 오점이라 하여야 하겠다. 괜찮은 저술임에도 청소년에 권장하기가 선뜻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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