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의 정원 문지 스펙트럼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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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 지상에서 찾은 태초의 정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곧 나는 그 애가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걸 돌연 깨달았다.

그는 그 애를 마치 짐승처럼 길들여 놓았던 것이다.”

13, 반바지 당나귀의 한 대목, 이 작품 이아생트의 정원

내적 유대를 암시하려는 작가의 의도로써 머리말 격으로 인용된 문장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영혼을 빼앗긴 아이라는 섬뜩한 문장에 사로잡혔던 마음은 퓌를루브 아래 여러 오름 중 첫 언덕에 단단히 기대서 있는 평화와 신뢰 가득한 게리통 내외가 사는 아주 오래된 보리솔의 집에 이르기까지 마을과 풍경,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고결한 아름다움이 펼쳐지는 문장들에 그만 압도되어 어느새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리귀제라 이름 붙인 농가, 양 떼와 과원들, 가슴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멜리에르 마을, 늙은 신부의 어진 사랑이 가득한 성당, 끊어질듯한 샘물에 의존하여 참으로 적은 것만으로 살아가는 보리솔의 두 노인, 영혼이 끊임없이 새어나가 온갖 개념이 흘러내리듯 사라지는 무기력한 아이 펠리시엔, 고릿적부터 고독을 음미하며 그 추억을 지닌 채 고요하면서 생각깊은 옛 목자시대에 속하는 양치기 노인 아르나비엘, 배려와 열정적 사랑의 서열을 따르는 리귀제의 충직한 안 살림꾼 시도니까지 이들 모두의 침묵과 서두르지 않는 세심한 손길들과 심오한 감정들이 그 어떤 수다스러운 말의 향연을 초월하는 따스함과 평온으로 그득한 천상의 지혜를 펼쳐놓는다.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생각의 소리를 전달하는 데 침묵이야말로 생각에 동반되는 깊은 의미임을 절로 깨달아가게 된다.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 가을, 계절에 따라 표상되는 자연의 정경들, 온갖 식물들과 동물들, 그리고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이 작품 속 아멜리에르와 리귀제, 보리솔, 그냥 거기 그렇게 있음으로 족할 만큼 기쁨과 행복감에 취하게 된다. 머리를 쥐어 짜낼 일도 없다. 물론 이 작품의 무수한 나무들, 꽃과 별과 뱀, 여우 등이 상징하는 종교적 영성의 의미들이 지상의 심원한 비의(秘意)들을 전달하고 있지만, 그저 꿈처럼 부드러운 구름 속으로 녹아드는 듯 초조함 없이 심취하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아마도 절로 가만가만해지고 목소리도 잦아드는 그런 포근한 솜처럼 감싸 안기는 듯한 그런 느슨함의 평화에 잠기게 된다.

 


이야기는 버리듯 맡겨진 텅 빈 시선과 생각과 말이 서로 교응交應하지 못하거나 혹은 간신히 교응하고 있는 듯한 무기력한 어린 소녀 펠리시안의 영혼을 잃은 비인격적 인간 존재에 대한 사랑의 여정을 한 축으로 한 지상에서의 삶의 축복에 대한 찬양일 것 같다. 시프리앵으로 표상되는 마법사 일기로부터 펠리시안이 영혼이 제거되고 그 영혼에 자신의 낙원을 실현하려 했으나 실패한 기록이 전해진다. 시프리앵의 태초의 정원을 완벽하게 재현하려는 시도는 좌절되고, 정원조성의 대상인 펠리시엔이 소녀 이아생트였음을, 그녀의 공허한 영혼은 잃어버린 천국, 인간의 가장 오래된 꿈의 실패한 반영이었음을 어렴풋 짐작케 된다.

 

이와 병행하여 작중 화자인 리귀제의 주인 메종의 현실과 꿈의 경계를 오가며 그의 주변에 펼쳐지는 지상의 풍경은 바로 지상에 실현된 낙원이다. 이것은 그를 신뢰와 배려로 섬기는 늙은 여인 시도니가 생에서 기다리는 것, 비록 그녀 생의 영혼은 다른 세상에 과녁을 두고 있지만 이 지상에서 열정적으로 기다릴 줄 아는 자의 표징 그것일 것이다. 소설은 더없이 아름답게 이야기를 종료하는데, 메종의 리귀제 별채에 찾아든 식물표본 채집을 한다는 수줍음을 실은 신중한 청년과 이아생트의 마주함이다. 청년은 펠리시엔을 바라보자 하느님...그리고 이아생트라고 그녀를 부른다.

 

이아생트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있었다. 하지만 심연의 침잠된 고요를 뒤흔드는 생명력이 그녀의 두 눈에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388

 

아마 이 장면을 통해 실패한 태초의 정원은 지상의 정원, 인간 세계의 낙원으로의 가능성이란 바로 여기임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말라버렸던 보리솔의 샘은 다시 물줄기가 흐르고 아몬드 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운다. 이제 이야기의 거대한 조류를 장악하는 손가락 사이에서 공기가 빠드득하는 걸 느낄 수 있을 만큼 라일락빛 부드러운 하늘상쾌한 공기의 생기발랄한 빛으로만 어우러진 하늘이 벨벳처럼 감싸는 듯 뺨에 쾌적한자연의 기운에 심취한 읽기를 뒤로하고, 조각조각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간 고귀한 상상력이 숨어있는 문장들을 세세히 다시 읽어나가야 할 것 같다


당나귀, , 시프리앵의 정원, 그리고 신비와 경이로운 풍광의 묘사 문장들이 발산하는 시적 메아리들을 음미하도록 숙독을 요청하는 마음의 외침이 격렬하기 때문이다. 켜켜이 쌓인 마음 떼가 씻겨 내려가 정갈해진 듯한 기분이다. 앙리 보스코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 누구든 작품 속 영혼들의 평온을 함께 누리는 시간이 될 것만 같다. 보스코의 이 소설은 모두에게 선익善益을 안겨주는 지혜의 총합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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