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둑 - 예술, 범죄,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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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했던 도둑 중 가장 많은 예술작품을 훔쳤고, 가장 성공한 도둑임에 틀림없는인물의 일대기라 해야 할까? 예술품 절도 역사상 이 인물보다 자주, 그리고 더 많이 훔친 도둑은 없다는 말처럼 예술 역사의 영원한 한 부분을 차지, 가히 기록적 범죄를 둘러싼 예술범죄에 대한 총합적 보고서라 할 만한 저작이다. 한낱 절도범에 대한 추적의 기록이 무어 그리 흥미롭겠는가하지만 그 대상이 고가의 회화와 조각 등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라는 것, 게다가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해서 훔치고, 그 어떤 금전적 이득을 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다팔기 위해 훔친 예술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이 예술 도둑의 행위와 심리를 비롯한 행적은 어떤 매혹을 느끼게까지 한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7개국 박물관, 미술관 등지에서 추정가치 20억 달러에 달하는 예술품을 7년 동안 평균 12일 만에 한 번씩 훔친 희대의 예술 절도범인 프랑스 알자스 출신의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는 그의 나이 스물두 살에 연인 앤 캐시 클레인클라우스가 망을 보는 사이에 알자스의 농촌마을 창고를 개조한 박물관에서 최초의 절도물인 수발총을 훔친다. 그는 소유했다는 승리감에 미친 듯한 행복의 절정에 달하고, 도난당한 박물관의 동향을 주시하고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에 한 번 더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체포되어 처벌될 위험이 많은 행위로부터 절도범은 어떤 느낌을 향유하고자 했던 것일까? 첫 도둑질로부터 자신감을 얻은 브라이트비저는 19952, 알자스산맥 고성의 중세 박물관에서 두 번째 도둑질을 하는데, 이때 공포가 기쁨으로 바뀌는 시간은 더 짧아진다. 이 책의 묘미는 이렇듯 최초의 절도에서 두 번째로, 그리고 또 다음으로 이어지게 되는 절도범의 심리 변화에서부터 절도가 가능한 박물관의 보안수준, 절도의 수법은 물론, 절도대상이 된 예술품에 대한 미학과 예술사적 가치, 예술품 약탈과 절도의 역사적 기록들,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예술계에 만연한 악의, 그리고 예술품 범죄 전문 경찰기구와 이 희대의 예술품 절도범의 추락하는 삶의 모습이 흐른다.

 

이 예술품 절도범에 대해서 상충하는 이해가 있다. 브라이트비저의 병적 도벽은 절도가 아니라 수집 강박으로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해서 훔치는 것이라며, 단순 도둑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달리 자기애성 인격장애자로 흉악범에게 보이는 특성을 가진 미성숙한 소매치기범이 예술계의 대도로 미화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상반된 주장으로 나뉜다. 이 책은 그 어느 측에 편향된 시선을 취하지 않는데, 저널리스트로서의 저자의 훈련된 균형일 것이다.

 

브라이트비저의 일상에 대한 기술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는 진정 심미관을 지닌 선택된 예술 애호가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주말에 도둑질하고 주중에는 지방 도서관과 고고학 도서관을 찾아 예술 기초지식을 섭렵하고, 142만 페이지로 구성된 베네지트 예술가 사전의 카달로그 레조네를 탐독하며, 자신의 다락방에는 500여권의 미술장서로 작은 도서관을 꾸미고, 장인에 관한 논문, 도상학, 우의학, 상징주의 등을 연구하며, 훔친 예술품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며칠이고 작품에 대해 공부한다. 사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받은 자로 여기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브라이트비저를 단순한 절도범이라 할 수만은 없게 한다. 한 인간의 사회가 예술로 대체되어 있는 것인데, 어쩌면 바로 이 수집 강박이야말로 이 책의 모든 이야기들의 근원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만이 예술품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차릴 수 있기에 불법이든 아니든 원하는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브라이트비저의 논리는 터무니없이 허황된 주장이지만, 반박을 무력화시키는 인류의 예술품 약탈사의 한 페이지만을 보더라도 예술의 역사는 절도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서 제작된 조각상인 산 마르코의 말1세기 네로에게 약탈되어 로마로, 그리고 4세기에는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12024차 십자군전쟁에서 약탈되어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으로, 1797년 나폴레옹의 약탈로 루브로로, 그리고 다시 18세기 워털루전쟁의 승자인 영국은 베네치아로 돌려놓는다. 어차피 예술계 종사 모든 사람이 도둑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의 맞춤 증거다. 그러나 이처럼 예술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악의 연쇄적 소굴에서도 브라이트비저는 독보적인 악당이다.

 

수백만의 수백만만큼 훔치고 싶다. 성공하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않을 거야. 나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겠지.”, 브라이트비저가 연인이자 공범인 앤 캐서린에게 하는 말이다. 그를 감상적이고 날카로우며 뛰어난 심미안을 지닌 진정한 미술품 수집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위의 진술처럼 어쩌면 도벽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결여 아닐까? 이러한 강박적 수집 욕구는 물론 위대한 미술가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욕구라는 일화도 있다. 1907피카소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물석상 한 쌍에 매혹되어 절도를 의뢰하여 그것을 입수한다. 훗날 그의 자서전에서 고백된 내용이다. 이 석상이 <아비뇽의 여인들>모델이다. 모나리자도난 사건의 용의자 선상에 자신이 오르자 겁을 먹은 피카소는 슬그머니 제 3자를 시켜 경찰서에 석상을 몰래 갖다 놓는다. 예술의 값어치보다 아름다움 자체가 좋아 공공을 배제하고 자신 혼자만이 그것을 누리기 위해 훔치는 행위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깔끔하고 치밀하게 대낮에 이루어지는 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 2인조 절도범은 자신들의 행위가 언젠가는 덜미를 잡힐 것인지 예견하지 못했을까? 앤 캐서린은 자신들에게 사방에서 시선이 조여 오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던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수술 장갑을 브라이트비저가 반드시 착용하고 작업을 할 것을, 지나치게 많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음을 전체적으로 감지했을 때 포기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 강박적 수집가는 그의 인생이 영원히 절단 나는 전환적 사건을 맞이한다. 능숙함과 강렬한 소유욕망은 조심성을 망각하게 한다.

 

169쪽 절도품 도록 중 발췌


이 저작의 재미는 예술품 절도와 그 예술사적 의미의 향유에 그치지 않는데, 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의 동거와 그네들의 관계에서 추정되는 애정의 본질과 갈등, 브라이트비저라는 인물의 절대적 보호자인 어머니, 후일 그가 수감되었을 때 아들의 성장을 외면했던 아버지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처럼 인간애가 자칫 메마른 르포기사가 될 저술을 풍성한 인간미로 에워싼다. 게다가 마치 추리문학과 같은 긴장감까지 한 몫 해서 그들의 절도 행위에 순간 은밀히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그 불합리하고 부당한 행위에 동조했음에 놀라기도 한다. 특히 7년여에 걸친 절도이후 운명의 날이 다가와 그가 수감되었을 때 그를 면담한 심리학자들을 비롯한 특이하게도 독보적 분야의 전문영역을 연 예술범죄학, 분석심리학자들의 예술품 절도에 대한 진단 등은 자칫 가벼운 일화로 멈출 이야기의 품격을 올려놓기도 한다.

 

수집을 통해 세상과 분리된 자기만의 세계로 마법처럼 탈출하는 느낌을 지적하며 충동적 수집 강박을 처음으로 언급한 베르너 뮌스터버거의 수집: 통제할 수 없는 열정, 진정한 수집가라면 모두 포화점이 없다. 충분하다고 느끼는 순간 따위는 절대 오지 않는다.”며 예술품을 훔치는 부류가 자신의 행위를 결코 부도덕하다고 느끼지 않음을 지적한 에린 톰슨의 소유 Possession는 예술품 범죄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참조가 되어줄 것 같다. 부모의 이혼, 가정의 파탄으로 고독의 구덩이에 빠졌던 청년은 예술로나마 주변을 채워야 했을 것이라는 한 영혼에 대한 관대함은 이내 구제할 길 없는 나락으로 빠지는 인간에 대한 속수무책의 허탈함을 느끼게도 한다.

 

브라이트비저가 자신의 절도 행위를 예술에 대한 도취로 주장하며 내세운 스탕달증후군 또한 우리 인간들의 자기기만 혹은 정당화의 모습으로 바라보게 하는데,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과 열띤 관능에 압도되어 황홀경을 경험하는 정신적 분열증상을 이른다. 1871년 스탕달이 일기 형식으로 쓴 이탈리아 여행기 로마, 나폴리, 피렌체에서 산타 크로체 성당 구석의 작은 예배당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의 감상에서 느꼈던 정신적 혼란의 묘사에서 나온 용어인 모양이다. 사실 이것은 그럴듯한 말로 꾸며낸 여행에서 겪는 시차로 인한 피로의 어지럼증, 떨림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브라이트비저의 예술 운운 하는 주장은 도벽의 기만적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과자로 낙인이 찍힌 인간에게 세상은 거듭되는 그의 절도 행위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는 201920여 년 전에 훔쳤던 상아조각상 아담과 이브가 있는 벨기에 루벤스 박물관의 단돈 4달러 짜리 책자를 훔치다 다시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강화된 예술품 절도범에 대한 처벌로 인해 60세가 되어서야 출소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단다. 이제는 한낱 파렴치한 소매치기범으로 전락한, 더 이상 심미안의 소유자로서 단순 도둑놈이 아님을 항변할 수 없을만큼 전락한 것이다.

 

그의 인생을 영원히 뒤바꾼 스위스 루체른에서의 체포와 구속은 아들을 예술에 빼앗긴 어머니의 대대적인 다락방 숙청 작업으로 강변에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수많은 유화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인류 문화유산에 대한 무책임한 훼손은 그를 공공의 적임을 피할 수 없게 한다. 매년 5만 건의 예술 도난사건이 발생하며 개인 소장물의 경우 그 회수율은 10%, 박물관과 미술관 등 공공기관의 도난회수율은 50%에 그친다고 한다. 우리사회의 현황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으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등 구미 선진국들은 예술품 범죄 전담기구에서 20명에서 300명에 이르는 특수요원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은 하게 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히 매혹적인 심리스릴러에 비견되며, 강렬한 예술 작품 앞에서 미학과 윤리의 경계에 서 갈등하는 마음에 이입되기도 하고, ‘집착과 그릇된 재능에 의한 범죄행각과 그 심리탐사이며, 배신과 놀라운 반전이 있는 흥미진진한 한 인간의 삶의 전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저술은 놀라운 예술 작품이다. 무언가에 지극한 사랑으로서의 이 미친 예술 이야기는 예술이란 진정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멋진 질문을 던진다. (*수록된 26작품의 절도품 컬러 도록이 책의 완성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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