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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환담
윤채근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평점 :
“이 세상이 본디 크나큰 이야기인 셈 아닌가요? 그 이야기가 덧없이 끝나버릴까 두려워 잠들지 못한답니다. 혹은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질까 불안하여 밤을 지키는 초병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 「나는 거지로소이다」, 81쪽에서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어떤 순간을 되돌려볼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상황을 전환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괜한 짓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역사의 주변부로 처리되어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익명의 존재들이 겪어내야 했던 삶의 한 복판으로 뛰어 들어가, 이루지 못한 사랑에 결실을 맺어주고, 실패한 사건을 성취시키며, 사건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주인공이 되어 봄으로써 역사와 삶의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혹독함, 안타까움, 무력함에 들러붙었던 것들, 혹은 유무형의 높이 세워진 인위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선한 세계를 상상해보는 것은 결코 현실과 괴리된 망상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한문학 교수인 윤채근은 실록과 여타 역사기록물들, 조선조 소설과 민담 등을 상호연결해보고,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시대의 관념으로 상상력을 지펴내어 생생하고 흥미 넘치는 28편의 매혹적 이야기를 탄생시켜 놓았다.
책은 커다란 주제의식을 기반으로 ‘전쟁과 혁명, 현장의 미스터리, 시간을 초월한 사랑’, 세 부분으로 나뉘어, 국가의 창업과 흥망의 현장으로, 사건의 현장에서 번뇌하는 인간 존재의 일촉즉발 삶의 현장으로, 그리고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이야기로 재구성하여 시공을 초월한 이동 속에서 정서적 충격과 공감을 오가며 새로운 상상의 길을 펼쳐놓는다. 하나의 가공된 이야기마다 그 이야기의 근거가 된 사료와 기록들을 제시하며, 허구화되거나 재해석된 부분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작가적 상상의 구성 속에서 독자는 진실을 추정해보고 그러해야 할 세계의 당위를 생각해 보도록 돕는 ‘역사와 문헌’에 대한 간결한 안내 글은 새로운 독서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일본 구마모토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개인 원찰 혼(本)묘지 보물관에 보관되어있는 이순신의 서명과 낙관까지 갖춘 육필 칠언시에서 비롯된 왜장(倭壯) 와키자카의 목소리를 통해 구술되는 적장에 대한 경외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전쟁과 혁명」의 이야기들은 북방의 드넓은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과 그 기원을 알리는 신화가 되어 살육의 덫에 갇힌 전쟁의 수레바퀴를 생각게 하기도 한다. 그리곤 1456년 찬탈한 왕위의 부도덕함을 시정하려는 숨 가쁜 반정(反政)모의 사건이 실패하는 시간 속에 내려놓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거사를 미뤄선 안 됩니다. 미루려는 자가 배신자이니 그 자를 먼저 베십시오.(「윤영손 살아남지 못한 자」, 33쪽)” 단종의 유모이자 반정모의의 숨은 역할자인 봉보부인 이씨가 단종의 이모부인 형조정랑 윤영손에게 거사 전에 당부하는 말이다.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갑자기 운검이 폐지되고 거사가 중지되었다. 성삼문인가? 신숙주인가? 누가 배신자인가? 거사는 중지되고 이튿날 성균관 사예 김질과 그의 장인 정창손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성승, 유응부, 권자신, 윤영손 등은 척살되었다. 정의의 작동을 멈추게 하고, 단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물들은 누구일까? 왜 역사의 이 순간을 육백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들은 복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실록(實錄)과 남효온의 「六臣傳」에 근거하여 허구적으로 재구성된 이 날의 이야기에서 발견되어야 할 진실이란 무엇일까? 를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도적? 누가 도적이냐? 백성들의 주린 배도 못 채워주는 임금이 진짜 도적 아니냐? 이 나라를 누가 세웠더냐? [...] 임금은 백성이 필요한 때 만드는 거다.”
- 「우리들의 위험한 이웃」, 51쪽에서
동인은 동쪽 문으로, 서인은 서쪽 문으로, 관복의 복색조차 달리하며 입조하던 양반무리들의 당파 싸움은 당대 정치가 백성의 삶과는 완전히 유리된 것이었음을, 한 내금위 무관의 시선으로 1589년, 천 명에 가까운 서인을 죽이거나 유배시킨 기축옥사의 한 시공 속에 데려다 놓는다. 역성혁명을 주장한 정여립을 빌미로 동인과 전라도 쪽 동인의 씨를 말린 당대의 수구세력은 이렇게 정치적 학살을 자행했다. 가짜 왕이 득실대는 대궐, 백성의 고혈을 빨기위해 공맹(孔孟)을 만사의 법리로 강요하던 서인집단은 임진왜란을 자초했다. 자유로운 광대집단을 부르던 ‘건달바’가 백성이 실제 나라의 주인임을 외치던 대동계, 혁명 세력의 이름이 되어야 했던 시대의 언어에 기시감으로 전율하기도 한다.
이야기들은 시공을 마구 널뛰는데, 「세상의 마지막 단군」에서는 고구려의 창업 신화를 카르하미르(흑룡)강 연원에서 살던 쥬신 종족과 부여 종족의 피를 이어받은 코리족, 코코리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전개되며, 아침 햇살 앗이 비추는 그 희망이 시작되던 세계를 거닐게 한다. 당골의 어원으로 추정되는 탕구르, 아침 햇살 드는 곳 아사달, 우리의 기원은 어디일까? 우리 운명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나라와 종족의 근원에서 그 부침의 여정과 미래를 상상케하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도 된다.
이 소설집에서 특히 매료된 이야기의 하나는, 기근과 절망이 얼마나 심했던지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의 출몰로 공권력조차 무력화된 임란 이후, 병자호란 사이의 세태를 배경으로 한 「식인귀와 함께 걷는 길」이다. 식인귀를 색출하여 처형하는 데 이골이 난 이충백이란 인물은 한양에 이르러 너무도 많은 식인귀들을 발견하고 몸서리를 친다. 모두 척살하여야 함에 신이 날 지경이지만, 그의 패두는 그에게 말한다.
“누가 모르나? 알지만 모른 척 하는 기라. 들어봐라, 나라님이 식인귀라믄 믿겠나? 창덕궁에 드나드는 양반들 태반이 식인귀라믄 니는 믿겠나?”
- 「식인귀와 함께 걷는 길」, 128쪽에서
이충백의 힘과 패기를 신뢰했던 평안관찰사 박엽, 국경을 강화하고 적의 침략을 대비하여 엄격한 군사대비에 철저했던 이는 간신 김자점에 척살되고, 1627년부터 시작된 여진족의 침입과 병자호란에 속수무책이 되어버린다. 하~, 우리 역사의 어느 순간에 도착해도 힘없는 민초들은 불의하고 사특한 인간무리들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이 허구의 이야기들은 민초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승리가 감돌지만, 어디 가상의 이야기에 머물며 환상 속을 헤매는 것이 해결책이 되기나 할 텐가?
시적 흥취에 빠져들게 한 이야기도 있는데, 고려말 문장가인 이규보의 창작의 고통에 내재된 기이한 시인의 삶이 세상 너머까지 보아야하는 다른 눈을 주는 시마(詩魔)와 민족적 기원에 까지 연결되며, 짧지만 웅장한 한 편의 거대 서사의 물결에 휩쓸리게 하는 「시마의 계약」이라는 작품이다.
“시는 머무는 자들의 것이 아니야. 바람을 봐. 우주를 감미롭게 찬미하지만 형체없이 떠돌고 있지. 땅에 집착하는 자에겐 시가 없어. 가질 수 없는 걸 사랑해야 시가 찾아와.” -「시마의 계약」, 153쪽에서
작가는 이처럼 국가라는 물질적 토대의 경계를 여러 작품에서 넘나드는데, 17세기 “변경의 삶을 이해한 자이자 전란(戰亂) 속 고독을 노래한 시인” 가수재(賈秀才)란 인물의 실종을 소재로 하여 임진왜란이 조선에 남긴 왜인 후손들의 삶을 조명하거나(「가수재의 실종」), 조선통신사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간 화가 최북(崔北)과 유녀 하나오기와의 사랑으로 에도 최고 풍속화가 기타가와 우타마로로 이어지는 화풍의 관계 등 역사적 상상력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고,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시인의 그것으로 마음껏 나래를 편다.(「사랑이라면 도톤보리 운하에서」)
조선주재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모리스 쿠랑을 주인공으로 한 「모리스 쿠랑 이야기」 두 편은 19세기 외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근거지로 당대 세책방과 책쾌들을 배경으로 삼아 정치적 분열과 외세 의존의 지배계급 몰락의 양상을 지켜보게 한다. 백성이 외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계속 피살됨에도 국가는 아무런 것도 행하지 않는다. 외국인의 눈을 통해 쇠멸해가는 조선의 정세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교활하게 정치적 영역을 넓혀가던 일본, 러시아, 프랑스의 시점이 흥미롭게 그려진 소설이다.
그런가하면 보물 635호로 지정되어있는 신라 황금 보검에 얽힌 페르시아와 신라의 빈번한 교역의 이야기가 왕자와 공주의 사랑이야기(「불과 모래의 기억」)로 변주되어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페르시아 서사시 모음집인 『쿠쉬나메』의 한 페이지로 시간여행을 감행하기도 한다.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과 신라 공주 프라랑의 사랑 이야기>, 실재하는 이야기다. 발견된 신라 황금보검은 페르시아 역사학자들로부터 페르시아 왕실 의장용 보검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작가 윤채근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사실에 입각하되, 사실과 사실 사이에 벌어진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며 사후적으로 만들어진다.”고.
어쩌면 사실과 환상을 얽어 가공한 이 팩션 세계로부터 새롭게 어떤 무엇을 발견하고 우리는 역사적 진실을 찾아가는 새로운 여행을 감행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읽어나가며 나 또한 이야기마다에 소개된 관련 문헌들, 특히 한문소설들과 이 세계의 역사들을 찾아 나섰으니 말이다. 풍화되고 변형된 이야기들 속에 일말의 진실들이 숨겨져 누군가로부터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새로운 숨결을 입혀 재탄생한 이 이야기들에 빠져드는 것도 역사의 진실을 향한 한 걸음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