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죽음 - 자전적 에세이, 단편소설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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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 주제는 다르지만 인간 단독성의 측면에서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과 관련한 에세이를 읽었을 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인 어느 시인의 죽음이 연상된 것은 하나의 유사한 장면 때문이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비평가 앨 앨버레즈의 앞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한다. 한편 시인 마야콥스키는 파스테르나크 앞에서 자신의 비극성 짙은 시를 들려준다. 이 두 장면은 낭송하는 시인들의 제발 나를 도와줘요.’라는 동일한 목소리만 같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파스테르나크 생애의 러시아는 혼돈과 격동의 시기였다. 혁명과 전쟁, 그리고 또 혁명, 공포의 전체주의 독재정치가 휩쓸던 시대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시인에 대한 하나의 인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직접의 원인은 19~20세기 러시아 문화사를 다룬 올랜도 파이지스의 나타샤 댄스에서 언급되는 이사야 벌린의 파스테르나크에 대한 한 인상적 기록 때문이었다. 고리키 류의 문학이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스탈린의 피의 숙청 속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았던 파스테르나크가 수다스러울 정도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오해들에 대해 과다한 변명을 늘어놓았다는 이사야 벌린의 증언은 파스테르나크의 정치적 처신에 대해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소위 구()인텔리겐차에 속하는 비()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문인은 숙청 대상이었기 때문인데, 파스테르나크는 너무도 온전했던 것이다. 이 읽기는 이러한 의심, 하나의 편협한 왜곡이 불식(拂拭)되기를 바라는 기대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사랑할 기회를 맞았던 

상황에 따라서모두가 저마다의 인간이 된다.” -114

 

이 에세이는 3부로 나뉘어 있다. 유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로 시간적 연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시인은 너절하고 사사로운 술회는 극도로 억제하고, 간결한 문체로 한 인간의 예술적 성장의 전환적 사건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렇게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 단어는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그 대상이 시인을 거부하거나 근접을 불허하여 이상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고통스러워할망정 그로인해 경험하지 못했던 현실이라는 실체의 면모를 비로소 깨우치게 하여주는, 하나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충실함을 주기에 그에게 사랑은 곧 예술이고, 저항이며, 삶의 정신이자 인간 됨이다.

 

1부는 음악 거장 스크랴빈에 대한 흠모와 음악에 대한 열정에 묻혀있던 소년시절의 전환적 장면을 술회하고 있다.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이 예술가 집에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들락거렸고, 그 중에서도 때때로 찾아와 자신의 곡을 연주해주던 스크랴빈의 선율에 대한 감동과 숭배는 소년의 감성과 지성의 주 연료였다. 이때의 자신을 이렇게 술회한다. 나에게 음악은 하나의 신앙 같아서, 나의 내면에서 가장 미신적이고 자아를 부정하는 모든 힘이 한 덩어리로 뭉치는 정점에까지 이르렀다고. 음악 없는 인생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소년의 운명은 스크랴빈 부부 앞에서 자신이 쓴 곡을 연주함으로써 산산이 부셔진다. 이 천재 시인은 자기 성찰에서도 능숙할만큼 조숙했던 모양이다. 스크랴빈의 조언과 함께 그는 철학공부로 방향을 전환한다. 하지만 한 순간에 음악의 미련을 버리지는 못했고, 이 음악적 성향은 상징주의 시인들의 문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안드레이 벨리(필명 보리스 부가예프)와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블로크등 상징주의 시인들의 모임인 무사구에트(Musaguet)에 가입함으로써 다른 세계로 들어선다. 이 시기에 그에게 시가 탄생하는데, 시인은 그 사연을 말한다. 무엇보다 사랑이 가장 격렬한 흐름을 이루었다.

 

청년에게 격렬한 흐름을 이루게 한 사랑, 그래서 시까지 탄생시킨 사랑은 그가 가르치던 V라는 소녀로 추정된다. V는 훗날 파스테르나크가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코헨 교수 아래 신칸트주의 철학의 세례를 받다 돌연 학업을 중지하고 러시아로 돌아오게 하는 시인의 사랑을 거절하는 여인 V일 것이다. V는 철학을 전환적 삶의 길이었던 청년을 사랑의 거부라는 부정성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는 긍정성, 새로운 신념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 역할을 한다.

 

시인은 이를 예술에서 가장 분명하고 고귀하고 중요한 본질로서 잉태(孕胎)’라고 말하는데, V의 거절이 곧 그 잉태였던 것으로, 사랑의 의무를 스스로 풀어주는 고뇌 속에서만 사랑이 가능한, 바로 그러한 실제 감각으로서의 시가 탄생하는 것이었을 게다. 파스테르나크에게 마르부르크에서 만나게 된 V로부터 확고한 거절에서 느낀 아픔이 불러 온 느닷없는 환희로 돌연 철학공부를 단절하고 본격적인 문학예술의 길에 오른다. 지금까지의 자기 삶인 과거와의 단절을 서정적 문장에 담아 시적 향취 그득한 글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기차가 멈추자 (...) 가방을 먼저 던져 올린 다음에 기차로 뛰어올랐다. 비명을 지르며 기차가 출발했고, 떨그럭거리며 문이 닫혔고, 나는 차창에 달라붙었다. 기차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과 생활로부터 나를 깨끗이 단절시켰고,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란 강과, 건널목과 길거리와. 최근에 내가 묵었던 집이 시야에서 섬광처럼 사라져갔다.” -210, 82

 

이렇게 2, 철학을 경유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청년은 시인의 길, 3부의 장년기로 들어선다. 이 글이 써진 것이 1931년이니 자유가 박탈된 내면의 불안감과 한편으론 이를 극복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그의 정신적 경외의 존재인 시인 마야콥스키에 대한 예술적 존경과 그의 죽음은 파스테르나크가 인식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또 다른 인간으로의 성장의 시간이었을 것 같다. 사실 이 3부의 글은 파스테르나크의 정치적 위치와 예술적 존재에 대한 정체에 대한 중요한 장()이라 하겠다. 우선 나는 앞서 언급했던 이사야 벌린의 파스테르나크에 대한 모호한 증언이 야기한 의혹을 해소하는 기회로 삼았으며, 또 한편으로는 당대는 물론 오늘에까지 영향력 있는 마야콥스키의 이상(理想)을 감각해보는 감상의 시간이 되었다.

 

이사야 벌린은 스탈린 정권하에서 온갖 핍박으로 생계조차 어려웠던 시인 아흐마토바를 만나 그녀에 도움을 준다. 이사야 벌린에게 아흐마토바는 전체주의 스탈린 체제에 저항하는 서구의 시각에서 위대한 여전사로 보였을 것이고, 그녀에 대한 연민은 이러한 바탕이었을 것이다. 허나 파스테르나크에게 아흐마토바는 어떤 존재로 인식되었을까? 313절에는 '초보 시인 A'의 집에 미래파, 상징주의 시인들이 가득 모여 낭송하던 일화가 있다. 파스테르나크 자신을 비롯한 마야콥스키, 안드레이 벨리, 츠베타예바, 발몬트 등 당대 명성있는 시인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문학마당이다. A는 분명 아흐마토바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파스테르나크는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훗날 얼마나 대단한 시인으로 성공할 재목인지를 나에게 설명해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고 회고하며, 그녀가 집필중이라던 멋진 시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지만 (...) 사람들의 눈길을 순식간에 끌어 모으는 단순성을 알아차렸다고 말한다. 이후 그녀가 핍박받을 때 파스테르나크가 그녀에게 물심양면 물질적, 직업적 도움을 주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사야 벌린의 증언은 파스테르나크에게 너무 가혹한 편향된 관점이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파스테르나크는 혁명 이전의 구 인텔리겐차 계급으로 아흐마토바와 마찬가지의 혁명이전의 지식인 계급에 속한다. 그럼에도 파스테르나크가 스탈린 치하에서 어떤 박해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의혹의 대상이 될 만하지만, 그렇다고 적대적 시선을 들이 댈 까닭이 되지 않는다. 사실 3부의 지면 많은 부분에서 파스테르나크는 우회적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세간의 의혹의 눈길을 의식한 듯, 마르부르크 대학 시절 친구로 지냈던 스탈린 정부의 인민교육위원회 관리 G와의 인연을 전체 글의 압축성을 거슬러가며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는가하면, 마야콥스키와 페테르스부르크에서의 잠시의 동행에서 고리키를 만난 일화나. 러시아 혁명적 열기의 중심에 선 마야콥스키의 시와 애도에 그의 장년의 자전을 거의 할애하다시피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은 스탈주의자가 아니라는 과다한 변명처럼 이해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는 마야콥스키의 영향에 전적으로 지배되었으며, 이후 그의 시적 세계는 서정적 낭만주의와 결별하고 비낭만주의적 상징주의 작품으로 돌아선다.

 

파스테르나크 앞에서 마야콥스키는 자신의 시, Ya)를 읽어준다. 1인칭으로 세상과 맞서는 인간, 시의 소재이자 시의 이름인 마야콥스키의 비극성으로 온통 물들어진 시를. 이때 파스테르나크는 그를 잃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파스테르나크 자신의 삶 속에 담아낼 수 없는 엄청난 괴리감과 비약적 변화를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그랬다는 것이다. 이건 경외(敬畏)의 감정이기도하지만, 마야콥스키가 지향하는 우상 파괴적 혁명 열기나, 고차원적 형제애의 형태인 미래 공산주의 유토피아 전망에 동의할 수 없었음의 표현일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구시대 지식인의 전형이다. 그는 새로운 혁명적 전망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몰고 올 삶의 형태, 금욕주의적 정신생활로의 대체와 같은 급진성은 잃을 것이 많은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본다. 마야콥스키는 바로 파스테르나크와 같은 문학 지식인들, 과거의 우산 속에 있는 물질주의가 발하는 음란성을 모조리 처분하고 싶어 한다.

 

 마야콥스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책세상, 245쪽 발췌인용.

 

마야콥스키가 뱉어내는 외침은 싸대기를 세게 얻어맞은 듯 얼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파스테르나크는 마야콥스키의 비극적 목소리를 떠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시 150,000,0002시간 15분 동안 읽고 검토 한 후, 마야콥스키의 정신에 순응한다. 왜 순응하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왜 자신의 작풍을 전환키로 결정했을까? 사랑이 승리 한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이미 그의 몇 차례의 인생의 전환적 사건에서 보았듯, 그것은 상처와 희생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며, 모든 사랑이 가지는 불가피한 속성, 그것이 바로 사랑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파스테르나크가 1958닥터 지바고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것도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잉태케 한 마야콥스키와 V와 코헨과 스크랴빈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1930년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마야콥스키는 죽음으로 발견된다. ‘어느 시인의 죽음은 마야콥스키의 죽음을 가리키기도 하겠지만, 마야콥스키로 인해 다시 태어난 파스테르나크 자신의 상징적 죽음이기도 하고, 당대 무수히 숙청되어 사라져간 동료 시인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기도 할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마야콥스키의 죽음을 자살로 받아들인 듯하다. 마야콥스키가 죽기 불과 몇 개월 전에 쓴 미완으로 남겨진 제목 없는, 자살에 대한 시를 전하고 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그들이 말하듯이,

            서툰 이야기.

사랑의 배는

           충돌하네

           존재에 대해.

그리고 우리는 떠나네

           삶에서.

           그런데도 왜 우리는

헛되이 서로를 비난하며

           고통과 모욕을 가하는 것일까?

남은 자들에게 - 행복을 기원한다.

 

마야콥스키의 죽음은 타살과 자살의 의견이 엇갈린다. 당대에는 자살로 처리된 듯하지만, 여러 정황은 타살을 가리킨다. 마야콥스키는 연인 릴리 브릭과 그녀의 남편 오이프 브릭과 3인이 함께 가족생활을 했다. 마야콥스키가 상상하는 미래 공동체적 삶의 작은 실천이었던 것 같다. 마야콥스키는 릴리 브릭에 대한 사랑의 연시(戀詩), 프로에토 proeto(이것에 대하여, 1923.)를 쓰기도 했다. 물론 연시 라고는 하지만 다분히 정치성이 내재된 시였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릴리가 마야콥스키에게 두 달간의 별거를 강제 요청했다. 이 강요는 마야콥스키에게 정체성의 위기를 촉발했고 그 악화로 인한 자살이라는 왜곡된 원인을 갖다 대지만, 에이젠슈타인의 발견된 문서기록은 마야콥스키가 소비에트 NKVD(비밀경찰, 후일 KGB)에 의한 체포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누군가 그의 방으로 들어가 총을 쏘고 이웃의 눈에 띄지 않고 벗어날 수 있는 비밀 출입구로 사라졌다고 타살의 의혹을 제기한다.

 

더구나 릴리 브릭은 NKVD의 비밀 요원으로 마야콥스키에 대한 감시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상부에 보고하고 있었다는 기록 또한 발견되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죽기 얼마 전에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돌파하고 구원을 위해 인텔리겐차들의 문학을 두들겨 부수는 고리키식 혁명 전위단체인 RAPP(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협회)에 가입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 않았음의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념적 잣대, 이데올로기의 편협성은 극도로 끔찍스러운 폭력이다. 소비에트 문학의 단 하나의 임무는 계급투쟁의 묘사다.”라는 이 어처구니없는 단일성으로의 획일적 전체주의는 그 외의 모든 것을 죽여 없앨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비단 예술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 그 어떤 미명(美名)으로도 하나의 테두리에 인간의 생각을 가두려 하는 순수치 못한 권력에 대한 경계의 마음은 100년 전 러시아와 오늘의 한국사회와 다르지 않다. 매판 수구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 항시 예술인들을 비롯하여 시민 모두를 좌우로 구분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정상적 활동을 방해함으로써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루틴이 되고 있다. 망나니 윤을 비롯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저 종일(從日) 반민주적 종자들과 그를 따르는 무지한 노예들이 존재하는 한 시인의 죽음이라는 비판과 분노의 애도는 멈출 수 없는 것일 테다. 책은 죽음이라는 가장 무거운 상처와 희생이라는 사랑의 이야기이고, 곧 시라는 인생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예세닌을, 마야콥스키를 펼치도록 이끄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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