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절한 균형 ㅣ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975년 전후 인도 총리 ‘인디라 간디’가 자행한 국가적 폭력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국가의 구조는 엉성하고, 그 권력이 미치는 범위는 불확실하던 사회, 자본의 축적은 오직 뇌물과 횡령, 부정만으로 가능한 사회, 탐욕스럽고 강한 권력을 확보하기위해서 폭력의 독점적 소유를 하고 있던 국가를 장악하고 그 하수인인 경찰과 군대를 활용하는 사회, 그래서 “정의의 살인범들이 성스러운 절차를 우습게 만들고, 차별 없는 정의를 가짜로 만들어서 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에게 팔고 있는”사회, 바로 그러한 세상에서 신음하던 인민들의 처절한 이야기다.
이 작품을 손에 들고는 몇 번이고 내려놓았다 다시 들곤 하는 일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부패한 국가의 만성적 취약성으로 인간의 존엄성이란 아예 말살된 세상, 지배 권력과 이에 아첨하는 자본가세력들, 지방의 토호들까지 그 더러운 사악함으로 인민을 학대하고 착취하며, 살인까지 마다않는 행태의 묘사들은 허구의 소설임에도 지속하여 치가 떨리는 참담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게 하였다. 마치 우리의 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모습과 한 치의 차이도 없어, 그 험악하고 고된 시간을 고스란히 살아온 나로서는 소설 속 하나 하나의 사건들마다 예사로이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많이 읽힌 ‘나렌드라 자다브’의『신도 버린 사람들』을 통해서 인도의 비인간적인 계급제인 카스트제도와 아웃 카스트로서 최하층민인‘불가촉천민’의 실상은 잘 알려져 있다. 작품은 무두쟁이 불가촉천민인‘차마르’에서 재봉사가 된 두 남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이시바’와 그의 조카 ‘옴프라카시’의 가족사는 지배계급인 브라만의 한 토호로부터 정당한 선거권을 요구하다 일가족이 살해당하는 비극적 상황에 이르고, 이를 피한 두 사람은 도시로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한편‘디나’라는 여성은 오지에서의 의료 활동 중 의사인 아버지가 사망하자 오빠의 이기심에 눌려 가까스로 학업을 마치지만 대학교의 진학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게 되지만 불의의 고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만다. 또한 생활비를 위한 방편으로 디나는 고교동창생의 아들인 대학생‘마넥’을 하숙생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비열한 시대의 참혹한 비극이 펼쳐진다.
“소음에 사람들에, 살 데도 없고 물도 귀하고 온 천지에 쓰레기”인 도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에서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한 인구의 도시집중의 폐해를 엿보게 한다. 생존을 위한 사람들의 도시를 향한 희망 앞에는 끔찍한 판자촌, 노점들, 빈민굴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렵사리 마주한 디나와 두 재봉사의 삶을 위한 타협은 단지 기다리는 고통의 연기에 불과하기만 하다. 부패한 권력은 권력의 강화와 축재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인민을 규율하며, 질서를 강제한다. 그리곤 국가 사랑 이라는 권력범위의 확정을 위한 수단으로서 통상적인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종용하는 것까지 우리의 70년대 긴급조치법과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강철 같은 의지! 근면! 이것만 있으면 우리는 살 수 있다.라는 구호와 거대한 총리의 초상화, 강제 동원된 군중집회와 같은 정치쇼는 그야말로 마치 엊그제 보았던 것처럼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다.
하루벌이로 연명하는 도시 하층민을 경찰력과 야만적인 자본가들이 합세하여 공사판에 가두어 놓곤 노예처럼 부리는가하면, 이들의 주거지를 불법이라하여 도시미관을 개선한다고 불도저로 밀어버려 하루아침에 노숙자로, 거리의 부랑자로, 거지로 삶을 바꿔버리는 국가의 폭력은 참담함 그 자체가 된다.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박탈당한 삼촌과 조카의 시련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다양한 국가의 폭력에 시달린다. 주거지의 상실, 노숙자로서의 생활과 공사장 노예로, 마침내는 결혼을 앞둔 청년이 국가의 권력이 개인 성생활에까지 간섭하는 이른바 가족계획이라는 웃지 못 할 폭력에 의해 강제 거세당하고, 비위생적 시술로 다리까지 절단케 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른다.
당신들의 이야기는 “현대판 마하바라트(註:인도 대서사시)로 책을 낼 수 있겠소.”라 할 정도로 이들의 삶은 하루도 정체되지 못 할 정도로 처참하다.
“곤봉처럼 위협적인 감탄사가 붙은 규율의 시대! 라는 구호”만 난무하고, “살해된 정의의 시체가 누워 있는 타락한 정의의 사원”이자, “원한과 복수를 위한 비열한 무대, 비극과 희극이 공연되는 하잘것없는 장소”로 전락한 법원 등 국가는 온통 썩는 악취로 진동하지만, 그네들은 외려 실종된 정의를 되찾고, 인권과 민주를 외치며 저항하는 시민운동가‘자야 프라카시 나라얀(Jaya Prakash Narayan)’을 가두고 실업통계를 거들먹거리며 2억 명의 인구가 과잉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고, 아무런 가능성도 없고 단지 고통과 슬픔만 흐른다.
이성을 잃은 권력, 깡패들이 통치하는 시대, 그들에게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 충분한 희망이 있긴 있는 것일까? 하고 내내 의문을 저버리지 못하게 한다. 디나의 연민과 이해가 만들어내는 사람들 간의 잠간의 행복과 평화, 그리고 사랑, 그것을 균형이라 해야 할까? 야만적인 인간 본성의 벌거벗은 본질만 남아 헐떡대는, 차마 눈이 글자를 계속해서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다.
다행스럽게도 근자에 접했던 ‘소수자의 역사’에 관한 『역사의 공간』이라는 저작과 『세계체제분석』이라는 저작 중 국가체제에 관한 독서는 이 작품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즉 역사의 이성이 볼 수 없는 무능력 지대에 놓인 보이지 않던 인민들의 역사를 가시화하여 정체되고 유지에 급급한 현실을 일깨우려는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국가권력의 다양한 폭력행위와 수단, 인민의 고통과 슬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이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을 접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진정 생명력 넘치는 21세기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금껏 당신의 인생에서 감명 깊은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항상 망설여왔다. 이제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A Fine Balance)』은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