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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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중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21개의 키워드를 통해 오늘의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읽어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진중권은 오늘의 이 사회에‘디지털 생활 세계’라는 특징적 표현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Being Digital의 著者)가 정의하는 디지털사회의 특성인 탈정보화, 개인화, 다양한 감각 충족의 환경을 부여하는 호환성과 유연성의 증대, 문화변형의 극심화, 혼성문화의 발달과 같은 크로스오버 형태 등에 기인한 듯하다.

그래서 표제조차 뇌 공학자 정재승과 미학자 진중권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크로스(Cross)이기까지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인식이 실질적 혼합을 이루어내는 것은 아니고, 다만 각자의 시선에서 동일한 제재를 성찰하여 독자에게 그 믹스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생활환경을 에워싸고 있는 현상들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선정된 것들의 일면을 보면 머리가 끄덕여 질 만 한 것들이다. 소비사회의 대표적 심볼(Symbol)이 되다시피 한 스타벅스, 프라다, 생수에서부터 점점 개인화되고 나르시시즘의 다른 표현인 성형(쌍꺼풀)수술, 몰래카메라, 셀카, 그리고 디지털 문화의 구루(Guru) 스티브잡스와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제프리 쇼, 나아가 복합형 가상현실의 세계인 세컨드 라이프 등등 디지털사회의 속성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들 어휘들은 우리들의 사회문화적 습속의 층위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

오늘을 상징하는 이들 21개의 핵심단어들 모두에 두 편의 단상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과학자의 시선에서, 미학자의 시선에서 읽힌 사회 현상들 모두에 공감하기에는 미흡한 요소들이 분명 존재한다. 때론 진중권의 읽기에 더욱 동의하기도 하고, 정재승의 생각과 지식에서 새로운 발상을 엿보기도 하지만 공히 다양한 장르의 문화들이 서로 복합하고 능동적으로 변형되어가는 정보와 대중취향의 흐름, 창의적 사고가 기초가 되는 오늘의 현실을 높은 수준의 통찰력으로 해독하고 비평한 글들이라는 점에 공감케 된다.

내게 있어서 이러한 단상들 중에 특히 재미있는 시선으로 다가온 부분은‘욕망을 찍은 사진관’으로서의‘셀카’에 대한 부분과, ‘남성 옆의 여성’이기를 거부한 ‘안젤리나 졸리’편과, ‘개그 콘서트’, 사이버 민주주의 실현장(場)인‘위키피디아’, “예술에는 근원적 시작이 있다”고 하는 ‘파울 클레’편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방문이 닫힌 딸아이의 방에서 찰칵 찰칵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아이가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찍어대는 모습이 기이하게만 여겨졌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찍어댄 모습이 모두 저장되는 것이 아니고 이내 지워져 버린다. 정확하게 자신의 모습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자신이 가장 예쁘게 나오는 사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임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바로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은 정확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가장 예쁘게 변형되고 조작된 ‘셀카만의 이미지’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고,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현대인의 ‘나르시시즘적 욕망의 구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진중권의 독법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또한 선함과 악함이라는 양극단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내재하고 있는 듯한 최고의 여배우‘안젤리나’로부터‘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善美)’, 즉 윤리와 미학의 통일, 즉 아름다운 외모와 유덕한 행위의 통합이란 이해를 갖게 되면서 새로운 경지를 이해케되기도 한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표현, “도덕을 우습게 보는 개별자의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더 높은 사회적 윤리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데 그 요체가 있다.”는 설명은 그대로 탁월한 미학강의가 된다.

한편, 사회 비평적 측면에서 다루어지는‘9시 뉴스’와 ‘개그 콘서트’에서는 웃음에 대한 과학적 신호, 새로이 도래한 구술문화의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한 스탠딩코미디의 특성으로서 ‘이미지의 전복’, ‘뉘앙스의 일탈’‘의미의 전환’과 같은 특성을 해독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쏟아내는 말장난에는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사회적 소수에 대한 무차별적 상해에 대한 고려도 없는 무지함이나, “교양과 반성이 없는 쓸데없이 비열해진”개그에 예리한 비평의 독설도 주저하지 않는 자신감이 있다. 특히 천편일률적으로 9시 땡 하면 시작되는 뉴스의 집단최면을 거는 정보왜곡의 장으로 변질된 현실은 MBC뉴스의 ‘클로징 멘트’를 주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시적인 것은 우주전체에 그저 고립된 예에 불과하다.”는 공감각적 현대미술의 거장,‘파울클레’의 말처럼 삶의 내재적 충일(充溢)성 보다는 항상 허기질 수밖에 없는 외재적이고 성공 지향적이라는 불만의 생태계를 마냥 쫓는 현대인들의 어리석음과 이를 부와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계층들이 무한히 창출해내는 과대소비사회의 왜곡된 삶의 진정성을 파노라마처럼 보게 된다. 모 광고회사의 선전처럼 따뜻한 디지털세상은 가능한 것일까?

진중권이 우스개로 흘리는 “공동체에 원만히 입성하려면 칼의 세리머니가 필요하다.”는 성형사회, “한국의 여성은 눈두덩에 할레를 받는다.”는 표현은 정신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어딘지도 모르고 떠도는 우리사회의 일면이기에 가뜩이나 움츠려든 가슴이 더욱 시리게 느껴진다. 리이프로그시스템(Life-log system),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를 즐기는 시대에 성큼 들어선 21세기 디지털 사회, 우리들, 우리사회에 대한 안목을 보다 넓고 깊이 있게 성찰 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인들로 거듭 나야 하지 않을까.
저자들의 말처럼 이 저술은 디지털 생활세계의 현상학을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그래서 진정한 크로스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중심을 잃고 절룩거리는 우리 사회에 이 저술을 초석으로 하여 더욱 심화되고 진전된 사회통합, 학문적 통섭, 지성이 협력하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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