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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공간 - 소수성, 타자성, 외부성의 사건적 사유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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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처녀지대로 되돌려 놓는다.  지금까지의 역사기술 방식이나 역사관을 전복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선형적 시간관념에 의해 일렬로 배열되어 필연성과 객관성을 갖는 역사법칙이 존재한다는 선형적 위계화의 역사를 비판한다. 여기에는 역사의 속성인 역사의 주체를 통해 쓰이고 가동되는 역사적 주체의 단일성과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통합하려는 욕망, 즉 보편주의로 구성하는 단수의 역사는 소수의 역사들을 지우고 소수자의 삶을 망각의 어둠속에 밀어 넣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어떤 요소들이 동조하여 하나의 집합적 리듬을 만들어낼 때 그 리듬과 더불어 탄생”하는 것으로서의 ‘시간’개념에 대한 대결이다. 즉, 시간적인 동조의 요구, 시간적인 통제와 훈육을 통해 상이한 리듬의 신체를 하나의 동일한 것으로 통일하려는 힘, 그래서 자신의 시간 속에 타자의 리듬을 강제로 포섭하는 것으로서의 시간에 대한 대항만이 역사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견해이다.

즉 주체성을 장악한 자가 서로 다른 복수의 리듬을 하나의 척도적 중심으로 동일화하고 통합하여 자신만의 역사적 계열화의 선을 만들어내기에, “복수의 리듬들의 차이를 새로운 차이의 생성자로써 긍정하는 역사적 계열화의 선”으로 대항함으로써만 단일성, 통일성에 포함되지 못했던 지워지고 배제된 역사의 기억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저술은 역사가 담을 수 없는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지워버릴 수도 없는 사건이란 의미에서 ‘역사적 이성’의 무능력 지대에 놓인 것들을 이야기하는 역사, 바로 그러한 역사담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소수자들이 역사 속에서 올바른 가치를 인정받고 제대로 된 지위를 할당받게 만드는 단순한 양심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역사화 될 수 없는 사건을 역사로부터 돌발하게하고 이로써 역사 안에서 다른 돌발의 지점들이 만들어지도록 촉발하는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소수자의 역사’에 대한 정의는 “그때그때마다 지배적인 척도에 반하여, 척도적인 것과 대결하며 새로운 것을 창안하려는 성분”으로서의 ‘진보’와 결합하여, 어떤 세계로 하여금 내부에 안주할 수 없도록 그 내부를 끊임없이 동요시키고 벡터를 작동시켜 지배적인 것, 주류적인 것, 익숙한 것들을 전복하거나 변형하는 힘이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전태일 분신 사건’이나, 민주화운동이라는 주류의 역사에 포함되기 전에 불리던 ‘광주사태’그리고 어떤 민족의 이름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저항의 지대를 상징하는‘재일(在日; 자이니치)’은 ‘거대한 반역사적 돌발’로서 다름 아닌 소수자의 역사인 것이다.

바로 이 저술은 소수자의 역사, 또한 새로운 리듬으로서 계열화 된 선을 잇는 역사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근대와 비근대의 단선이 가져온 비시간적 세계와 시간적 세계를 이원화로 인해 근대이전의 한국사회가 가시화할 수 있었던 것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사건으로서‘세시풍속’의 미신으로서의 퇴출에 대한 고찰이나, 근대적 시간관이 문명화와 진보란 이름으로 삶의 깊숙한 곳으로 침투하여 시간 감각이 선험적 형식으로 대체되어 이질적인 삶의 요소들을 하나의 시간적 좌표계 안에서 통일하고 통합하여 구속하는 현상, 그리고 근대적 역사개념의 출현이 가져온 민족과 국민이라는 이중적인 역사적 주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통찰이나, 생명정치학으로서 작동한 가족계획이라는 국가적 관리전략 즉 권력기술에 대한 새로운 욕망의 성찰, 국가의 군대가 자국 국민들을 향해 총을 쏘며 학살한 비극적 사건, 대중과 감정의 정치학을 이야기하는 현 정권의 몰염치와 무지와 천박함에 대한 비평, ‘카피 레프트 운동’을 포함하는 FTA가 가져올 생명체 고유의 순환이득을 배타적 잉여가치로 변형시켜 자본의 소유물로 만드는 사태에 대한 경고, 이주자들을 착취하는 일반주민들의 경찰시선을 이용한 폭력 등이 다뤄지고 있다.

볼 수 없었던, 아니 보이지 않았던 역사들을 가시화한 이들 역사의 기술 만으로서도 이 저술은 탁월하고 독보적인 지위를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역사분석 도구로서 ‘개념적 배치’라고 하는 “하나의 단어가 다른 단어들을 구성 요소로 삼으며 일정한 의미를 체계적으로 형성하는 것”임을 통해, 신문 -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 에 출현한 용어의 반복적인 계열화의 양상으로 역사관련 용어들의 의미변화를 추적한 근대영토의 개념이나, 지나간 단순한 사건들의 기록이라는‘사기(史記)’가 아니라 근대적 역사개념의 출현, 그리고 민족과 국가 개념에 이르는 역사적 인식의 도출은 앞으로 우리들이 역사를 성찰하는 방법론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중대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이끈 주제가 있는데, 제국주의 일본이 ‘동아협동체’, 또는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민족적 경계를 넘어 연대하자는 구호에 대해 “과연 식민지 인민은 어떻게 말하는가?”하는 것에 대한 방법론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억압받는 소수자가 권력을 손에 쥔 다수자에게 어떻게 항변할 수 있는가와 어떤 의미에선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특히 김사량의 소설 <덤불 헤치기>, 한설야의 소설<대륙>의 표현방식과 주제를 통해‘내파(implosion)전략’, ‘횡단 전략’, 동일시와 모방의 전략에 대한 설명은 이해의 체화에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저자의 집필 기대처럼 범람하는 흥미중심의 대중 역사서에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역사, 서발턴(subaltern)의 역사, 다수자들이 잊고 있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고 촉발하게 하는 역사서로 읽혀진다. 거대한 폭력의 힘에 의해 기억의 표면에서 지워진 것들, 국민적 기억의 망각에 숨겨진 것들, 그리고 역사화를 둘러싼 힘과의 대립 양상을 급진적 양식에 담아 전달하고 있다.

역사의 이성이 무능력을 나타내는 지대에 갇혀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한편은 역사의 바깥으로 불러내는 역사, 돌발지점에서 만나는 모든 소수자들의 역사가 열정적으로 기술되어, 용기요, 반항이요, 자유요, 새로움이며, 다양성인 클리나멘(clinamen)으로서 끊임없이 해체되고 다시 조성되는 영원도 없고 절대도 없는 정신으로 충만한 저작이며, 우리 자신의 삶을 외부로 잡아끄는, 즉 안일한 내부의 이탈을 촉발시킴으로써 새로운 민중의 도래를 요구하는 저술이다. 뜨고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우리의 눈을 비로소 開眼시켜주는 근현대사의 걸작이다.

[註]서발턴(subaltern): ‘그람시’가  감옥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지칭하는 용어로 대신 사용하였으며, 이탈리아 남부 시골농민들의 비조직적 집단으로서, 헤게모니에 종속되어 비통일적이며 결과적으로 수동적으로 위치될 수밖에 없는 집단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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