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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그로 넌센스: 근대적 자극의 탄생 ㅣ 살림지식총서 154
소래섭 지음 / 살림 / 2005년 1월
평점 :
여러모로 아쉽긴 하지만 흥미로운 담론서다. 우리사회에 대중적인 근대적 자극이 본격화 된 시기는 대략 1930년 전후의 시대라 할 수 있는데, ‘에로’와 ‘그로’, ‘넌센스’는 당시의 대중적 화두였던 모양이다.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를 일본식으로 줄여 쓴 이 외래어가 식민지 조선을 휩쓸게 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첨예한 이념대립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의 불황, 게다가 식민지민으로서의 불안과 제국주의적 약탈식 자본주의의 침투로 인한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 등으로 사회 전체가 극단적인 의기소침에 시달리고 있을 때 압도적 시각문화를 동반한 새로운 감각적 자극이 당대인들의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일까?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소비 배출구로써 향락산업과 성 풍속의 식민지로의 이동, 근대화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와 대중사회의 도래는 시대환경과 결합하여 현대적인 것의 맹목적 지향과 눌려진 욕망의 분출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고, ‘에로 그로 넌센스’는 당시 모든 문화적 현상들의 배후에서 욕망을 압축한 말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저작은 바로 이를 근대성의 징후로서 인식하고 당시 대중 연예잡지라 할 수 있는 『별건곤(別乾坤 )』, 문예지 『동광』을 비롯하여 각종 미디어 매체, 산업의 현상, 대중의 일상적 풍경을 통해 한국사회의 민중문화를 해독하고 있다.
3차 산업의 확대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었지만 가부장적 팔루스중심 사회에서 이들이 주로 향한 곳은 도시의 소비문화 및 향락산업에 치중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예로 그간의 전통적인 상인이 갖추어야 할 전문적 지식보다는 여성의 애교를 통한 판매력 증진이 더 효과적인 상술이 되고, 숖걸(점원), 데파트걸, 바걸, 헬로걸(전화교환수), 티켓걸, 카페여급(웨이트리스)과 같이 첨단직업부인 ‘걸 전성기’를 맞이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1931년 ‘낙원’이라는 카페가 문을 열면서 “가벼운 우울, 살이 미소하며 엉덩이가 춤을 추는 날카로운 육감, 상대자를 탐색하는 야릇한 피로, 귀가 멍멍한 음향, 농염한 색채, 환각적 말초신경의 기괴한 발동으로 가득찬 ‘청춘의 놀이터’”로서 향락을 구비한 곳, 에로에 대한 욕망의 배출구로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시대배경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회적 열기에 대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모던의 색등(色燈)에 시각을 빼앗긴 그들은 드디어 맹목이 되고 과민한 백치가 되었다.”는 비평이나, 이상(李箱)의 “타락으로 이루어진 축제”라는 시선, 웃음마저 자본주의 체제 속에 편입시켜버린 “카페와 흥행물을 통해 복제되고 대량생산되는 상업화된 웃음”과 같이 조롱과 냉소, 자성이 잇따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 또한 남성권력의 이익중심, 즉 모던걸에 투여된 자신들의 욕망에 기초한 것이었을 뿐, 이중적 시선에 의한 모순의 발로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저작에서 주목할 만한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당대를 대표하는 한 묶음의 ‘에로 그로 넌센스’에서, ‘넌센스’가 지니는 의미의 고찰이다. 즉 넌센스는 에로와 그로와 같은 향락산업의 진전과 어울려 이를 진작시키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상황을 넘어서려는 욕망으로서 에로그로로 대변되는 현실의 떠들썩한 남성지배계층을 풍자하고 전복하는 냉소적 태도로서 작동하였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열기는 강력한 근대적 감각으로서의 시각문화로 다른 감각들이 퇴화됨에 따른 반작용으로 그렇게 퇴화된 감각들에 대한 향수, 즉 현대적 감각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가깝다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성찰은 집단의 공동체성을 강화시키고 재확인하는 유력한 수단이었던 전통적 민속적 축제를 단절시키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에로-그로, 즉 ‘불야성의 별천지’라는 새로운 이 근대의 변질된 축제는 개인을 공동체에 동화시킬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편 이처럼 고대의 신성성으로부터 멀어지기는 하였지만 삶의 권태와 피로를 떨치고 위안을 얻는 축제의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매체로서 유성기, 영화, 연극의 대두는 비근대인들을 근대인의 삶으로 체화시키는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읽어내기도 한다.
반면 새로운 매체이긴 하나 라디오라는 청각 매체는 소설이나 신문을 읽어주고, 전통 가락이나, 민속적 고적 문화를 들려줌으로써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재현하게 하는 등 전통적 유산을 부활시키는데 기여함으로써 외래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들이 부딪치고 굴절되어 대중문화로의 근대적 요소의 침투를 완충하는 기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저술의 대미라 할 수 있는 이상(李箱)과 채만식 두 문인의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민중문화가 지니고 있던 급진성과 전복성을 거세시킨 ‘에로 그로 넌센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분석으로서, 고유의 비근대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 ‘죄지은 자의 징벌’이라는 구조를 통한 풍자와 자조의 경향이 앞서는 냉소라는 작품 고유의 틀을 통찰하여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당대서사문학들에 대한 독법은 귀중한 문학적 지식기반을 제공하여 준다.
1930년대 우리사회를 깊숙이 들어가서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 그리고 넌센스라는 시대의 문화적 현상이 근대화를 어떻게 촉발하고 사람들을 변화시켰는지, 또한 그 변화과정에서 충돌하였던 시각문화와 청각문화의 조화, 현실의 불만과 우울을 해소하려는 욕구로서 이들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압축적으로 명쾌하게 서술되고 있는 이 저술은, 21세기 오늘의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소비과잉과 과시적 사회의 현상이 당시대의 야릇한 화두가 발설하고 있는 의미를 반복하고 있는 것만 같아 낯설지 않은 공감을 형성한다. 깔끔한 대중문화 연구서이자 유쾌한 문화역사 담론서로서 손색없는 저작으로 보다 풍부한 비판적 시선을 읽기를 위한 개괄입문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