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애전반을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 철학에 대해 주변인으로서 그 한계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 전념한 한국의 철학자 박동환은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으로서 바로 서구의 인간중심, 자아중심의 정신으로부터 탈주해야만 한다고, 그래서 사유의 전환, 관점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미래의 존재론을 구축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그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4인칭의 서술자를 그의 미래 존재론에서 말하는 관점, 오늘 우리들이 파악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타자의 고유한 경험을 드러내 보여 다른 존재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들의 운명을 체감케 하는 목소리인 다정한 서술자가 바로 우리 인류의 미래의 관점이자 정신의 틀이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것은 오늘의 인류를 결박시킨 서구의 오랜 자아중심의 시각을 거부하는 모든 내재성으로서, 이 내재 가능성의 원천이 바로 기억과 상상이라고, 이 기억과 상상이 현재로부터의 무한한 일탈을 꿈꾸는 파격의 반란으로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동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이 책의 주요 논지로서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인 다정한 서술자는 수록된 모든 산문이 궁극적으로 모여드는 인류정신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제안이며, 한편으론 이 새로운 관점으로서 다정한 서술자가 문학적 글쓰기, 소설의 책임이자 의무이며, 현대문명이 드러내는 온갖 인류의 분란과 위기의 원인인 박탈된 인간 타자와 비인간 자연, 우주의 주권과 초월성을 회복시키는 일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우선 여러 층위의 독자들의 시선을 이끄는 이 책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색깔, 혹은 미덕을 짧게 소개하는 것으로 감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견 철학적 수상(隨想)이자, 한 소설가의 글쓰기 여정의 세밀한 기억들의 기록이기도 하며, 소설 문학에 대한 올가 토카르추크 자신의 믿음으로서 투영된 기 발표된 작품들을 통한 고유의 창작방식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또한 문학적 글쓰기가 지녀야만 하는 소외되고 배제된 목소리들을 기술할 수 있는 충실한 대변자의 능력에 대한 당위로서의 문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술(記述)가운데 그녀는 문학적 인물창조, 서술자 관점의 이동, 서술자와 창작자와의 관계 등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들 낮과 밤의 집,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야쿠프의 서등은 물론,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인형을 비롯한 존 맥스웰 쿠체(쿳시)엘리자베스 코스텔로(원작명: 동물로 산다는 것), 미셀 바버의 under the skin등 독특한 작품들로부터 이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소설의 해독으로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관점의 전환이란 무엇인지 체험케 한다. 이 새로운 경험에서 자연스레 이질적이고 낯선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쌓이고 해독의 시야가 열리는, 다른 말로 지평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시대의 고질병은 은유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 성급하고 과격한 판단을 내리는 경향,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편협성, 아이러니에 대한 감수성 상실의 증상이다. 결국 독단주의와 근본주의로의 회귀를 초래한다.” - 메탁시의 영토, 본문 332

 

책은 다정한 서술자를 비롯 책의 주제를 폭넓게 아우르는 무한성, 모든 존재의 기원을 사유케 함으로써 지금까지 배제해 온 전체적 관점을 복원하는 오그노즈야, 괴상함, 기벽, 광기와 같은 이질성이야말로 중심이라는 주류적 사고에서 이탈하여 요구되는 새로운 관점으로서 낯섦 연습하기, 그리고 문학적 세계의 창조에 작동하는 서술자, 등장인물의 심리를 말하는 서술자의 심리학 「『야쿠프의 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문학적 인물들, 두셰이코 케이스12편의 산문으로 구성되어 일관된 하나의 제안으로 응결된다. 그것은 서양의 정신, 아니 인류를 지배하는 질서로서의 분석적 사고, 일신교, 차별화, 가치평가, 단일체주의, 경계구분, 극단적 흑백논리, 전형적 나르시시즘 등 세상의 놀라운 복합성,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도록 만든 무능력에 대한 성찰이며, 서구의 인간중심, 자아중심 사고로부터의 거부와 탈주의 치열한 사유이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오래 전 기억을 떠 올린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이 가져 올 인류 문명적 사태를 설명하는 올가의 아버지를 향해 가 봤어, 가 봤냐고?” 라며, 직접 본 것이냐고, 사실을 입증하라고 윽박지르던 외증조부의 일차원적 사고(思考)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는 어딘가에서 채택된 자신이 아는 규범만을 맹신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편협성과 배타성의 이야기다. 다성(多聲)적 목소리로 이루어진 세계, 낯섦 또는 타자로서의 인간과 비인간 자연의 네트워크의 한 존재로서 세계 전체를 조감하는 통찰력과 공감능력에 대한 성찰 부재의 한 표본이다.

 

툭하면 네가 봤냐고?’ 혹은 소설을 읽고 나서는 당신이 쓴 글은 정말 사실입니까?” 라고 그게 팩트(fact)냐고 묻는 근저에는 상투적 이해, 소위 상식이라는 인식의 게으름이 깔려있다. 지독한 나르시시즘, 자아중심의 편협한 인식에서 결코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 무지(無知)의 안락함 때문이다. 올가는 오래된 문장을 제시한다. “ 도덕적 노력이란 본질적으로 인지적 노력이다. 라고, 결국 오늘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필두로 하는 AI, 핵 확산 등 위기의 기원은 서구의 오래된 인간중심주의에 내재된 나르시시즘, 이기주의, 단일적 질서와 같은 매끈한 타자 배제의 논리가 있다고, 지시된 관점에 순응하는 폐쇄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드러낸다.

 

 

책을 여는 산문 오그노즈야는 이러한 우리들 인식에 어둠을 드리운 서구 정신의 한계를 일깨운다. 올가는 천문학자 플라마리옹이 1888년 출간한 책의 한 목판화에서 무한성의 우주에 감격하는 인물의 표정으로부터 우리들의 인지적 틀, 그 구조가 협소한 한계에 갇혀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서양인들의 인식이 어느덧 속박된 한계 속에서 무한한 전체를 놓치고 있음에도 오만과 무지로 자신들의 유한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간중심주의가 무한한 사고의 무능력 지대를 만들어냈다고.

 

그녀는 어린 시절 보았던 쌍둥이 퀘이 형제의 영화에서 직관적 감지로서 의미의 심연을 그대로 관통하여, 익숙한 것에서 자신의 내부에서 뭔가 홀리기라도 한 듯 내 것이 아닌 무엇인가가 움터서 응시하게 만들었던 기억을 소환한다. 그 섬뜩함, 불분명한 모호성에서 의식의 영역에서 밀려난 것들과의 조우, 자신과 공존하는 원초적 질서를 만났음을 술회한다. 다시 말해 인식의 단순한 원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공간, 합리적 이성의 변방을 배회하는 근원적이며 본질적인 그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 올가 토카르추크는 괴상함, 엉뚱함, 낯섦, 기벽, 이질성들을 배제한 서구의 중심주의적 관점이 그 뻔한 자신의 행동반경에서 이탈하는 탈중심적 관점을 알지 못하거나 말하지 않게 됨으로써 세계 위기에 대한 설명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책은 바로 이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작은 조각과 파편들에 다시금 존재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와 닮은 점을 찾아 낼 줄 아는 능력을 복원하기 위한 기술(技術)에 대한 감각과 생각들이. 그 기술을 올가는 소설가로써 문학적 글쓰기에서 실천하는 것이고, 그 실천으로서의 수행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의 다정하고 세심한 설명이 소설 속 서술자와 문학적 인물의 창조에 대한 글들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과 서술자가 하나의 존재로 생명이 불어넣어지기까지의 세세한 과정들, 그 상상력에 이르는 작가의 심리적 내면의 단계적 이행들을 그녀의 기 작품과 연계하여 볼 수 있다. 실존하지 않지만 존재로써 숨이 불어넣어져 영원성을 획득한 소설 속 인물들과 서술자(話者)의 탄생과정을 보면서 올가의 말처럼 한낱 대상 아니면 타자로 취급되던 그 어떤 자연의 존재와 사물도 우주자연의 중심이라고, 행동주체임을 자처하는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설명한다.

 

그녀의 다정함이란 이처럼 관점의 혁명을 내재한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을 체험과 생각, 그리고 그에 따르는 감정을 그대로 기술할 수 있는 충실한 대변자의 능력이다. 21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지성 중 한 인물로 성장한 올가 토카르추크의 어린 시절 장면 속 그녀의 어머니를 접하면서 내심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어린 아이의 내면에 존재의 기원, 그 영원성과 무한성의 이미지가 되는 씨앗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인용하여 남겨두고 싶었던 모녀의 대화는 이렇다. 내가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날 그리워 할 수 있어요?”,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어.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란다.” 이 대화는 그 후 올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서술자를 선물했던 어머니의 달콤한 영원에 가닿는 기억으로 남는다.

 

한 존재를 세상의 평범한 물성(物性)이나 인과관계를 초월한 차원으로 끌어올려 세상을 무한성, 저 높은 곳으로부터의 전체적 조망의 시각, 관점을 지니도록 해 준 시초의 이야기다. 다정함은 배타적이고 익숙한 단일한 질서의 세계에 안주하는 편협성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자연 모두가 인과관계를 넘어서는 비논리적 연결고리에 집중함으로써 전혀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들을 종합하고 연관시켜 세계를 전체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그녀의 소설 방랑자들은 바로 이처럼 알던 영역을 뛰어넘기를 주저하지 않는 방랑자로서의 인간 특유의 용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문학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사물, 자연 상호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조망하는 에너지가 강한 장르라는 올가의 역설은 바로 이러한 의미의 연원(淵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올가의 문학적 글쓰기를 태동시키는 기원으로도 자리잡고 있는데, 어머니가 들려주던 안데르센 동화 중 찻주전자 이야기를 들으며 손잡이가 떨어져 버려진 찻주전자가 들려주던 고민과 감정에 대한 그 때의 체감된 기억으로부터 제3자가 도저히 파악하기 힘든 고유한 경험들을 드러내 보이고 등장인물(의인화된 사물이든)의 행동에 대한 심리적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다른 존재의 삶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당위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타자의 운명을 체감토록 하는 서술자를 바로 4인칭 관점을 지닌 다정한 서술자라고 이름 한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러한 4인칭의 서술자를 상상함으로써 현대 문명이 드러내는 온갖 인류의 위기가 무한한 영원의 흐름에 바탕을 두는 자연과 우주를 그 자체의 주권이나 초월성이 없는 한낱 피동적 대상이나 타자로 취급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자로 취급되거나 배제되어 목소리를 빼앗긴 인간, 비인간 자연 모두의 초월적 주권의 회복을 위한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이리라. 책의 마지막 문단에 이르러 다정함을 서술하는 다음의 문장은 그녀가 오늘의 창작자들, 나아가 인류에게 선물하는 하나의 대표 문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정함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것을 인격화하여 그것에 목소리를 투여하고, 존재하고 표현 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러한 다정한 서술자 창조의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른 존재를 면밀하고 주의 깊게 바라봄으로써 구현되는 겸손한 사랑을 지닌 작가는 우리들의 경험과 상상을 초월하는 보다 고차원적 형태의 존재로 향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의 다른 차원에 대한 책임의 통감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쓰기는 이처럼 보이지 않고 배제하여 존재성을 빼앗긴 모든 존재들에 대해 목소리를 찾아주는 것이다. 그것은 무한한 공간이고 모호한 의미들이 서로 모순되고 중첩되기도 하는 정신의 시적 기반인 영토, 메탁시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우리들 인식은 늘 경계를 지우고 무엇인가를 구분 배제하려 안달한다. 하지만 세상의 온전함을 기도하는 한 개체로서 우리들은 그 경계를 벗어나 알 수 없지만 동시에 실제적인 뭔가가 있음을 알기도 한다.

 

우리의 인식을 옥죄는 언어와 관념의 사슬을 떨치고 명명할 수조차 없는 우리들 존재의 궁극, 그 고향에 대한 그리움, 기억의 시원을 향한 기대와 노력을 저버릴 수 없다. 우리 인간 개체는 다른 모든 비인간과 더불어 드넓은 잠재력의 바다, 불확실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세계를 상상하며 새로우면서 완전한 이해를 가져올 인식의 변화를 깨울 저 시원의 상상력에 이를 수 있다. 타인의 시각, 개인의 고유한 정신을 통해 여과된 세계관을 이해하게 해주는 참깨’”로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이 책은 무한한 깨달음과 풍성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준다. 너무도 뻔한 말이어서 우리들이 망각하는, 이 세계는 단일한 어떤 질서나 체계에 의해 운영되는 시공간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오늘의 문명적 사태를 진단하고 글쓰기 작가로서의 책무를 실천하는 이 책에 敬愛의 마음을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