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면 ㅣ 결정서가 1
이승우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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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8년 동안 감추어왔던 옛날 일을 아주 힘들게 꺼내는 동안 뛰엄뛰엄 떨어져 앉은 10여 명의 회원들은 말없이 그를 주시했다.” - 「뒷면」, P9

 

소설 「뒷면」은 한 사람이 오랫동안 감추어온 과거를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는 말의 내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조건과 맥락이 개입한다. 말하는 이의 의도와 듣는 이의 기대, 발화가 이루어지는 상황과 관계의 미묘한 차이가 말의 의미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다소 장황할 만큼 언어의 전달 과정에 개입하는 조건들을 해부한다. 그러나 이 서술은 단순히 말의 불완전한 전달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가, 고백의 진실은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준비에 가까워 보인다.

 

주인공 추는 쌍둥이 형제의 동생이다. 형은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며 가족의 걱정을 사는 인물인 반면, 추는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꾸려가는 사람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동생에게 형을 대신해 공무원 시험을 치러줄 것을 요구한다. “그냥 두면 그 인생이 어떻게 될지 뻔한데, 우리가 가족인데,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냐. (...) 술 먹고 쌈질이나 하고 다니는 형을 보면 네 맘도 편하지 않을 거 아니냐” 라며, 형의 인생을 염려하는 가족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부탁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추에게 그것은 부탁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라는 압박이다. “형의 미래는 걱정하면서 자신의 미래는 걱정 안 해요?”라는 추의 항변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고유한 삶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그는 금지된 일이며 범죄 행위이기도 하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요구를 거절한다.

 

추가 <18년 동안 감추어온 이 이야기>를 고백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온라인 커뮤니티 <뒷면>이 은밀히 하는 대면 고백 모임이다. 그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불확실한 미래에 지쳐 있던 어느 날, <누구나 완벽해 보이기를 원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뒷면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커뮤니티의 슬로건을 발견한다. 그곳의 익명 게시판 <수거함>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와 잘못, 고민과 수치스러운 경험을 털어놓은 글들이 넘쳐난다. 추는 그 사연들을 읽으며 묘한 쾌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경험하고, 점차 더 자극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헤비유저가 된다.

 

그러나 익명의 고백이 제공하는 쾌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실체, 익명의 가면 뒤에 가려진 사람의 표정과 상태가 궁금해진 것이다. 결국 그는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고 고백합니다. 진짜 고백을 경험하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진짜 고백을 경험하라는 초대를 받아 얼굴을 마주하는 모임에 참석한다. 여기서 소설은 기억과 고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1. <진짜 고백>이란 무엇인가?

 

추는 18년 동안 감추어온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고 있으므로 그것이 충분히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다르게 판단한다. 고백의 진정성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고통의 크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기준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고백하는 순간 말하는 사람에게 있던 발화의 주도권은 듣는 사람에게 넘어간다. 추는 자신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침묵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그들이 기대하는 고백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의 이야기는 형의 죽음과 어머니의 원망으로 이어진다. 자동차 사고로 형이 죽자 어머니는 그 죽음을 단순한 사고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식을 제대로 보듬지 못한 자신의 죄책감을 형의 죽음에 투사하고, 나아가 “형의 인생이 꼬인 것이 추 때문”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라고 욕하며, 그 책임을 추에게 돌린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청중은 이야기의 빈틈을 발견한다. 추는 형을 대신해 공무원 시험을 치렀는지, 아니면 끝내 거절했는지를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청중은 바로 그 부분을 추궁한다. 고백에 빠진 내용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감추고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며, 그렇다면 진짜 고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추의 이야기는 결국 진짜 고백이 아니라 <가짜 고백에 대한 자백>으로 판정되고, 그는 모임에서 퇴출된다.

 

여기서 드러내는 것은 고백의 진실성에 대한 역설이다. 고백은 감추었던 것을 드러내는 행위이지만, 때로는 더 중요한 것을 감추기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잘못을 털어놓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신의 수치와 죄를 고백하는 듯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치명적인 진실은 남겨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백은 진실의 발설인 동시에 은폐의 기술이 될 수 있다.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선택하고 배열하며, 듣는 사람은 그 기억의 누락과 왜곡을 의심한다. 완전한 고백을 요구하는 청중 역시 진실 자체를 알고 싶어 한다기보다 타인의 수치와 죄를 확인하고 그로부터 우월감을 얻으려는 것은 아닐까. “경멸은 우월감의 다른 얼굴”이며, 타인의 고백을 듣는 쾌감에는 그러한 심리가 숨어 있다.

 

그렇다면 추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형을 대신해 공무원 시험을 치렀는지, 치렀다면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그리고 왜 그 사실을 끝내 말하지 못하는지. 추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침묵을 통해 기억과 고백의 더 깊은 층위로 독자를 이끈다. 기억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저장고가 아니다. 기억은 현재의 자기 이해와 감정에 따라 과거를 재구성하며, 때로는 왜곡하고 과장하고 축소하고 은폐한다. 추의 기억 역시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지키려는 의식과 분리할 수 없다. 말하지 않은 사실이 무엇인지보다 왜 말할 수 없는지가 더욱 중요해지는 까닭이다.

 


이 지점에서 소설과 함께 제시된 작가의 철학적 에세이 「기억, 고백, 그리고 거울」은 「뒷면」을 읽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작가는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궁전의 우화」를 인용하며 “세상에는 완전히 똑같은 두 개의 물체가 공존할 수 없다”는 명제를 환기한다. 거울은 눈앞의 존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존재를 복제하고 증식시킨다. 거울 속의 나는 분명 나와 닮았지만 나 자신은 아니다. 거울은 동일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동일성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장치인 셈이다.

 

이러한 거울의 역설은 쌍둥이 형제인 추의 존재 조건과 겹쳐진다. 추는 형과 동일한 외형을 지닌 존재이지만, 그 동일성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가족에게 그는 형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존재이며, 형의 인생을 대신 짊어질 수 있는 대체 가능한 존재다. 형과 추는 둘이면서 하나로 취급되고, 하나이면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추에게 형은 단순한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성을 위협하는 거울의 이미지다.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삶을 침범하고, 자신의 존재를 형의 그림자 속에 가두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추가 끝내 말하지 않는 진실에는 단순한 죄책감이나 수치심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그것은 형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가족의 요구에 대한 저항이며, 형의 삶과 자신의 삶을 분리하고자 하는 존재론적 항변이다. 어머니가 형의 인생을 추에게 전가하듯, 추는 자신의 삶이 형의 삶을 대신하는 것으로 취급되는 상황을 거부한다. 그가 완전한 고백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자신을 타인의 시선에 온전히 노출하는 순간, 그는 다시 타인이 규정하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억을 모두 털어놓으라는 요구는 때로 자기 자신을 타인의 판단에 완전히 내맡기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향한 추의 외침은 이러한 해석을 더욱 아프게 한다. 그것은 단순히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의 언어라기보다 오랫동안 자신에게 부과되었던 존재의 부당함을 향한 항변으로 읽힌다.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형을 대신할 수 없는 동생으로서의 무능력이 아니라, 형과 다른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자신의 고유한 삶이었을 것이다.

 

결국 「뒷면」에서 기억과 고백과 거울은 서로 분리된 주제가 아니다. 기억은 과거의 사실을 보존하기보다 현재의 자아에 의해 재구성되고, 고백은 그 기억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시 판단되고 변형된다. 거울은 그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자기 이미지와, 그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으려는 고유한 존재의 갈등을 상징한다. 우리는 자신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구성하고, 타인에게 고백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하지만, 그 설명이 곧 자신의 전부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말해진 것의 이면에는 말해지지 않은 것, 드러난 모습의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존재의 몫이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 「뒷면」은 단순히 인간의 감추어진 비밀이나 부끄러운 과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타인에게 보여주는 얼굴과 그 얼굴로 환원되지 않는 자기 자신의 간극을 의미한다. 누구나 뒷면을 가지고 있다는 커뮤니티의 슬로건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 뒷면마저 타인에게 전시하고 판단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진실은 타인에게 모두 설명되고 승인되어야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맺는 말: 말해지지 않는 것, 존재 고유성의 저항

 

짧은 분량의 이 소설은 말과 기억, 고백과 관계의 복잡한 조건을 따라가면서 인간 존재의 고유성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도달한다. 작가가 「기억, 고백, 그리고 거울」이라는창작 단상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타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타인의 기억과 시선 속에 비친 모습으로, 과연 한 인간의 존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가. 추의 미완의 고백과 고백의 빈틈인 침묵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유보하면서도 강렬한 저항의 목소리를 남긴다. 어쩌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의 뒷면을 남김없이 고백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타인에게 내어줄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뒷면을 인정받는 일인지도 모른다.

 

추의 기억은 과거를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기록이 아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감추는가에 따라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과정이며, 고백은 자발적 자기 폭로처럼 보이지만 듣는 사람의 기대와 판단이 개입하면서 그 진실성은 다시 심판 받는다. 더욱이 타인의 고백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에 경멸과 우월감이라는 쾌감이 숨어있다. 한편 거울은 이 작품의 가장 깊은 층위라고 여겨지는데, 쌍둥이 형제라는 설정은 단순한 가족관계가 아니라 닮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 부정되는 역설을 보여줌으로써 동일성의 환상과 고유성의 위기를 첨예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추의 침묵은 바로 이 동일성의 강요에 대한 저항일 것이다.

 

끝으로 어쩌면 이 작품을 더욱 확장된 생각으로 이끄는 긴장을 말해야겠다. 추의 침묵이 단순히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인가, 아니면 자신을 타인의 판단으로부터 지키려는 마지막 자기보존의 행위로 볼 것인지 이다. 이 두 해석의 긴장이야말로 소설 「뒷면」을 흥미롭게 만드는 핵심으로 여겨진다. 고백을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 존재의 진실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은 오늘날의 익명성과 자기 노출,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의한 정체성 구성이라고 주장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추의 침묵을 고백의 실패로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의 심판 기준에 머물기에서 이탈하여 그 침묵을 자기 존재의 고유성을 지키려는 저항으로 읽었다. 모든 것을 말해야만 진실한 인간이 되는가? 타인에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남겨두는 것 역시 자기 존재의 권리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은 기억과 고백의 문제를 넘어 타인의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독립된 자아가 과연 가능한가라는 다른 차원의 물음을 던진다. 「뒷면」이란 제목도 이런 의미에서 감추어야 할 비밀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전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자기 존재의 영역이라는 명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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